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칼날이 교육제도로 향했다. 평등 교육을 떠받치는 대학 입학 절대평가제와 무작위 추첨제도 개편에 나섰다. 대학가에서는 ‘마크롱표 대입 개혁’에 반발하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6일간 대입 시험을 치른 뒤, 일정 점수를 넘으면 우선순위와 학군에 따라 대학에 입학했다. 한국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리세(Lycée)의 최종 학년 때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되는 바칼로레아(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응시해 합격하면 대학 입학이 가능했다. 대학은 바칼로레아 합격자에게 따로 선발시험 없이 입학을 허용했다. 해마다 바칼로레아 합격자가 늘면서 진학 희망자가 정원을 크게 웃도는 대학·학부가 생겨났다. 그래서 2009년부터 진학 희망 대학·학부에 우선순위를 매겨 사전 등록을 하고 정원을 초과할 경우 무작위 추첨으로 대학을 배정하는 입학 자격 취득 후 진학등록제도(APB: Admission Post Bac)를 시행했다.
 

ⓒEPA4월20일 프랑스 경찰기동대가 파리 1대학 톨비아크 캠퍼스를 점거한 학생들과 대치하고 있다.

마크롱 정부의 대입 개편안에 따르면, 올해부터 고등학생들이 대입 시험 전 지망 대학을 미리 선택하고, 대학은 자체적으로 지원자의 고교 성적과 활동 기록 등을 참고해 입학이나 조건부 입학, 불합격을 가리도록 허용했다. 파르쿠르스업(Parcoursup)이라 불리는 새 제도는 이전과 달리 대학에 지원자의 학생부 열람을 허용해, 사실상 학생 선발권을 부여한 셈이다. 2021년부터는 대입 시험 자체도 크게 바뀐다. 고등학교 졸업 학년에 전공으로 선택한 두 과목은 봄 학기에, 나머지 두 과목인 철학·구술은 기존 바칼로레아를 치르던 6월에 친다. 이 4가지 시험은 대입에 필요한 총점 비율 중 60%에 해당한다. 나머지 40%는 고등학교 과정 중 치른 국가시험(30%)과 학생부 평균(10%)이 반영된다.

프랑스 정부는 학생들의 학습능력 저하를 막기 위해 대입제도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고 주장했다. 장미셸 블랑케 교육장관은 “75% 이상의 학생이 바칼로레아를 통과하는데도 대학교 1학년 유급률은 60%에 이른다”라고 말했다.

68혁명으로 쟁취한 평등 교육의 상징  

이전에도 교육 개혁을 천명한 정부가 있었지만 학생들의 저항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되었다. 자크 시라크 정부는 2005년 학생부를 대입제도에 포함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지만, 20만명이 넘는 학생들의 시위와 몇 달간 이어진 고등학교 점거 농성으로 철회했다. 3년 뒤 사르코지 정부는 교육과정을 공통 과정으로 통합하고 학생부에 기록된 선택과목 점수를 대입 조건에 포함시키겠다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역시 반대 여론에 부딪혀 무산됐다.

학생들이 대입제도 개편에 크게 반발하는 데는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 바칼로레아로 상징되는 기존 입시 제도는 68혁명 이후 정착되었다. 학생들은 투쟁을 통해 쟁취한 평등 교육의 상징으로 여긴다.
 

ⓒAFP PHOTO7월9일 베르사유 궁에서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 정부의 대입 개편안 역시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정부 발표 전부터 학생들의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지난 2월6일부터 파리, 리옹 등 대도시에서 학생 수천명이 거리로 나갔다. 프랑스 언론 〈레제코(Les Echos)〉는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는 교외 지역 출신 파리 1대학, 파리 3대학 학생이다. 마크롱과 같은 교육 환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불평등을 심화하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새 제도에 반대한다.” 개편안이 발표된 다음 날에는 시위가 더욱 격화됐다. 시위 학생들은 “학교가 학생을 선택하면 교육 불평등이 초래된다. 가난한 학생들이 원하는 공부를 하게 될 자유가 사라져 사회 이동성이 크게 떨어질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수도 파리를 비롯해 각지에서 학생들의 대규모 반대 시위가 열렸다. 학생뿐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들도 동참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위 강도는 더 강해졌다. 대입제도 개편과는 상관이 없는 그랑제콜(소수정예 엘리트 특수대학)인 시앙스포(파리 정치대학)와 고등사범학교(ENS)의 학생들도 연대의 의미로 시위에 참여했다. 68혁명 이후 학생 시위의 메카로 자리 잡은 파리 1대학 톨비아크 캠퍼스에 대한 무기한 점거 농성이 이어지자 4월20일 새벽 5시에 프랑스 경찰기동대(CRS)는 학생들을 진압해 해산시켰다. 시위를 주도하는 ‘총회’의 학생들은 파리 3대학의 상시에 캠퍼스로 자리를 이동했다. 10일 뒤 상시에 캠퍼스도 진압됐다.

시위로 인한 학생들의 불편 사항이 늘어나자 곳곳에서 ‘점거 반대 운동’이 일기도 했다. 5월10일 프랑스 대학생총협회 발표에 따르면, 1만4000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72.3%가 캠퍼스 점거에, 68.6%가 강의 보이콧에 반대했다. 〈프랑스 엥포〉와 〈르피가로〉가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 55%는 학생들의 시위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전체 52%는 교육제도 개편 자체에도 긍정적이었다.

학생들의 점거 농성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파리 국립대학들의 수업과 시험이 잇달아 취소됐다. 5월17일 헨 2대학의 시험도 전면 취소됐다. 올리비에 다비드 총장 은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강의실 점거로 인해 “적어도 1만명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지 못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몽펠리에 3대학, 리옹 2대학은 온라인으로 시험을 치르겠다고 결정했다. 프레데리크 비달 고등교육장관은 6월18일 프랑스 라디오 RTL과 인터뷰에서 “(이번 대학 점거 농성으로) 500만 유로(약 65억원) 이상의 피해를 봤다. 이 정도 폭력 시위는 이례적이다”라고 주장했다.

7월6일 올해 바칼로레아 결과가 발표됐다. 학생들은 파르쿠르스업이라는 새 제도에 따라 합격 여부를 통보받게 된다. 그간 마크롱 정부의 여러 개혁 정책은 프랑스 일각에서 ‘권위주의’나 ‘엘리트주의’로 비판받아왔다. 역대 정부의 숙원사업이었던 교육제도 개편에 나서면서, 현 정부의 능력은 가장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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