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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지’ 위해 배를 띄운 의사

국제단체 ‘위민온웨이브’는 임신 중지가 불법인 나라의 여성에게 유산 유도약을 보내준다. 이를 통해 전 세계 7만명 넘는 여성이 지원을 받았다. 이 단체 설립자 레베카 곰퍼츠 씨가 방한했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2018년 07월 25일 수요일 제5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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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된다는 게 뭘까. 의대를 다니던 젊은 레베카 곰퍼츠 씨는 자신이 앞으로 입게 될 의사 가운이 지닌 의미에 물음표를 던진다. 의학은 재미있었지만 충분치 않았다. 답을 찾기 위해 낮에는 의대를 다니면서 야간 과정으로 미대에 진학했다. 미대에서 그녀는 말 그대로 ‘보는 것’을 배웠고, 보는 것을 ‘뛰어넘는’ 방법을 익혔다. 의학과 예술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 어린 시절 탔던 배 한 척이 떠올랐다. 곰퍼츠 씨는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남아메리카 수리남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네덜란드로 돌아왔다. 항구도시 블리싱겐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국제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가 운영하는 배에 처음 탄 건 여덟 살 때 부모를 따라서였다.

1997년과 1998년, 서른 즈음 곰퍼츠 씨는 다시 그린피스에 오른다. 배를 타는 것이 마냥 신나던 멋모르는 어린이가 아닌, 의료 면허를 지닌 의사로서였다.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 그녀는 원치 않게 출산한 아이를 돌보기 위해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는 10대 여성과 불법 임신중절수술이나 자가 낙태로 인해 합병증에 시달리는 수많은 여성을 만났다. 여성들이 단지 ‘불법’이라는 이유로 적절한 의료 조치를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현실을 목격했다. 임신 중지(낙태)가 합법화된 나라에서 성장한 사람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사IN 신선영
레베카 곰퍼츠 씨는 “여성이 임신할 수 있고, 엄마가 되기를 선택하면서도 임신 중지를 지지할 수 있고, 이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곰퍼츠 씨와 그녀의 동료들이 임신 중지가 불법인 나라의 여성을 돕기 위해 ‘위민온웨이브(Women on Waves)’를 만들 때 생각한 건 단 하나였다. ‘여성 자신의 허락만 있으면 되는 공간.’ 답은 다시 배에 있었다. 해안에서 20㎞ 떨어진 국제 수역에서는 선박이 등록된 나라의 법을 따르면 된다는 점에 착안했다. 임신 중지가 금지된 국가의 항구에 배를 대고, 임신 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을 태워, 임신 중지가 합법인 네덜란드 법 적용을 받을 수 있는 공해상으로 나갔다. 배에는 임신 초기라면 복용만으로도 임신 중지가 가능한 유산 유도약을 실었다. 2001년 그녀와 동료들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을 출발해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향한다. 이들의 첫 출항은 단박에 신문과 방송의 톱뉴스를 장식했다.

위민온웨이브는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2003년 폴란드, 2004년 포르투갈, 2008년 스페인, 2012년 모로코, 2017년 과테말라와 멕시코를 항해했다(이 여정의 일부는 다큐멘터리 영화 <파도 위의 여성들>에 담겼다. 국내에서는 2014년 여성인권영화제 때 상영됐다). 2005년부터는 웹사이트 ‘위민온웹(Women on Web)’을 통해 전문 상담을 거쳐 우편으로 유산 유도약을 보내주고 있으며, 이를 통해 7만명이 넘는 전 세계 여성이 지원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2700명 이상이 위민온웹을 이용했다. 일정 정도 기부금을 내면 유산 유도약을 배송받을 수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 무료로 제공된다.

위민온웨이브는 탄자니아·우간다·케냐 등지의 여성단체에 임신 중지 관련 교육을 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09년 탄자니아에서는 유산 유도약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약국이 세워졌다. 에콰도르·칠레·아르헨티나 등지에서는 안전한 임신 중지를 돕는 핫라인을 개설했다. 폴란드와 아일랜드에서는 드론과 로봇 등 최신 기술을 이용해 유산 유도약을 보내는 퍼포먼스도 벌였다.

ⓒ시사IN 신선영
7월7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낙태죄 위헌·폐지 촉구 퍼레이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곰퍼츠 씨와 동료들은 이전까지만 해도 사회문제조차 되지 못했던 임신 중지를 논쟁거리로 만드는 데 주력한다. 이들은 법의 ‘공백’을 찾아 활동하고, 그 행동을 통해 ‘인권의 영역에 불법과 합법이 있는가’라는 논쟁을 불러온다. 이들이 촉발시킨 논란은 실제 변화를 가져왔다. 아일랜드는 5월25일 국민투표로 임신 12주 이내라면 제한 없이 임신 중지가 가능하도록 법을 바꿨다. 위민온웨이브가 항구에 닿지 못하도록 전함 두 척을 배치했던 포르투갈은 물론이고, 스페인과 아르헨티나 역시 임신 중지가 합법화됐다. 곰퍼츠 씨는 조만간 임신 중지 합법화 논의를 하고 있는 브라질 대법원에 출석해 전문가로 관련 증언을 할 예정이다.

“다음 차례는 한국이겠죠?” 취재진과 마주 앉은 그녀가 말했다. 건강과 대안,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및 여성단체들의 초청을 받아 3박4일 일정으로 방한한 곰퍼츠 씨를 7월7일 만났다. 인터뷰 자리에는 딸이 동석했다. “제 딸 아비탈이고 열세 살이에요. 물론 페미니스트고요(웃음).” 치아 교정기를 낀 소녀가 엄마의 소개에 말없이 웃었다. 아비탈은 공식 기자회견과 국회 토론회, 낙태죄 위헌·폐지 촉구 퍼레이드 등 엄마의 모든 한국 일정에 함께했다.



왜 임신 중지 이슈에 ‘인생을 걸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당신에게 “낙태를 경험한 적 있는가”라고 질문하곤 하는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일 것 같다. 당신은 그 질문이 불필요하다고 반박하면서도, 임신 중지와 출산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렇다(웃음).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좋은 엄마가 되려고 에너지를 쏟고 노력할수록 그렇지 못한, 그럴 수 없는 여성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원할 때’라는 조건이 충족된다면 출산은 행복한 경험이다. 사람들은 내가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신기해했다. 임신중지권 운동을 하는 사람은 절대 엄마일 리가 없다거나, 아이를 싫어한다거나 혹은 그렇게 보여야 한다거나 하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임신 중지’라는 단어 안에 포함된 수많은 함의를 경험했다. 여성이 임신할 수 있고, 엄마가 되기를 선택하면서도 임신 중지를 지지할 수 있고, 이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시사IN 신선영
7월7일 <유럽 낙태 여행>(봄알람) 북콘서트에 참석한 곰퍼츠 씨와 그녀의 딸 아비탈(맨 오른쪽부터).
한국인 2700여 명이 위민온웹을 이용했다. 2015년 2월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이용자 수가 늘었고, 특히 2016년 10월 불법낙태 수술 의사에 대한 처벌 강화가 골자인 ‘보건복지부의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안’ 입법 예고를 계기로 한국판 ‘검은 시위’가 시작된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한국의 검은 시위를 잘 알고 있고, 매우 흥미롭게 지켜봤다. 한국에서 유산 유도약을 제공받은 사람들의 답변을 분석해보면 대다수가 경제적으로 아이를 키울 능력이 안 되는 여성이었다(67.6%). 불법 시술을 받으려면 수백만원이 필요한데,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여성들이다. 원치 않는 임신을 했거나(46.4%), 피임을 했지만 효과가 없었던 경우(49.5%)는 물론이고 강간 피해자(4.1%)도 있었다.

위민온웹 활동가 중에 한국인도 두 명 있다고 들었다.

위민온웹은 현재 한국어를 비롯해 19개국 언어로 서비스가 제공된다. 한국에서 오는 이메일이 점점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가 가능한 활동가를 추가 모집할 계획이다. 관심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달라(웃음). 업무는 어렵지 않다. 상담원이 되면 약 두 달간 훈련을 받는다. 훈련이 끝나면 시험을 통해 상담 진행 방식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평가한다. 상담을 시작하게 되면 첫 달은 전문가의 감독을 받으며 일한다. 큰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엄격하게 진행된다. 20~22명의 상담원과 전문의가 고정적으로 일하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만두지 않고 계속 근무한다. 보람이 크기 때문이다. 매달 1만 건 이상의 이메일을 받는다. 모든 것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이뤄지므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 지난해 세계보건기구가 위민온웹의 원격의료 서비스를 안전하다고 확인해주기도 했다.

보편적인 임신 중지 방법은 약물보다는 수술로 알려져 있다.

수술을 통한 임신 중지가 많은 이유는 의사들이 그 방법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의사가 더 많은 통제권을 갖게 되고,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인 여성에게는 약물 사용이 더 선호된다. 약물이냐 수술이냐는 여성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려 있으며, 의사는 두 가지 옵션을 모두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임신 중지가 불법인 나라에서는 안전한 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 실제로 전체 임신의 15~20%는 자연유산이 된다. 약물 유산은 임신 10주까지는 집에서도 사용 가능하며 자연유산과 흡사하다. 여성은 유산 유도약을 통해 혼자 유산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 수술은 반드시 병원에서 해야 하지만, 약은 꼭 병원에서 먹지 않아도 된다. 약물 임신 중지는 출산 사망률과 비교할 때 100배 더 안전하고, 심지어 자동차 운전보다도 안전하다.

임신중지권은 여성 당사자에게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직접 경험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을 설득하기란 쉬운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실제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는 ‘권리가 없다’ ‘권리를 빼앗긴다’라는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언론의 자유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출판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검열받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하루하루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권은 대개 추상적인 개념이다. 임신 중지를 경험한 여성들은 그것이 불법이어서 접근성이 없다는 게 어떤 경험이고, 그 일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 잘 안다. 하지만 이를 정치적 사안으로 여기기보다는 당장 그리고 ‘몰래’ 해결해야 할 문제 정도로 생각한다. 우리 활동의 가장 큰 목적은 임신 중지가 합법인 국가가 있음을 알리고 토론을 촉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위민온웹을 이용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전 세계 상황을 공유하고, 임신 중지 금지가 인권침해라는 점을 인식시키려 한다. 이를테면 여성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위민온웹의 ‘임신 중지 경험이 있습니다(I had an abortion)’ 게시판이나 온라인에 공유하도록 장려한다. 때로는 언론과 연결해주기도 한다.

ⓒ시사IN 신선영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경험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면 비슷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에게 지지가 된다. 네덜란드에서는 여성 4명 중 1명이 일생에 한 번 임신 중지를 경험한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다른 나라 상황도 비슷하다. 그러나 임신 중지가 불법인 나라의 여성들에게 이는 매우 개별적인 일로만 남아 있다. 임신 중지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분명히 주변 누군가는 그러한 경험이 있다. 문제는 이 사실을 본인들은 모른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함으로써 이 문제가 나와 내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유산 유도제가 널리 알려지면 “임신 중지가 ‘이렇게나’ 간단한데, 꼭 피임해야 해?”라는 식으로 악용할 사람이 생기지는 않을까?

약물 임신 중지는 미소프로스톨과 미페프리스톤을 시간 차를 두고 복용하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임신 중지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 기사 참조). 어떤 나라를 처음 방문할 때 내가 하는 일은 그 나라의 약국에서 미페프리스톤보다 저렴한 미소프로스톨을 구입하려고 시도해보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시도해볼 시간이 없었다. 한국에서도 미소프로스톨을 판매하는 것으로 안다(미소프로스톨은 관절이나 위궤양 등에 효과가 있어 한국에서 판매 중이지만 처방전을 받아야 살 수 있고, 미페프리스톤은 한국에서 수입하지 않는다). ‘악용’에 대한 우려는 사실 우습다. 사실 이 방법이 아니더라도 남성 대부분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피임법을 안내하는 성교육이 우선되어야 하고 중요하며, 임신중지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는 인권과 사회정의의 문제다.

당신의 활동 뒤에는 위협과 공격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넘게 활동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도움을 요청하는 여성을 매일 직면하고 있고, 약물 임신 중지가 가능한 기간은 짧기 때문에(9~10주)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비난하는 일부 사람들은 우리 일상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누구나 비난을 받으면 거기에만 매몰되기 쉽고,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우리는 비난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반응하고 대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2008년만 해도 우리 단체 활동에 대해 여러 언론이 ‘위험하다’고 경고했지만, 불과 7년 만인 2015년께부터는 ‘임신 중지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정보로 다뤘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여성은 이 문제를 결국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위민온웹이 구축되기 전 여러 나라에 핫라인(safe abortion hotline)을 구축해왔다. 장난전화를 하는 등 방해는 없었는가?

장난전화는 매우 적었다. 이 이슈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진 사람들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여성이 훨씬 더 많다. 한국에 핫라인을 만든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활동을 통해 실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극단주의자들보다 많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일이다.

네덜란드는 비록 상담 의무가 있지만 통상 12주인 주변국과는 달리 24주까지 임신 중지가 가능하다.

네덜란드에서 임신 중지는 1984년 합법화되었는데, 임신 중지를 원하는 여성에게 닷새간 숙려 기간을 준다. 스스로 결정을 내리면, 국가가 승인 및 지정한 12개 진료소에서만 처방 및 수술이 가능하다. 이는 임신 중지가 마치 ‘특수하게’ 다루어져야 할 일처럼 보이게 한다. 심지어 수도인 암스테르담에는 진료소가 없다. 의사와 면담하기 위해서는 3주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여성이 원하는 때에 적절한 의료를 제공받지 못한다. 그나마도 이민자들은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전쟁 등 다양한 이유로 유럽으로 넘어오는 이민 여성을 도울 수 없다는 건 무척 역겨운 현실이다. 해당 진료소가 아닌 곳에서도 유산 유도제를 처방할 수 있도록 10년 넘게 싸우고 있다. 피임약 역시 18세 이하까지는 무료로 제공되지만, 그 뒤는 유료다. 빈곤 여성일수록 접근성이 낮아진다는 문제가 있다.

임신 중지 경험이 우울증 등 여성의 정신 건강을 해롭게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여성이 우울을 겪는 건 임신 중지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사회가 임신 중지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나. 또 임신 중지보다는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불안이 훨씬 더 크다. 다양한 연구들 역시 임신 중지가 심리적 문제나 우울, 자살 위험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보고한다. 오히려 임신 중지 이후 안도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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