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회장 일가 퇴진’을 외치는 대한항공 직원들의 이야기를 전할 때면 늘 냉소적인 댓글과 마주치곤 했다. “당당하면 가면 벗고 하지.” 직원들은 당당하고 확신에 차 있지만, 회사가 목소리 내는 이들을 어떻게 본보기로 찍어 누르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대한항공에는 노동조합이 3개 있는데 2개는 조종사만 조직 대상으로 삼는다. 객실승무원, 정비사 등 직원 대부분이 입사와 동시에 자동 가입되는 ‘대한항공 노동조합’이 조합원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평가는 좀처럼 듣기 어렵다. 노조를 바꿔보려 했던 직원들은 해고되거나, 인사평가로 저성과자가 되거나, 회사를 떠나야 했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노조라는 울타리 없이 개인 자격으로 싸워야 했고 가면은 필연이었다.

그리고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출발해 회장 일가 퇴진 운동을 이어가는 자발적 모임 ‘대한항공 직원연대’ 운영위원회 멤버 가운데 서울과 인천에서 일하던 4명이, 갑작스럽게 부산으로 두 달간 출장 명령을 받거나 부산·제주로 전근 명령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는 노조 민주화 활동을 하다 2005년 해고되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아 2008년 복직한 직원도 포함되었다.

대한항공은 일상적인 업무 지원으로 보낸 것이며, 직원연대를 색출한 적이 없고 색출이 가능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과거에도 노조를 민주화하는 데 가담한 정비사를 대전의 연구원이나 제주 정석비행장으로 ‘귀양’ 보낸 사례가 있다. 이번 명령의 대상이 된 한 직원은 “다른 직원들이 위축되는 것을 노린 것 같다. 예상했던 고통이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 싸움은 생각보다 길고 지루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물러날 생각이 없고 우리는 포기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가면을 쓴 한 승무원의 외침을 기억한다. 내가 본 대한항공 직원들은 박창진 사무장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우리가 시선을 거두고 이 싸움을 그들만의 싸움으로 만들면, 회사는 문제 제기에 앞장선 이들에게 불이익을 줄 테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목격자로서 계속 관여하면, 어쩌면 새로운 역사를 볼 수도 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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