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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정치가 장인화·전문가화라고?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아들 신지로는 차기 총리 후보다. 나카소네 전 총리의 아들 히로후미와 손자 야스타카는 국회의원이다. 세습의원 문화는 메이지 시대 제국의회 귀족원에 뿌리를 둔다.

홍상현 (<게이자이> 한국 특파원)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7월 19일 목요일 제5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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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앞둔 어느 날 지역축제가 한창인 거리, 두 후보자가 마주쳤다. 주민들과 악수를 나누던 여당 후보자를 알아본 야당 후보가 반갑게 이름을 불렀다. 여당 후보의 묵묵부답 외면. 야당 후보는 기다렸다가 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여당 후보자 수행비서가 제지했다. 한 시민이 이 장면을 촬영해 유튜브에 올렸다. 재생 횟수 25만 회. 들끓던 인터넷 여론과 달리 이 후보자는 57.1%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했다.

ⓒEPA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아들 고이즈미 신지로 자민당 차기 총리 후보. 신지로는 2007년 아버지의 개인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당선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아들인 고이즈미 신지로 중의원 의원이다. 2009년 스물여덟 나이로 국회에 입성할 당시 이야기다. 민주당 후보로 경합을 벌인 요코쿠메 가쓰히토 역시 1981년생 동갑내기 정치 신인이었다. 두 사람의 당락을 가른 건 무엇이었을까? 여당 프리미엄이 아니었던 건 분명하다. 지리멸렬하던 아소 다로 총리(현재 부총리)는 이 선거에서 야당에 정권을 내주었다. 두 후보가 경쟁한 지역구는 미 해군 7함대와 해상자위대 시설이 있는 전략 요충지였다. 후보자의 전문성이 당락을 갈랐을까? 이력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EPA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
중·고등학교 시절 스포츠에 열중했던 고이즈미 신지로는 같은 재단 학교 출신자에게 특혜를 주는 내부 진학을 통해 간토가쿠인 대학에 입학했다. 졸업 후 미국 컬럼비아 대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 유학을 두고 말이 많았다. 입학 2년 전 고이즈미 정권이 신지로의 지도교수 제럴드 커티스(정치학)에게 메이지 일왕이 제정한 일본 최초 훈장인 욱일장(旭日章) 2등장(욱일중광장)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신지로는 석사 학위 취득 후 우익계의 사사카와 재단과 돈독한 관계인 국제전략연구소(CSIS) 비상근 연구원을 지냈다. 귀국한 뒤 아버지의 개인비서로 일했다.

경쟁 후보였던 요코쿠메 가쓰히토는 지방 중소도시에서 트럭 운전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도쿄 대학 법학부에 입학해 졸업과 동시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가쓰히토의 입지전적 커리어도 신지로의 ‘혈통’ 앞에서는 무력했다. 두 후보자의 당락을 가른 건 일본 정치권 특유의 세습의원 후광이었다.


한국 이완구 전 총리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이 전 총리는 최근 “나카소네 전 총리 아들이 국회의원이고 손자도 국회의원이다. 고이즈미 총리 아들이 지금 4기 총리를 준비한다. 일본은 정치를 장인화·전문가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의 아들과 손자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연합뉴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나카소네 전 총리의 장남 나카소네 히로후미 참의원 의원은 내부 진학을 통해 게이오기주쿠 대학을 졸업하고 화학회사 아사히화성(旭化成)에서 근무했다. 이 기업 창업주인 노구치 시타가우는 조선총독부의 비호 아래 ‘조선반도의 사업 왕’으로 불리며 식민지 수탈에 앞장선 전범 기업인이다. 히로후미는 퇴사 후 총리이던 아버지의 비서가 되었다. 이후 아버지가 현역 중의원으로 있던 군마 현 지역구에서 참의원으로 당선했다.

아소 정권의 외무장관에 임명되었던 나카소네 히로후미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문제 삼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뿐이다”라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다 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의 핵심 멤버다.

나카소네 히로후미의 아들(나카소네 전 총리의 손자) 나카소네 야스타카는 3대 세습의 정형화된 패턴을 보여준다. 집안의 정치적 기반은 군마 현이지만 그는 도쿄에서 나고 자랐다. 그도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같은 재단의 학교를 다녔다. 내부 진학을 통해 게이오기주쿠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 동년배인 고이즈미 신지로와 같은 시기에, 같은 컬럼비아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잠시 다국적 금융기업 JP 모건에 다녔다. 당시 아버지 히로후미는 일본의 외무장관이었다. 아버지 비서를 하다 그만둔 야스타카는 군마1구 지역구 의원에 입후보할 것이라고 기자회견을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지역 비례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지역구의 다른 세습의원과 타협한 뒤 내린 결정이었다.

ⓒEPA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의 아들 히로후미 의원. 히로후미는 아소 정권의 외무장관에 임명되었다.
그렇게 의회에 입문한 야스타카는 ‘장인’이나 ‘전문가’로서 일하기보다 극우 행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압력 일변도의 대북정책에 찬성하고,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주장하며, 총리의 ‘당당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까지 요구하고 있다.



세습 정치의 인프라 ‘고엔카이’

세습의원 문화는 메이지 시대 제국의회 귀족원에 뿌리를 둔다. 귀족원은 양원제의 하원에 해당하는 중의원과 함께 설치되었다. 선거가 아니라 신분(왕족, 공작·후작 이상의 귀족 등)에 따라 자동적으로 자격이 주어지는 비공선(非公選) 의원이 주축이었다. 해산이 불가능했고 의원들 중 상당수가 종신 임기였다.

패전 이후 귀족원과 신분제가 폐지되었다. 참의원(상원)이 신설되었다. 귀족원 주축 세력은 연합군총사령부(GHQ) 사면을 받았다. 전범 용의자나 공직 추방 대상자 신분에서 정치가로 변신해 참의원 최대 계파를 구성했다. 이후 자민당으로 흡수되었고 ‘권력의 상속 구도’를 이어갔다.

오늘날 일본에서 세습을 위한 대표적 수단으로 기능하는 것이 고엔카이(후원회)다. 지역구 내 지지자 조직을 뜻하는데 일본 특유의 세습 정치의 인프라에 해당한다. 한국의 ‘재벌(chaebol)’처럼 해외에서 고유명사 ‘고엔카이(koenkai)’ 그대로 불린다. 세습의원들에게 ‘돈’과 ‘사람’을 공급하는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후원회(supporters’ association)’와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고엔카이의 신분제적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특징은 후원금에 대해 비과세 상속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받은 후원금이 아들에게 비과세로 상속된다.

유권자가 투표용지에 후보 이름을 직접 손글씨로 적는 자서식(自書式) 투표 방식도 세습의원에게 유리하다. 일본 정부는 부정이 있을 경우 증거를 남기기 쉽다는 점을 자서식 투표의 장점으로 든다. 또 후보자의 기호 순서가 투표 결과에 미칠 수 있는 점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단점도 심각하다. 글을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경우 투표권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 투표장에 가더라도 정치 무관심층이나 중도파일 경우 투표용지에 무심코 익숙한 이름을 쓰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정치인 가문의 아이에게 어려운 한자를 피해 읽기 쉬운 이름을 지어주거나, 혈족관계가 잘 드러나는 이름을 붙이는 사례가 많다. 심지어 선거에 출마하며 선대의 이름으로 개명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세습의원을 규제하기 위한 입법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 민주당을 중심으로 세습 출마 규제법안 발의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가문’을 이유로 입후보를 제한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고 좌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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