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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하지 못한 권리 양심의 자유

6월28일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를 병역 종류로 규정하지 않는 병역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 속에서 화석화된 ‘양심의 자유’가 ‘권리’라는 것을 경험할 기회가 생겼다.

임재성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7월 19일 목요일 제5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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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8일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헌법이 규정한 ‘양심의 자유’에 따른 행위이며, 이와 같은 기본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대체복무제가 존재하지 않는 병역법은 헌법에 합치하지 아니한다고 결정했다. 국회가 2019년 12월31일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를 입법하라는 ‘입법부작위 위헌 결정’이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의 한 국회의원은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제 군대 가면 양심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라고 주장했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우리 사회에서 논의된 지 근 20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용어’에 대한 논란은 계속된다. 100쪽이 훨씬 넘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도 논쟁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병역거부권 인정을 위한 운동을 해왔던 시민사회는, ‘양심’에는 사회적으로 사용되는 ‘착한 마음’ ‘어진 마음’이라는 뜻과 헌법이 규정한 ‘윤리적 확신’이라는 뜻이 같이 존재하기 때문에 혼동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같은 단어에 대한 일상적 해석과 법률적 해석이 다르다는, 가장 타당한 설명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동의하거나 납득하지 못했다. 헌법적 의미에서 양심-비양심의 대립항은 없으며 모든 사람들의 양심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양심을 빙자한 병역기피’라는 손가락질만 돌아왔다.

ⓒ연합뉴스
5월15일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양심적 병역거부자 이조은씨(왼쪽)가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으로 한국전쟁 이후 계속되어온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감옥행은 멈춰질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번 결정을 계기로 한국 사회는 ‘양심의 자유’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토론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헌법 속에서 화석화되었던 ‘양심의 자유’가 ‘우리들의 권리’라는 것을 경험할 기회를 비로소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분명하게 할 것이 있다. 우리 헌법이 ‘양심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 한, 병역거부권은 양심에 따른 것이다. 오랜 설명 끝에도 여전히 용어가 문제라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말을 해왔다. “개헌을 하셔야 합니다.”

많은 국가들이 명문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양심의 자유’의 구체적 권리로서 규정하고 있다. 독일 헌법의 기본법 제4조는 ‘양심과 종교의 자유’ 항목인데, 제4조 제3항에는 “누구도 양심에 반하여 집총 병역이 강제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유럽연합 가입 국가들의 헌법이라 불리는 유럽연합 기본권헌장 제10조는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 항목인데 역시 제10조 제2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인정되며, 각 국가의 법률들은 이 권리를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병역거부가 양심의 자유에서 파생되는 권리이며,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을 만큼 단단한 합의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왜 한국 사회에서는 20년간 용어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었을까? 물론 일상에서 사용되는 ‘양심’이 헌법상의 ‘양심’과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다. 이런 논쟁은 병역거부가 처음도 아니다. 1998년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대통령 후보가 ‘집권하면 양심수를 사면하겠다’라고 발언하자, 당시 검찰과 법무부까지 나서 “양심수가 아니라 사상범, 공안사범”이라고 반박했다. ‘양심수(prisoner of conscience)’란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인 신념 등을 이유로 투옥된 이들을 부르는 유서 깊은 명칭이고, 사상범과 본질적으로 다른 표현도 아니다. 그럼에도 당시 ‘양심수’라는 표현은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었다.

ⓒ시사IN 조남진
6월28일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해 시민단체 회원들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양심의 자유’를 온전히 누려본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헌법이론은 이러한 권리를 ‘장식적 조항’이라고 부른다. 헌법에는 규정되어 있으나, 실제 사회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권리에 대한 비판적 표현이다. 법률가가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양심의 자유’에 대해 묻는다면, 과연 누가 그 ‘자유’의 내용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1948년 제헌헌법부터 현행 헌법까지, 헌법은 70년 동안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했지만 그 자유를 온전히 경험하고 이해하는 국민이 없는 셈이다.

처벌이나 배제 아닌 공존을 요구하는 권리

양심의 자유란 ‘거부할 권리’다. 내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국가와 같은 외부가 강제하였을 때,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이다. 헌법재판소는 양심을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 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정의했다(96헌가11). 어느 개인이 진지한 윤리적 확신을 가지고 있을 때, 그 확신에 반하는 행위를 국가가 강제하는 것은 신중해야 하며, 대체재가 없는 것은 아닌지 깊이 숙고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양심의 자유이다. 국가주의를 넘어, 개개인의 다원성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라면 마땅히 보장해야만 하는 최상위급 인권인 것이다.

누군가 ‘채식’이라는 깊은 윤리적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하자. 그 누군가가 속한 사회에서 ‘육식’을 강제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때 처벌한다면 이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선 학교에서 반성문이 사라진 것도 바로 양심의 자유가 실현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훈육의 수단으로 반성문을 쓰도록 하는 게,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결정했다. 특정 행위에 대해 반성을 할지 말지는 개인이 판단할 윤리 영역인데, 이에 반할 수도 있는 ‘강제적인 반성’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43년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와 관련한 판결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 것은 종교·양심의 자유로서 보장된다고 판단하면서 동시에 ‘다를 수 있는 자유(freedom to differ)’를 언급했다. ‘다를 수 있는 자유’란 사소한 사안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질서의 심장을 건드리는 사안에 대하여 다를 수 있다는 자유”가 보장되는지 여부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처벌이나 배제가 아닌 공존을 요구하는 권리, 이것이 양심의 자유이다.

양심의 자유는 감옥에 가는 소수의 병역거부자들만의 권리가 아니다. 당신의, 우리들의 권리다. 누구나 양심에 반하는 외적인 강제에 대해 거부할 수 있다. 인권은 천부적, 곧 하늘이 주는 것이 아닌, 역사와 사회의 힘겨운 투쟁 속에서 새로 쓰인다. 이제 우리 사회는 70년 동안 2만여 명에 대한 처벌의 아픔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었다. 더 많은 영역에서 양심적 거부가 등장하기를 바란다. 인류와 사회의 번영과 발전은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총을 들고 싸우겠다는 사회보다, 총을 들고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양심이 공존하는 사회가 훨씬 평화로운 사회인 것처럼 말이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신성한 국방의 의무’가 흔들린다고 말한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그 어떤 국가도 현역 병력 수급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례가 없다는 점을 언급하기 전에, 신성한 것은 국방의 의무만이 아니라고 답변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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