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친구들에게 ‘베트남 산다’고 하면 오지에서 고생하는 줄 알아요. 한번 보세요. 누가 여길 후진국이라고 하겠어요?” 현지 가이드인 최덕영씨가 창밖을 가리켰다. 호찌민 시내의 비텍스코 파이낸셜타워 49층 전망대에서였다. 동서남북에 퍼진 마천루가 최씨의 말을 뒷받침했다. 여느 대도시처럼 고급 주택가와 호텔, 외국계 회사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호찌민은 평양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북한이 베트남을 주목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식 개혁·개방 모델을 언급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난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보다리 산책’을 하던 중 이야기를 꺼냈다고 전해진다. 갑작스러운 돌출 발언이 아니다. 2007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시 베트남 모델을 배우겠다고 말하며, 김영일 당시 총리 등을 파견해 도이머이(개혁) 정책의 ‘현장학습’을 지시한 바 있다.

베트남은 북한과 닮았다. 개혁·개방 전 경제난에 시달렸고, 미국과 전쟁을 치렀으며,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베트남의 경제 발전과 대미 관계, 정치체제를 살피는 일은 향후 ‘김정은의 북한’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시사IN 이명익드론으로 촬영한 호찌민 시의 모습. 왼쪽에서 두 번째 있는 큰 건물이 비텍스코 파이낸셜타워다.

1975년 미국에 승리한 베트남은 국토 전역을 사회주의화했다. 외세는 몰아냈지만 통일 베트남의 경제 사정은 악화 일로였다. 생산물 가격을 고정하는 계획경제 시스템은 물자가 귀한 전후 사회에 치명적이었다. 통일 직후부터 암시장이 형성되어 생필품 가격이 치솟았다. 공산당의 부분적 경제개혁만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없었다. 1986년 한 해 물가인상률만 700%에 이르자 베트남 정부는 중앙 계획경제의 실패를 인정해야 했다. 그 해결책이 1986년 공산당 당 대회에서 나온 ‘도이머이’다. 베트남은 여러 차례 제도를 고쳐가며 시장경제를 수용했다(〈시사IN〉 제557호 ‘도이머이 이후, 도대체 뭐임?’ 기사 참조). 헌법은 여전히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따른다’고 규정하지만, 사실상 현재 베트남 경제는 완전한 자본주의에 가깝다.

베트남 제1도시인 호찌민 시내에서 ‘도이머이 30년’의 결과물을 체감할 수 있었다. 오토바이를 탄 청년들은 스마트폰을 보며 도로를 질주했다. 큰 거리에는 여지없이 공사판이 보였다. 현장 외벽에는 고층 빌딩 완성도가 붙어 있었다. 시공사 대부분은 일본이나 한국, 싱가포르 업체였다. 카페에서는 고가의 노트북을 펼쳐놓은 학생들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호찌민 시 동부 끝자락에는 대규모 공업단지가 조성됐다. 여의도 4배 면적인 ‘사이공 하이테크 단지’다. 삼성전자,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 첨단 기업 공장이 다수 입주했다. 호찌민 시는 이곳에 파격적 세제 혜택을 부여해 다국적기업을 유치했다.

수치상으로도 도이머이 이후 베트남 경제는 순항 중이다. 베트남 경제성장률은 6~7%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실업률도 2%대로 안정적이다. 수입산 사치품은 비싸지만 음식과 같은 생필품 가격은 한국의 4분의 1쯤이다. 부양 문제가 불거지지 않은 ‘젊은 나라’인 것도 강점이다. 한국은 35세 미만 청년 인구가 40%에 못 미치는 반면 베트남 청년 인구는 60% 정도다.

현지에서 만난 취재원들은 대미 관계 개선이야말로 경제 부흥의 직접적 계기라고 입을 모았다. 현재 베트남의 최대 수출국은 미국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대미 수출액은 174억 달러에 달한다. 베트남의 한 대학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도이머이와 대미 관계 개선을 분리해 후자에 힘을 실었다. “미국 없는 도이머이는 반쪽짜리였다. 베트남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부터다.” ‘20년 전’은 미국과 수교한 1995년을 뜻한다. 도이머이로 시장경제를 도입한 1986년보다 9년이 더 걸렸다.
 

ⓒ시사IN 이명익호찌민 시내에 있는 인민위원회 청사에 ‘호찌민 동상’이 서 있다.

‘선 시장경제 도입, 후 대미 수교’

도이머이 후 9년간 베트남은 미국과 수교하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 근래 북한에 가한 것과 비슷한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이다. 1975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최초로 패배를 겪었다. 미군 5만명 이상이 전사하고 수십만명이 부상당했다.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베트남은 꾸준히 대미 관계 정상화를 원했지만 전후 미국은 1990년대 초반까지 경제제재를 가했다. 일방적 구애에도 베트남은 미국의 ‘허가’를 받지 못했고, 발전이 더뎌졌다’는 게 베트남 밖에서 나오는 일반적 설명이다.

그런데 현지에서 공유하는 분석은 조금 달랐다. ‘대미 관계 정상화 시점을 선택한 게 베트남 공산당’이라는 시각이었다. 처음부터 베트남 정부는 스스로 시장경제를 도입한 뒤 미국과 수교하길 원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선 시장경제 도입, 후 대미 수교’를 선택했다는 점이야말로 베트남 모델의 요체라고 주장했다.

공산당의 체면을 살리기 위한 선전일까? 익명을 요구한 호찌민의 한 대학교수는 실리적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 문제였다. (도이머이를 선언한) 1986년 당시에는 옛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의 갈등이 극복되지 않았다. 베트남이 미국 도움을 받아 빠르게 발전하면 사회주의 정권에 의한 통일이 정당성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공산당 통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대미 수교를 늦췄다는 설명이다. 그는 북한 지도자가 유독 베트남 모델에 관심을 갖는 속내도 이와 비슷하리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개혁·개방으로 환골탈태한 경제와 달리 베트남 정치는 40년간 크게 변하지 않았다. 통일 후 줄곧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가 주석은 간선제로 뽑는다. 집회·결사·언론의 자유는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다. 전쟁 뒤 수많은 인사들이 ‘반민족’으로 몰려 투옥됐다. 외국인에 대한 감시도 비일비재했다. 15년째 호찌민에 거주하고 있는 전종규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베트남협의회장은 입국 초기의 일화를 들려줬다. “내 차 운전기사가 매주 몇 시간씩 자리를 비워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내 일정과 내용을 공안에 보고하고 있었다.”

 

 

 

 

현지에 머무르는 동안 베트남의 정치 상황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시사IN〉이 접촉한 베트남 취재원 대부분은 ‘정치적 발언은 할 수 없다’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몇 사람은 취재에 응하되 실명·사진 게재, 녹음을 거부했다. 이상하게도 인터뷰 장소에는 혼자 오는 법이 없었다. ‘2인조’ ‘3인조’ 이상이 함께 나오거나 비서가 발언 내용을 받아 적었다. 취재 중 공안을 맞닥뜨리기도 했다. 취재진이 시내 공원에서 드론을 띄우자 3분여 만에 제복을 입은 공안 두 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출동했다. 그들은 “Rule(규칙이다)”이라고 말한 뒤 손으로 ‘X자’를 그렸다. 현지 가이드는 “옆에 있던 노점상이 신고한 것 같다. 호찌민은 인구 대비 공안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저항은 없을까? 베트남 공산당과 밀접한 응우옌박푹 호찌민 과학기술경영컨설팅협회 회장은 정부의 ‘당근과 채찍’에 대해 설명했다. 경제 발전의 과실을 보여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철저히 ‘찍어 누르는’ 전략이다(20~21쪽 기사 참조).

공산당 정권에 불만을 지닌 인민을 인내하게 만드는 ‘보험’도 있다. ‘국부’로 통하는 호찌민 주석에 대한 존경심이다. 한 대학교수는 “공산당이 ‘호 아저씨(호찌민의 별칭)’의 유훈을 따르는 한 반대 세력은 세력을 불리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현지 베트남 전문가들은 북한도 ‘장기 보험’을 만들지 않겠느냐고 내다보았다. 바로 김일성 주석이다. 북한 엘리트들 역시 김 주석의 유훈을 강조하며 개혁·개방 뒤 체제 안정을 꾀할 것이라고 베트남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다만 예상치 못한 데서 의외의 징후가 엿보였다. 인터뷰 중 “베트남 사람들은 대부분 호찌민 주석을 존경하는데…”라고 말하자 통역을 맡은 20대 청년이 “아니에요”라고 말을 끊었다. 통역은 “젊은 사람들 중에는 호찌민에 부정적인 이들도 많다”라고 말했다. 미국에 우호적이고 시장경제에 익숙하지만 호찌민 주석의 행적은 옛이야기로 여기는 미래 세대는, 언제까지 공산당을 대체 불가능한 통치세력으로 볼까? 베트남 모델을 언급한 서른네 살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영 께름칙할 질문이다.

기자명 호찌민·글 이상원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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