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을 개선하고 성장을 촉진하겠다는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1분기 소득분배가 크게 악화되고 최근 취업자 수 증가가 둔화되자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비판과 소득주도 성장을 폐기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불평등과 고용 둔화는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 감소 그리고 자영업 구조조정과 관련이 커서, 정부 정책에 큰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소득주도 성장을 제시하고 ‘일자리 정부’가 되겠다는 정부에게는 아픈 대목이다. 며칠 전 청와대는 소득주도 성장의 설계자인 홍장표 경제수석을 관료 출신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현재까지의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 평가하고 그 미래를 전망해보자. 저소득층의 임금과 가계소득을 늘려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추진하겠다는 이 계획은 경제 패러다임의 올바른 전환이었다. 이는 기존 경제민주화와 국제기구가 제시한 포용적 성장과도 맥이 닿아 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에는 한계가 적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만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었을 뿐 다른 노력이 부족한 게 문제다. 노조 결성 촉진이나 이중노동시장 해소 그리고 공정거래 강화 등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힘을 강화하기 위한 실질적 수단이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장의 임금뿐만 아니라 사회복지를 포함한 사회적 임금을 높이는 일이 중요하다. 한국에서 임금주도 성장이 아니라 소득주도 성장이 제시된 것은 영세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고 사회복지가 모자란 현실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소득주도 성장의 세부 과제도 첫째, 최저임금 인상과 더불어 주거비 같은 핵심 생계비 경감을 통해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것이었다. 둘째, 기초생활보장제도 강화와 실업급여 및 근로장려세제 확대 등 사회안전망 강화였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 외에 다른 정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역시 공격적인 사회복지와 재정 확대 그리고 소득재분배라 할 수 있다. 적극적인 재정지출 확대는 먼저 임금 상승과 함께 단기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경기 둔화를 막고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나아가 불황과 총수요 위축이 잠재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정 확대가 장기적인 성장률도 높일 수 있다. 또한 사회복지 지출의 확대와 재분배는 불평등을 개선하고 소득주도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필요하다. 한국은 GDP에서 사회복지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10%로 OECD 평균에 비해 절반 수준이며, 정부의 소득재분배 기능은 선진국 중 꼴찌 수준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재정정책은 확장적이라 말하기 어렵다. 2018년 정부의 재정지출은 본예산 기준으로 전년에 비해 약 7%, 추경 기준으로 약 5.5% 증가하여 명목 GDP 증가율에 비해 크게 높지 않았다. 세금 수입과 비교한 재정지출, 즉 재정수지를 보면 현재가 박근혜 정부 때에 비해서도 더욱 긴축적이다. 또한 정부는 지난해 핀셋 증세와 최근 종합부동산세 계획에서 보듯 소득재분배를 위한 증세에도 매우 소극적이다.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 획기적인 재정 확대 추진해야
정부는 좀 더 강한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 다른 정책과 함께 획기적인 재정 확대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단기적으로 통합재정수지 적자와 연간 재정지출 증가율 10%를 목표로 한 재정정책은 어떤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약 39%로 낮은 현실에서 부채 비율 상승을 용인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물론 고령화로 인한 미래의 부양 부담을 고려하면 튼튼한 재정이 필요하지만, 재정건전성에 대한 집착은 출산율 저하에서 보이듯 현재 세대의 어려움을 높여 미래의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계의 살림살이가 당장 어려운 지금, 정부가 곳간을 불려서야 되겠는가.
소득주도 성장은 분명 올바른 방향이지만 그 길은 멀고도 험하며 장애물도 적지 않다. 지혜로운 운전자라면 먼 길을 떠나기 전 타이어도 갈고 필요하면 엔진도 바꿔야 할 것이다. 현재 정부는 그런 노력 없이 오르막길에서 속도만 높이려 한 건 아닐까. 바야흐로 업그레이드된 ‘소득주도 성장 2.0’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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