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직관에 묻다〉 게르트 기거렌처 지음, 안의정 옮김, 추수밭

게르트 기거렌처는 직관을 연구해온 독일의 세계적인 심리학자다. 이 책의 요지는 비교적 간단하다. 생각과 직관 가운데 직관의 힘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복잡한 세상에서 깊은 생각이 아니라 직관을 따르자니, 선뜻 내키지 않는다. 이 책은 ‘직관의 힘’을 수긍해야 하는 근거가 큰 줄기를 이룬다.
예컨대 정상급 프로 골퍼일수록 쫓기는 상황에서 정확도가 높아진다. 시간을 들여 스윙에 신경 쓰면서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려 들면 오히려 정확도가 낮아진다. 어떤 분야에서건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는 시간에 쫓기거나 위기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의식적인 통제가 아니라 직관에 따를 때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야구에서 외야수는 타구가 날아오는 궤도와 낙하 예상 지점을 ‘계산’하지 않는다. 직관에 따를 뿐이다.

주식 투자에도 직관이 ‘우월’

무언가를 선택하는 행동에서도 직관이 우월하다. 두 여성을 놓고 고민하는 남자가 있다. 어느 여성에게 ‘올인’할까? 대차대조표 작성하듯 두 여성의 장단점을 나열해본 뒤 한쪽을 선택한다면? 적어도 ‘머리로는’ 올바른 선택일지 몰라도 ‘가슴으로는’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생각이 아니라 직관에 따를 때 궁극적으로는 행복감이 높아진다는 것.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투자 이론은 어떨까? 최적의 자산 배분에 관한 연구로 1990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해리 마코위츠. 그는 자신이 고안한 포트폴리오 이론에 따라 투자했을까? 아니다. 그가 실제 투자에서 따른 규칙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아는 위험 회피 방법, 즉 ‘골고루 나누어 투자하라’였다.
더 많은 정보를 가졌다고 해서 더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디트로이트와 밀워키 가운데 어느 도시의 인구가 많을까? 미국 학생의 60%가 디트로이트라고 답한 반면, 독일 학생은 거의 다 디트로이트라고 답했다. 정답은 디트로이트다. 독일 학생들은 디트로이트에 관해서는 한 번이라도 더 들어본 적이 있다. 그래서 ‘직관으로’ 디트로이트라고 찍은 것이다. 인지도에 따라 추론하는 ‘재인 어림법’이다. 디트로이트와 밀워키에 모두 익숙한 미국 학생은 깊이 고민한 끝에 답을 택했다.

이러한 직관의 능력과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저자는 불확실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오랜 진화의 역사에서 말미암았다고 말한다. 겉으로 보기에 고도로 합리적인 것 같은 사고도 사실은 직관에 크게 빚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생각은 끊임없이 직관에게 묻는 것이다.

기자명 표정훈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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