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싱가포르로 날아간 인사가 있었다. 현역 시절 코트에서 ‘악동’으로 불렸고, 한때 ‘K 라인(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통하는 라인)’으로 불렸던 사나이. 바로 데니스 로드먼(57)이다. 그는 CNN 인터뷰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회한과 기쁨의 눈물이었다. 북한을 다섯 차례나 방문하며 ‘미국 행정부보다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정보가 많은 미국인’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동안 그의 발언은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로드먼의 첫 방북은 2013년 2월 이뤄졌다. HBO 방송의 다큐멘터리 촬영차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스위스 유학 시절부터 시카고 불스 농구팀과 로드먼의 광팬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기획했다는 얘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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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방북 때 만난 김정은 당시 노동당 제1비서는 그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직접 전화 통화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3차 핵실험 직후 북한이 국제사회와 정면충돌하고 있을 때였다. 김 위원장은 그 돌파구로 오바마 대통령과 직접 통화를 제안한 것이다. 미국 국무부 관리들은 로드먼의 얘기를 ‘황당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북한은 그해 6월 국방위원회 중대 성명을 통해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며 북·미 고위급회담을 공식 제안했다. 다른 한편으론 베이징 대화 채널을 통해 “미국이 비행기를 보내주면 김정은 제1비서가 방미하고 싶다. 미국에 가서 NBA 경기도 보고 미국 사회도 보고 싶다”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미국 측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처럼 그때도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케네스 배)이 있었다.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는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한 석방 기회를 놓쳤다며 국무부를 통박하고 나서기도 했다. “미국에서 (인질로 잡힌) 케네스 배를 데리고 올 수 있는 사람은 로드먼밖에 없는 것 아니냐.” 로드먼은 당시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를 비롯한 미국의 비공식 라인이 주목해온 인물이었다. 당시 그를 미국의 대표적인 ‘K 라인’으로 부르기도 했다.

공식 대화 채널이 부재할 때 로드먼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직접 소통을 통해 그의 진면목을 세상에 가장 먼저 소개한 인물이다. 방북 후 그가 미국 사회에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지금 돌아보면 상식적인 것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보니 국제사회와 교류하기를 원하는 정상인이다.’ 하지만 당시 김 위원장을 두둔하는 듯한 그의 발언은 농구선수 시절 ‘기행’의 연장선으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오바마-김정은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그가 예상한 대로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하며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최근 서울을 방문해 아리랑 TV와 인터뷰하면서 “북한이 변화할 준비가 돼 있다. 김정은은 미국을 방문할 의향이 있다. 그리고 세계에 나가고 싶으며 록스타가 되고 싶어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제 그의 예언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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