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은 외국인 조종사를 가장 많이 쓰는 국적 항공사다. 2017년 3월 말 기준 대한항공 조종사 2697명 가운데 409명(15.2%)이 외국인 조종사다. 이는 아시아나항공의 9.7%보다 높은 비율이다. 대한항공 기장 4명 중 한 명은 외국인이다.

그런데 대한항공이 외국인 조종사들을 직접 고용하는 것은 아니다. 해외 에이전시들이 이들을 고용해 대한항공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게 한다. 사람을 고용하는 회사와 일을 시키는 회사가 다르다. 파견이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은 일부 업종에만 제한적으로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항공기 조종사 업무는 파견 허용 업종이 아니다.

ⓒ시사IN 신선영5월4일 대한항공 직원들이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조양호 회장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회사 측의 집회 참석자 색출을 방지하기 위해 ‘가이 포크스’ 가면을 썼다.
내국인 조종사로 구성된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은 2010년 12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지창훈 당시 대한항공 사장, 대한항공을 파견법 위반 혐의로 고소 고발했다. 고용노동부도 2011년 8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고용노동부는 항공기 조종사 업무가 파견법상 파견 허용 업종이 아닌데도 대한항공이 9개 업체로부터 외국인 조종사 401명을 파견받았다고 했다. 파견 사업을 하려면 노동부 장관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9개 업체가 파견을 허가받은 업체도 아니라고 했다.

반면 검찰은 2012년 4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대한항공이 9개 업체로부터 조종사 401명을 파견받아 사용한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외국인 조종사의 근로조건이 오히려 직접 고용된 내국인 조종사의 근로조건보다 우수”하며, 이직의 편의성이나 외국 거주 등 장점으로 “외국인 조종사가 직접 고용보다 파견을 선호”하고 있는데도 파견법을 적용하는 것은 “당초 입법 취지에 맞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파견법을 적용하지 않았다. 검찰은 또 “외국 파견사업주가 국내 파견법을 회피할 목적으로 단지 외국에 적만을 두고 사실상 국내에서 파견 사업을 하는 경우라고 볼 만한 뚜렷한 자료도 달리 없다”고 했다. 당시 조종사노조 쪽을 대리한 권영국 변호사(경북노동인권센터장)는 “노동자 본인이 파견노동을 더 선호한다거나 파견노동자의 근로조건이 더 우수하다는 주관적인 이유를 들어 강행법규인 파견법을 적용하지 않은 것은 자의적으로 기소권을 남용한 것이다. 목적에 관계없이 파견노동이 국내에서 이뤄진다면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파견법이 적용된다”라고 말했다.

ⓒTAS 홈페이지 갈무리대한항공에 조종사를 파견하는 업체 TAS는 대한항공이 지분 100%를 소유한 미국 자회사가 세운 법인이다.

검찰의 무혐의 처분 이후 대한항공은 불법파견 논란 없이 외국인 조종사를 파견받아 쓸 수 있었다. 그런데 대한항공이 조종사를 파견받는 업체 가운데 ‘TAS(Total Aviation Service)’라는 업체의 존재가 다시 논란에 불을 지폈다. TAS는 대한항공이 지분 100%를 소유한 미국 자회사 한진인터내셔널 코퍼레이션이 2010년 세운 법인이다. 한진인터내셔널이 100% 지분을 갖고 있으며 대한항공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종속회사다. 인력공급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이 회사는 대한항공에만 조종사를 파견한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2018년 6월 현재 TAS를 포함한 3개 업체가 대한항공에 외국인 조종사를 파견하고 있으며, TAS 소속 외국인 조종사의 비중은 26.3% (365명 가운데 96명)이다.

그런데 외국인 조종사들의 입사 지원을 상시로 받고 있는 TAS 홈페이지(www.flytas.com)의 도메인 등록 주소는 ‘서울시 강서구 방화동 500-3번지’로 대한항공 전산센터가 있는 곳이고 관리자명도 ‘Korean Air’다. 대한항공의 2017 사업보고서상 TAS의 주소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진 미국 법인 주소(1111 E. Watson Center Rd. Suite A, Carson, CA 90745)와 같다.

2017년 3월 외국인 조종사 비율 15.2%

2010년 조종사노조 수석부위원장으로 대한항공과 경영진을 고소 고발하는 데 참여했던 이규남 대한항공 기장은 “TAS 운영에 대한항공이 깊이 관여돼 있는 만큼 위장회사로 의심된다. 에이전시들이 대한항공에 조종사를 파견하면서 조종사로부터 통상 수수료를 월 1000달러(약 110만원) 받는다고 하는데, 이걸 대한항공 스스로 만들면 그만큼 가욋돈이 생긴다. 사실상 합법적으로 ‘돈세탁’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조종사를 직접 고용하는 대신 TAS를 통해 파견받는 이유에 대해 대한항공은 “자체 용역업체를 통한 외국인 조종사의 고용 형태는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지의 주요 항공사에서 사용하는 보편적인 방식이다. 원활한 조종사 확보는 물론이고 전문 용역업체 간 담합 방지 및 경쟁 유도를 통한 서비스 품질 향상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라고 답했다. 페이퍼컴퍼니 의혹에 대해서는 “TAS는 관련법에 따라 적법하게 설립되었다. 현재 로스앤젤레스 소재 사업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직원 3명이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용역업체 정기 방문 실사와 연 2회의 서비스 품질평가를 통해 각 업체의 법인 유효성 및 운영의 적법성 등을 지속 점검 중이다”라는 답을 〈시사IN〉에 보내왔다.

통상 계약기간이 5년인 외국인 조종사들은 대한항공에서 경력을 쌓고 다른 항공사로 이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사자들이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다. 대한항공이 내국인 조종사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훈련을 시켜가며 외국인 조종사를 쓰는 데는 노무관리상의 이점도 있다고 내국인 조종사들은 주장한다. 외국인 조종사들은 고용 형태상 노조를 만들기 어렵다. 단체협약을 적용받지 않아 비행수당 책정 기준이 되는 비행시간 계산법이 다르다. 10일을 몰아쉬고 나머지 20일을 집중 근무하는 식으로 정규직에 비해 장기간 연속 비행을 한다. 한 현직 부기장은 “외국인 조종사들은 이직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불만이 있어도 제기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1999년 내국인 조종사들이 설립한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2000년, 2001년, 2005년에 크게 파업을 벌였다. 1989년부터 인력 부족을 이유로 외국인 조종사를 사용해온 대한항공은 처음에는 외국인 조종사를 직접 고용하다 파견 형태로 쓰기 시작했다. 1998년 파견법 제정 뒤에도 계속 파견을 받았다. 2001년 조종사노조의 문제 제기로 외국인 조종사를 점차 줄여가겠다고 노조와 약속한 뒤에도 외국인 조종사 비율을 줄이지 않았다(2004년 외국인 조종사 비율은 12.7%였고 2017년에는 15.2%다).

한국민간조종사협회 자문 노무사인 강경모 노무사는 “당장은 비용이 더 비싼데도 결국 노조로 조직화되는 조종사 숫자를 줄이고 완충지대를 둬 노조 힘을 약화시키며 경영 감시와 통제를 받지 않겠다는 의도가 작용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강 노무사는 “이전에는 항공업계 관행이라는 변명의 여지가 있었지만 대한항공이 TAS를 통해 적극 의사를 가지고 파견에 관여한 순간 상황이 변했다. 위험을 외주화한 데 더해 스스로 중간착취에 나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측은 “TAS는 2010년 설립 이후 8년 가까이 영업 순손실을 기록했다. 당사는 계약업체 3사에 동일한 요율의 용역수수료 지급 중이며, TAS 및 TAS 소속 조종사에게 어떠한 특혜도 제공하고 있지 않다. 용역수수료 단가는 영업비밀로 정확한 액수를 공개하긴 어려우나, 인터뷰에 언급된 1000달러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다”라는 입장을 추가로 밝혀 왔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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