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대한항공이 외국인 조종사들을 직접 고용하는 것은 아니다. 해외 에이전시들이 이들을 고용해 대한항공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게 한다. 사람을 고용하는 회사와 일을 시키는 회사가 다르다. 파견이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은 일부 업종에만 제한적으로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항공기 조종사 업무는 파견 허용 업종이 아니다.
반면 검찰은 2012년 4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대한항공이 9개 업체로부터 조종사 401명을 파견받아 사용한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외국인 조종사의 근로조건이 오히려 직접 고용된 내국인 조종사의 근로조건보다 우수”하며, 이직의 편의성이나 외국 거주 등 장점으로 “외국인 조종사가 직접 고용보다 파견을 선호”하고 있는데도 파견법을 적용하는 것은 “당초 입법 취지에 맞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파견법을 적용하지 않았다. 검찰은 또 “외국 파견사업주가 국내 파견법을 회피할 목적으로 단지 외국에 적만을 두고 사실상 국내에서 파견 사업을 하는 경우라고 볼 만한 뚜렷한 자료도 달리 없다”고 했다. 당시 조종사노조 쪽을 대리한 권영국 변호사(경북노동인권센터장)는 “노동자 본인이 파견노동을 더 선호한다거나 파견노동자의 근로조건이 더 우수하다는 주관적인 이유를 들어 강행법규인 파견법을 적용하지 않은 것은 자의적으로 기소권을 남용한 것이다. 목적에 관계없이 파견노동이 국내에서 이뤄진다면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파견법이 적용된다”라고 말했다.
검찰의 무혐의 처분 이후 대한항공은 불법파견 논란 없이 외국인 조종사를 파견받아 쓸 수 있었다. 그런데 대한항공이 조종사를 파견받는 업체 가운데 ‘TAS(Total Aviation Service)’라는 업체의 존재가 다시 논란에 불을 지폈다. TAS는 대한항공이 지분 100%를 소유한 미국 자회사 한진인터내셔널 코퍼레이션이 2010년 세운 법인이다. 한진인터내셔널이 100% 지분을 갖고 있으며 대한항공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종속회사다. 인력공급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이 회사는 대한항공에만 조종사를 파견한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2018년 6월 현재 TAS를 포함한 3개 업체가 대한항공에 외국인 조종사를 파견하고 있으며, TAS 소속 외국인 조종사의 비중은 26.3% (365명 가운데 96명)이다.
그런데 외국인 조종사들의 입사 지원을 상시로 받고 있는 TAS 홈페이지(www.flytas.com)의 도메인 등록 주소는 ‘서울시 강서구 방화동 500-3번지’로 대한항공 전산센터가 있는 곳이고 관리자명도 ‘Korean Air’다. 대한항공의 2017 사업보고서상 TAS의 주소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진 미국 법인 주소(1111 E. Watson Center Rd. Suite A, Carson, CA 90745)와 같다.
2017년 3월 외국인 조종사 비율 15.2%
2010년 조종사노조 수석부위원장으로 대한항공과 경영진을 고소 고발하는 데 참여했던 이규남 대한항공 기장은 “TAS 운영에 대한항공이 깊이 관여돼 있는 만큼 위장회사로 의심된다. 에이전시들이 대한항공에 조종사를 파견하면서 조종사로부터 통상 수수료를 월 1000달러(약 110만원) 받는다고 하는데, 이걸 대한항공 스스로 만들면 그만큼 가욋돈이 생긴다. 사실상 합법적으로 ‘돈세탁’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조종사를 직접 고용하는 대신 TAS를 통해 파견받는 이유에 대해 대한항공은 “자체 용역업체를 통한 외국인 조종사의 고용 형태는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지의 주요 항공사에서 사용하는 보편적인 방식이다. 원활한 조종사 확보는 물론이고 전문 용역업체 간 담합 방지 및 경쟁 유도를 통한 서비스 품질 향상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라고 답했다. 페이퍼컴퍼니 의혹에 대해서는 “TAS는 관련법에 따라 적법하게 설립되었다. 현재 로스앤젤레스 소재 사업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직원 3명이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용역업체 정기 방문 실사와 연 2회의 서비스 품질평가를 통해 각 업체의 법인 유효성 및 운영의 적법성 등을 지속 점검 중이다”라는 답을 〈시사IN〉에 보내왔다.
통상 계약기간이 5년인 외국인 조종사들은 대한항공에서 경력을 쌓고 다른 항공사로 이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사자들이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다. 대한항공이 내국인 조종사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훈련을 시켜가며 외국인 조종사를 쓰는 데는 노무관리상의 이점도 있다고 내국인 조종사들은 주장한다. 외국인 조종사들은 고용 형태상 노조를 만들기 어렵다. 단체협약을 적용받지 않아 비행수당 책정 기준이 되는 비행시간 계산법이 다르다. 10일을 몰아쉬고 나머지 20일을 집중 근무하는 식으로 정규직에 비해 장기간 연속 비행을 한다. 한 현직 부기장은 “외국인 조종사들은 이직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불만이 있어도 제기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1999년 내국인 조종사들이 설립한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2000년, 2001년, 2005년에 크게 파업을 벌였다. 1989년부터 인력 부족을 이유로 외국인 조종사를 사용해온 대한항공은 처음에는 외국인 조종사를 직접 고용하다 파견 형태로 쓰기 시작했다. 1998년 파견법 제정 뒤에도 계속 파견을 받았다. 2001년 조종사노조의 문제 제기로 외국인 조종사를 점차 줄여가겠다고 노조와 약속한 뒤에도 외국인 조종사 비율을 줄이지 않았다(2004년 외국인 조종사 비율은 12.7%였고 2017년에는 15.2%다).
한국민간조종사협회 자문 노무사인 강경모 노무사는 “당장은 비용이 더 비싼데도 결국 노조로 조직화되는 조종사 숫자를 줄이고 완충지대를 둬 노조 힘을 약화시키며 경영 감시와 통제를 받지 않겠다는 의도가 작용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강 노무사는 “이전에는 항공업계 관행이라는 변명의 여지가 있었지만 대한항공이 TAS를 통해 적극 의사를 가지고 파견에 관여한 순간 상황이 변했다. 위험을 외주화한 데 더해 스스로 중간착취에 나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측은 “TAS는 2010년 설립 이후 8년 가까이 영업 순손실을 기록했다. 당사는 계약업체 3사에 동일한 요율의 용역수수료 지급 중이며, TAS 및 TAS 소속 조종사에게 어떠한 특혜도 제공하고 있지 않다. 용역수수료 단가는 영업비밀로 정확한 액수를 공개하긴 어려우나, 인터뷰에 언급된 1000달러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다”라는 입장을 추가로 밝혀 왔다.
-
조씨 일가의 ‘갑질 논란’ 남의 일 아닌 인하대
조씨 일가의 ‘갑질 논란’ 남의 일 아닌 인하대
변진경 기자
1998년 미국으로 유학 갔던 한 대학생이 한국에 돌아왔다. 미국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졸업 인정 학점도 채우지 못했던 그는 인천시에 있는 종합대학인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3학...
-
“이 학교 주인은 나”라는 조양호 회장
“이 학교 주인은 나”라는 조양호 회장
변진경 기자
인하대의 ‘인’은 인천, ‘하’는 하와이를 뜻한다. 1954년 개교한 인하대(당시 인하공과대학) 설립 기금의 바탕은 주로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하와이 동포들의 성금 1...
-
“나는 조양호 회장의 블랙리스트 1호”
“나는 조양호 회장의 블랙리스트 1호”
전혜원 기자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었을까요?” 턱수염이 희게 센 쉰일곱의 조종사가 큰 눈을 껌벅이며 말했다. 장애물 없이 하늘을 날고 싶던 제주도 소년은 항공대학을 나와 공군 R...
-
대한항공 직원들이 가면을 쓰는 이유
대한항공 직원들이 가면을 쓰는 이유
전혜원 기자
최소 한 정거장 전에 내려 마스크로 얼굴 가리고 오기. 유니폼을 입고 오는 경우 튀는 휴대전화 액세서리 하지 않기. 귀고리, 반지 등 장신구 빼기. 이름 부르지 않기. 모르는 사람...
-
대한항공 ‘갑질’ 경영을 견제하려면
대한항공 ‘갑질’ 경영을 견제하려면
전혜원 기자
“‘갑질 기업’이라 비난받는 대한항공을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한 것은 지나친 특혜입니다. 동의하십니까?”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기장이 물었다. 5월12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
기자들의 시선 - ㄱ씨
기자들의 시선 - ㄱ씨
시사IN 편집국
고재열 기자 scoop@sisain.co.kr 이 주의 ‘어떤 것’ 알리바바와 함께 중국의 양대 인터넷 쇼핑몰 업체로 꼽히는 징동닷컴 본사 로비에서 안면 인식 기술을 처음 접했다....
-
대한항공·아시아나 함께 외친 ‘회장 퇴진’
대한항공·아시아나 함께 외친 ‘회장 퇴진’
전혜원 기자
대한항공 설립 1962년 6월(대한항공공사), 1969년 3월 국영에서 민영 전환 직원 수 1만8300여 명(2017년 말 기준) 노조 4개(대한항공노동조합,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