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
“대통령님, 저도 봐주세요!” 6월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주민센터 앞. 지방선거 사전투표를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대에게 “잘 살펴보겠다”라고 답한 뒤 발길을 돌리던 참에 김대범씨(25·왼쪽)가 소리쳤다. “이런 기회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문 대통령이 돌아봤다. 김씨는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서 다음 총선에는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공보물과 투표용지를 제공해주세요. 제 이름처럼 대범하게 장애인 정책을 밀고 가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대통령과 시위대는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씨는 “큰아빠가 부족한 조카의 말을 끝까지 경청해주는 것 같아서 감동적이었다”라며 웃었다.

대통령을 만난 뒤 김씨도 사전투표를 했다. 김씨는 “(투표해야 하는) 종이가 일곱 장인데 후보들이 많이 나와서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김씨는 기호와 정당, 후보 이름만 나열된 지금의 투표용지에 그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호 옆에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같은 각 정당 로고가 있고, 그 옆에 후보들 얼굴이 여권 사진처럼 있고, 나머지에 기표 칸이 있는 투표용지가 나왔으면 우리나라 투표율도 90%가 넘지 않았을까? 그럼 세상이 바뀌었을 것이다.”

아직 세상은 바뀌지 않아서, 투표용지뿐 아니라 투표소에 가기 전 집으로 오는 선거 공보물도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어렵다. 또 다른 발달장애인 김정훈씨(27·오른쪽)는 이번 선거 공보물 중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쉽거나 보기 편한 공보물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글은 0.1%이고 그림만 99.9% 있는 공보물이 나왔으면 좋겠다(김정훈씨).” “만화 형식으로 선거 공보물이 나오면 재밌으면서도 ‘이런 사람이 이런 정책을 펴서 서울을 이렇게 만들겠구나’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김대범씨)”

두 사람은 2016년 출범한 발달장애인 자기권리 옹호단체 ‘한국피플퍼스트’에서 활동하며 쉬운 공보물과 그림 투표용지 도입을 요구해왔다. 거창한 꿈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공익변호사 로펌이 주정부의 지원을 받아 발달장애인 유권자를 위한 쉬운 공약집을 만든 사례가 있다. 영국, 타이완 등에서는 정당 마크나 후보자 사진이 들어간 투표용지를 사용한다.

한국의 현실은 더디다. 2017년 비영리 민간단체 ‘피치마켓’이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공약집을 만들었지만, 공직선거법상 위법 소지가 있어서 온라인 배포에 그쳤다. 후보자 사진이나 정당 마크를 새긴 투표용지를 사용하려면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한국피플퍼스트 전국위원장인 김정훈씨는 “내가 죽기 전에 공보물과 투표용지가 쉽게 나와서, 미래의 발달장애인도 쉽게 투표를 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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