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페르시아만에 진입했습니다. 날씨가 더워서 죽겠습니다. ‘6by6(6시간 일하고 6시간 휴식)’으로 뛰어서 힘드네요. 하지만 참고 버텨보렵니다. 파이팅!”

유품인 스마트폰에서 고 장선호씨(24)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어머니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지난해 8월6일, 화학물질 운반선에 실습항해사로 승선 중이던 장선호씨는 스마트폰으로 이 영상을 찍은 몇 시간 후 숨졌다. 장씨가 탄 배의 선장은 실습생 신분인 장씨에게 하루 12시간 노동을 강요했다. 제때 쉬지 못한 장씨는 이날 선내 탱크 청소를 돕던 중 열사병으로 쓰러졌다. 목포해양대 3학년 2학기, 민간 선박 실습 3주차에 벌어진 일이었다.

해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1년간 실습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해양대 재학생의 경우, 대개 6개월은 학교 배에서, 6개월은 민간 배에서 실습을 거친다. 이 기간에 재학생들은 실습항해사(실항사), 실습기관사(실기사)로 불리며, 선내 잡무를 처리한다. 급여는 고작 30만~40만원이지만, 때때로 이들은 실습이라는 명목하에 과도한 노동을 요구받는다. 장씨 역시 하루 12시간이 넘는 노동을 강요받으며, 제대로 쉬지 못했다.

장선호씨의 책상 위에 놓인 그의 유품.

장선호씨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5월4일 인천지검 형사2부는 장씨에게 무리한 노동을 지시한 선장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선장이 구속되기까지 내부고발이 큰 역할을 했다. 선장과 1·2항사가 모두 항해 기록을 조작했지만, 3항사가 진실을 밝히면서 장씨의 억울한 죽음이 조금이나마 밝혀지게 됐다.

장씨가 사망한 지 9개월이 되었지만, 아직 장씨 어머니는 아들의 방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장씨의 책상에는 실습비를 수령받던 통장 잔액 2만6300원과 장씨가 언젠가 타고 싶었던 머스크라인(덴마크 해운사)의 컨테이너선 레고가 아직 조립되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