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틱스(정치)’에서 온 ‘폴리’라는 접두사는 ‘악마의 접두사’다. 어떤 말에도 ‘폴리’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나쁜 의미가 되어버린다. ‘정치 교수’를 의미하는 ‘폴리페서(politics+ professor)’가 그렇고 ‘정치 기자’를 의미하는 ‘폴리널리스트(politics+journalist)’가 그렇고 ‘정치 관료’를 의미하는 ‘폴리크라트(politics+ bureaucrat)’도 그렇다.

이 ‘폴리’ 계열 신조어를 되새겨보는 토론회가 지난 10월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새언론포럼이 개최한 이 토론회는 언론인과 교수의 정치 참여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이날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가 발표한 발제문에 따르면 이명박 후보 측에 1000여 명의 ‘폴리페서’가, 정동영 후보 측에 100여 명의 ‘폴리페서’가 활약하고 있다. 김 교수는 대선 캠프에 참여한 ‘폴리널리스트’는 60~70명이라고 추산했다.

김 교수는 ‘폴리페서’와 ‘폴리널리스트’의 해악을 여러 가지로 지적했다. ‘폴리널리스트’는 상호 감시·견제 구조를 허물어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고, ‘폴리페서’는 학계의 권력 지상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특히 특정 캠프에 관여하는 이들이 중립적인 척 토론회 등에 참석해 여론을 왜곡하는 이중행각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폴리크라트’의 패악은 이들보다 더 크다. 이들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다. 유력 후보에게 줄을 대기 위해 비공개 자료를 몰래 캠프에 가져다준다. 여야 간에 진행되는 치열한 의혹 공방은 이들의 자료 유출에 의한 경우가 많다. 이들이 하는 짓에 비하면 거리 유세의 치어리더 노릇을 하는 ‘폴리테이너(politics+entertainer)’들의 쇼는 귀여운 애교로 봐줄 만하다.

유난히 종교 관계자들의 참견이 많은 올해 대선에서는 목사님과 스님들도 ‘폴리’ 계열 신조어 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정치 목사’인 ‘폴리테스탄트(politics+protestant)’와 ‘정치 승려’인 ‘폴리몽크(politics+monk)’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폴리테스탄트’는 교회 장로인 이명박 후보와 인연이 깊다. ‘서울시 봉헌 발언’ 이후 불교계에 미운털이 박혔지만, 이 후보는 교계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있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맡고 있는 인명진 목사를 비롯해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의장인 김진홍 목사 등 많은 목사가 이 후보를 돕고 있다.

정동영 후보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폴리몽크’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이명박 후보에게 미온적인 ‘불심(佛心)’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특히 정 후보 측은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던 영남 불교 세력 끌어들이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번 주에만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과 종정인 법전 스님을 찾은 것을 비롯해 네 차례나 불교 관련 행사에 참석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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