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은 의료용 대마 합법화에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먼저 6월 초 세계보건기구(WHO)가 대마 추출물을 원료로 한 CBD(카나비디올, Cannabidiol) 오일이 뇌전증(간질), 알츠하이머(치매) 등에 효능이 있다고 밝힌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예비보고서를 통해 의료용 대마의 효능을 인정한 지 7개월 만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6월 중으로 CBD 오일이 함유된 뇌전증 치료제를 승인하리라 예상된다. 의료계 전문가로 구성된 FDA 자문위원회는 지난 4월 3단계 임상시험 결과 뇌전증 치료 효과가 입증된 에피디올렉스(Epidiolex)에 대해 만장일치로 치료제 승인을 권고했다. 대마 성분 치료제를 의약품으로 승인하는 건 FDA 역사상 처음이다.

의미 있는 변화다. 변화의 물결은 대마를 금기시하는 한국에도 상륙했다. 국내에서도 의료용으로 합법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올해 초 신창현·박영선 의원 등 국회의원 11명은 마약류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외국에서 효능이 입증된 의료용 대마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승인하에 허가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시사IN 조남진황주연(오른쪽)·최익준씨 부부가 뇌전증을 앓는 자녀를 돌보고 있다. 의사인 이들 부부는 해외 자료를 통해 대마 오일이 뇌전증에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이 개정안은 올 상반기 국회 파행이 거듭되면서 법안 심사 단계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 시절 대마를 금기시한 이후 처음으로 입법부가 합법화의 길을 텄다는 데 의의가 있다. 관련 단체의 활동과 언론 보도가 잇따르면서 의료용 대마 합법화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도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과거 대마 합법화를 둘러싼 프레임이 ‘대마 사용을 처벌하지 말아달라’였다면 이제 ‘우리 사회에 필요하니 허용하라’고 바뀐 셈이다.

문제는 정부 당국의 시계가 여전히 모든 종류의 대마를 금기시한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올해 초 평창 동계올림픽 때 벌어진 일이 대표적이다. 세계도핑방지기구는 ‘2018년 금지목록 국제표준’을 펴내며 올해부터 CBD를 금지 약물에서 제외했다. CBD는 해외 운동선수들이 통증 치료를 목적으로 널리 쓰는 약물이다. 해시시, 마리화나 등 대마초에서 얻을 수 있는 다른 물질은 사용을 금지했지만 의료 목적으로 쓰이는 CBD 오일은 허용했다.

해외 직구로 구할 수 있는 CBD 오일. 대마 추출물을 원료로 한다.
그런데 국내법상 이는 엄연한 불법이다. CBD 오일을 복용한 다른 나라 선수들이 국내법에 따라 마약 사범이 되는 것 아니냐는 소란이 일었다. 당시 국내 검찰 역시 CBD 투여 선수를 적발했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애매한 태도를 보여 논란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는 ‘선의의 범죄자’가 양산되고 있다. 치료용으로 오일 등을 구입했다가 검찰 수사를 받고 범죄자가 되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관세청의 수사 의뢰로 2017년 한 해에만 80여 건이나 검찰 수사가 이뤄졌다. 시대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나 다름없다.

“범죄자로 살거나 이 나라를 떠날 수밖에”

결혼 8년 만에 시험관을 통해 만난 아이였다. 백일 무렵부터 좀 달랐다. 엄마, 아빠와 눈을 맞추면 방긋방긋 ‘사회적 미소’를 지어야 하는데 그러질 않았다. 배밀이 같은 발달 단계도 다른 아이보다 늦었다. 태어난 지 1년6개월부터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앉혀놓으면 자꾸 상에 머리를 박았다. 이유를 몰라 병원을 전전하다 뒤늦게 병명을 알게 되었다.

뚜렷한 요인 없이 발작이 반복되는 병, 뇌전증이었다. 소아 뇌전증 가운데에서도 가장 심각한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이었다. 약물치료가 잘 되지 않고 인지기능 저하와 발작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였다. 엄마, 아빠는 모두 의사였다.

ⓒ의료용 대마 합법화 운동본부 제공지난 4월 ‘의료용 대마 합법화 운동본부’ 회원들이 거리 시위에 나섰다. 2017년 6월 탄생한 운동본부는 뇌전증과 치매를 앓는 환자 가족들로부터 성원을 받았다.
매일 여러 가지 약을 먹여야 했다. 너무 많은 약을 먹은 아이는 자꾸 토했고,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엄마 황주연씨와 아빠 최익준씨는 관련 논문 등을 찾다 해외에 탁월한 치료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치료제가 바로 CBD 오일이었다. 난치성 뇌전증과 치매 등에 효과를 내면서도 ‘환각작용’은 없었다.

효과는 놀라웠다. 똑바로 앉아 있지 못해 매일 수십 번씩 앉기 훈련을 해야 했던 아이가 CBD 오일을 복용한 뒤 혼자 일어나 앉았다. 눈물을 흘리며 기뻐할 틈도 없었다. 부모는 부지런히 CBD 오일을 ‘해외 직구’로 사다 날랐다. 주치의도 아이의 뇌파가 너무 호전됐다며 놀라워했다. 분명히 효과가 있는 것 같으니 계속 복용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것이 ‘범죄’가 되는 줄은 까맣게 몰랐다. 지난해 7월 검찰 마약수사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검찰에 불려간 엄마는 소변을 제출하고, 머리카락도 뽑혔다.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죄는 있지만, 검찰이 기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기소유예는 무혐의 처분이 아니다. 수사기관 내부 기록으로 남는다. 주치의가 CBD 오일이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서까지 써주었지만 현행법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런 사례는 수두룩하다. 경북 김천에서는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이를 둔 엄마가 CBD 오일을 해외 직구로 샀다가 검찰에 체포됐다. CBD 오일은 사용해보지도 못했다. 법원은 선고를 유예했지만, 검찰의 태도는 달랐다. 검찰은 “아들의 상태가 악화될 경우 재차 다른 경로로 대마를 입수하여 치료하고자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며 항소했다. 엄마는 아이 치료를 포기하고 항소심 재판을 준비하는 신세가 되었다.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 때문에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법정에 서야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금 국내 뇌전증 환자는 약 19만명이다. 치료 효과가 알려지면서 마약 범죄자가 될 것을 각오하고 CBD 오일을 구입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뇌전증 아이의 엄마인 의사 황주연씨는 “내 아이에게 먹여본 결과 외국 논문에서 입증된 치료 효과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의료용 대마가 합법화되지 않는다면 평생 범죄자로 살거나 이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CBD 오일이 뇌전증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논문은 널렸다. 다만 해외에만 있다. 가장 활발한 곳은 미국이다. 미국은 캘리포니아 주가 1996년 최초로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한 이래 전체 50개 주 가운데 29개 주에서 의료용 대마를 허용한다. 2016년 유명 국제 신경학회지 〈랜싯 뉴롤로지(Lancet Neurology)〉는 난치성 뇌전증 환자 137명에 대해 12주 동안 임상시험한 결과 36.5%의 증상이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17년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역시 환자 120명의 발작 증상이 월평균 12.4회에서 5.9회로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 학회지는 2018년에도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환자 225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체중 1㎏당 CBD 오일 20㎎을 복용한 군에서는 41.9%, 체중 1㎏당 10㎎을 복용한 군에서는 37.2%의 증상 감소가 있었다고 보고했다.

가장 파장이 클 결과는 역시 WHO 보고서 내용이다. 2017년 11월 WHO ‘약물의존성 전문가위원회(ECDD:Expert Committee on Drug Dependence)’가 39차 총회에서 발표한 CBD 예비 보고서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2018년 6월 열린 40차 총회에서 발표된 정식 보고서 역시 이 예비 보고서를 토대로 했다.


“대마류 식물에서 발견되는 CBD는 현재 뇌전증의 가장 진보된 치료제다. 여러 임상시험에서 CBD는 최소한 몇몇 종류의 뇌전증에 효과적인 치료법임이 증명되었으며, FDA 승인을 앞두고 있는 에피디올렉스도 3단계 임상시험을 거치고 있다. CBD 기반의 오일, 보충제, 껌, 고농축 추출물을 함유한 제품이 이미 의사의 처방 없이 여러 질병의 치료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CBD는 파킨슨병, 다발경화증, 신경성 통증, 우울증, 류머티즘 관절염, 당뇨 합병증 등 다른 수많은 질병에도 유용한 치료제일 수 있다(오른쪽 〈표〉 참조).

CBD는 전반적으로 안전하다. 보고된 부작용은 CBD 자체의 부작용이 아닌, CBD와 환자가 이미 섭취하던 약물 사이에 일어난 상호작용으로 인한 부작용일 것이다. 몇몇 국가에서는 CBD를 의약 상품으로 수용하기 위해 국가 정책을 수정했다. 지금까지 CBD를 기호용으로 사용한다는 증거나 순수 CBD를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공중보건상의 문제 사례는 없다.”


특히 WHO 약물의존성 전문가위원회는 중독 및 남용 가능성에 주목했다. 보고서는 CBD가 약물중독과 관련이 있는 뇌 내부 ‘자기 자극(self-stimulation)’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동물실험 모델은 물론이고 인간에게도 CBD가 남용이나 의존 가능성을 일으키는 효과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보고서의 요지다. WHO가 이번에 CBD 오일의 치료 효과를 인정함으로써 전 세계의 의료용 대마 합법화 움직임도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합법화 이후’가 진짜 문제

의료용 대마 관련 주무 부처인 식약처도 세계적인 연구 결과를 모르지 않는다. 실제로 2015년 식약처는 이런 연구 결과 등을 토대로 국회에 마약류관리법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19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의료용 대마 합법화가 타당하다는 국회 전문위원의 의견이 있었음에도 이 개정안을 의결하지 않았다. 결론은 “20대 국회에서 다시 하자”라는 것이었다. 대마 합법화 논란을 부담스러워한 국회의원들이 법 개정을 미룬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변곡점은 2017년 6월 ‘의료용 대마 합법화 운동본부’가 출범하면서다. 국내 최초 대마 합법화 관련 상설 시민단체였다(〈시사IN〉 제518호 ‘대마는 대체 불가능한 ○○○이다’ 기사 참조). 운동본부는 뇌전증과 치매를 앓는 환자 가족들로부터 뜨거운 성원을 받았다. 올해 초 20대 국회가 개정안을 발의하도록 만든 동력이었다. 지난 4월20일에는 ‘세계 대마초의 날’을 맞아 거리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에서 최초로 벌어진 대마초 관련 집단 시위였을 것이다.

5월29일 전반기 20대 국회가 관련 법을 다루지 못하고 종료되면서 이제 공은 후반기 20대 국회로 넘어갔다. 그럼에도 의료용 대마에 대한 국민 공감대가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만큼 ‘대세’를 거스르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식약처를 통한 정부 입법 가능성도 있다. 최근 식약처 담당자는 의료용 대마 합법화 운동본부와 면담하면서 미국 FDA 및 WHO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다며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19대 국회에서 이미 개정안을 냈던 만큼 20대 국회에서 정부 입법을 제출할 가능성이 크다. 의료용 대마 합법화 운동본부 강성석 목사는 “이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쯤 합법화를 목표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문제는 ‘합법화 이후’인지도 모른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2003년 중국, 2013년 일본이 제한적으로 합법화하는 동안 한국은 의료용 대마의 불모지를 자처해왔다. 앞서 말했듯 어떠한 관련 연구와 기술도 없다. 진작부터 의료용 대마를 상용화한 외국 기업의 시장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나마 대마의 한 종류인 삼베로 유명한 안동시가 대마 산업의 가치에 주목하자며 합법화 운동에 힘을 싣는 수준이다.

지난달 의료용 대마 합법화 운동본부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캐나다 의료용 대마 합법화를 이끈 온타리오 주 부총리와 관련 투자사 회장이었다. 이들의 만남은 주한 캐나다 상공회의소가 주선했다. 앞선 캐나다의 경험을 통해 한국에서 시행착오를 줄여보자는 취지의 만남이었지만, 속내는 한국 시장에 대한 사전 정지작업 성격이었다. 한국 사회가 환자 가족을 범죄자로 만드는 뒤편에서 누군가는 다른 눈독을 들이고 있는 셈이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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