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5일 대법원은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조사한 문건 파일 410개 가운데 총 98개를 공개했다. 조사 보고서에 인용된 문서 90개 외에도 그동안 세부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던 미공개 문건 8개 파일이 처음 공개됐다. 〈시사IN〉은 공개된 파일 가운데 사법부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훼손된 대표적인 대목을 꼽아 날것 그대로 전달한다.
 

[165] VIP 보고서 (2015년 8월3일)

❶ 2015년 8월3일 작성된 ‘VIP (대통령) 보고서’다. 법원행정처는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독대를 앞두고 이 자료를 준비했다. 문건의 주된 내용은 상고법원 필요성을 피력하는 것이다. 상고법원의 대안으로 꼽히는 대법관 증원론은 ‘민변 등 진보적 법조계 인사가 대법관이 될 수 있다’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❷ 박근혜 청와대는 ‘양승태 대법원’의 상고법원 도입안에 냉담했다. 상고법원 판사 임명권이 대법원장에게 있다는 이유였다. 법원행정처는 이 문건에서 상고법원 판사 임명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법부 수반이 행정부 수반에게 인사권을 자진해서 내주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❸ 양승태 대법원은 ‘대통령 입맛’에 맞는 비전을 제시하느라 애썼다. 그 결과 ‘사법 한류’라는 양승태 대법원의 신조어가 탄생한다. 세계경제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으며, 법치주의가 바로 서야 GDP도 오른다고 주장한다. 

 

❹ 양승태 대법원은 사법 한류를 주도하는 컨트롤타워가 청와대라고 강조한다. 사법 한류가 박근혜 정부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위한 강력한 추진 동력이 된다는 주장이다.

 

[79] 상고법원 BH 대응 전략 (2015년 3월26일)

❺ 대법원은 공식 문건에서 대통령을 VIP로, 대법원장을 CJ(Chief Justice)로 표기했다. 상고법원 설치는 입법 사안으로 결국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이 문건이 작성된 2015년 3월 당시에는 여당(새누리당)보다 대통령의 힘이 강했다. 입법을 위해서는 국회보다 청와대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문건 전반에 깔려 있다.

❻ 대통령을 설득하려면 사법 관련 이슈 전반을 총괄한다고 지목된 청와대 민정수석의 지지가 절실했다.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은 대법원과 상고법원 도입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❼ 우병우 민정수석이 ‘뚫리지’ 않을 것이라 보고 법원행정처는 ‘발상의 전환’ ‘입체적 대응 전략’ ‘우회 전략’이라는 표현을 동원한다. 우병우를 대체할 사람으로는 이병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첫손에 꼽혔다.

❽ 이병기 비서실장 ‘맞춤형’ 접근에 주력했다. 이 비서실장이 주일 대사 당시 삼계탕 1500봉지를 들고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를 방문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는 등 ‘깨알 같은’ 전략이 눈에 띈다.

[358] VIP 면담 이후 상고법원 입법 추진 전략 (2015년 8월20일)

❾ 2015년 8월6일, CJ(양승태 대법원장)와 VIP(박근혜 대통령)가 만났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상고법원에 관해 원론적인 대답을 남긴다. 법원행정처는 VIP와 CJ의 만남이 ‘의미 있는 전환점’이라며, 면담 자체에 큰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한다. 실상은 조금 달랐다. 대통령의 원론적인 답변은 사실상 거절에 가까웠다. 이후 법무부는 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152] 성완종 리스트 영향 분석과 대응 방향 검토 (2015년 4월12일)

❿ 법원행정처는 정국 변화에 민감했다. 2015년 4월, 법원행정처는 ‘성완종 리스트’ 영향과 추후 사법부 대응 방향을 보고서로 정리했다. ‘對BH, 對입법부 협조 및 우호관계 유지’가 결론이었다. 상고법원으로 대표되는 대법원의 숙원 사업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와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주도권을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도권 획득의 ‘수단’은 재판이 된다. 사법부 스스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정윤회 문건 보도로 해임된 〈세계일보〉 사장의 잔여임기 보수 청구 사건을 ‘사법부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는 사안’으로 여겼다. 처리 방향과 시기를 직접 조율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남긴다. 재판을 ‘거래’나 ‘협상 카드’로 여기는 태도다. 

 

[5] 인권법연구회 대응 방안 (2016년 4월7일)

⓫ 2016년 4월 작성한 문건이다. 법원 내 전문 분야 연구회 중 하나인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연구회 산하 소모임인 ‘인권 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이하 인사모)’은 법원행정처에 눈엣가시였다. 법원행정처는 인사모를 ‘사법부 전체 여론을 호도’하는 강경파로 여기고, 국제인권법연구회를 견제하려 했다.

⓬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힘을 빼려면 젊은 법관들이 관심 가질 만한 새로운 연구회를 신설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예시로 ‘사법국제화 연구회’ ‘법원,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law 연구회’ 등이 거론된다. 중복 가입 금지 규정을 만들어 국제인권법연구회에 중복 가입한 법관들을 정리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27] 이판사판 카페 동향 보고 (2015년 3월2일)

⓭ 법원행정처는 법관들이 자유롭게 모인 익명 게시판도 폐쇄하려 했다. 현직 법관들이 모인 ‘이판사판야단법석’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회원 수와 각종 동향을 수차례 보고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이 카페 회원으로 위장해 ‘게시판 운영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글’을 올렸고, 이 글에 대한 반응(댓글·조회수·커뮤니티 분위기)을 정리해 보고했다. 

 

[36] 상고법원에 대한 사법부 내부 이해도 심층화 방안 (2015년 7월6일)

⓮ 상고법원 도입을 반대하는 법관 대응 방법을 정리한 보고서다. 법관 개인을 견제하는 프로세스를 정리했다. 설득→상급자를 통한 경고→보수 언론 활용→고립화 순서로 법관 개인을 통제하겠다는 일종의 ‘단계적 고립화 전략’이다. 

 

[192]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 현안 관련 검토 (2016년 3월24일)

⓯ 2016년 3월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결과 박 아무개 판사가 직선제 선거를 통해 의장으로 선출됐다. 법원행정처는 박 판사의 등장으로 추후 단독판사회의 의장 선출이 직선제로 바뀌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바로 전해인 2015년에는 서울중앙지법 기획 라인을 통해 직선제를 막았음을 밝히기도 한다. 법원행정처는 직선제 의장 선출이 곧 법관들의 ‘세력화’로 이어진다며 경계한다.

 

[151] 전교조 효력 정지 (2014년 12월3일)

⓰ 2014년 9월19일, 서울고등법원이 전교조가 제기한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2심 판결 직후 고용노동부 장관은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2014년 12월3일에 작성된 이 문건에서 법원행정처는 재항고 인용·기각 여부에 따른 정무적 파장을 미리 정리했다. 문건은 대법원의 재항고 인용 결정이 정부나 사법부 모두에게 부담이 없는 결론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추후 상고법원 입법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BH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건 후반부에는 이런 대목도 등장한다. “곧 법원 정기인사 시기도 다가옴. 해당 재판장(2심 판결 내린 고법 재판장) 교체 가능성 높음.” 개별 재판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영향력을 미치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대목이다. 

 

[59] 원세훈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2015년 2월10일)

⓱ 2015년 2월, 국정원 정치 개입(댓글 사건)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항소심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됐다(징역 3년). 원 전 원장 판결에 대한 각계각층의 반응을 살피는 한편, 추후 대법원에서 이 건을 ‘신속 처리 추진’하며, ‘법률상 오류 여부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법원행정처가 개별 재판에 개입하려 한 정황이라고 지적받는 대목이다. 

 

[82]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협상 추진 전략 (2015년 11월19일)

⓲ 2015년 11월에 작성된 이 문건에서는 “사법부가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 주요 사건을 정리했다. KTX 승무원, 통상임금, 키코, 강정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쌍용차 노조, 통합진보당, 원세훈 전 국정원장, 과거사정리위원회 등 박근혜 정부 들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주요 사건 대다수가 포함되어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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