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만났는데도 여전했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치 동안을 유지하고 있었고, 조잘조잘 수다쟁이였으며, 대화 중간중간 반짝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63)는 원조 스타 PD다. MBC에서 〈퀴즈 아카데미〉 〈우정의 무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 〈TV 청년내각〉 등 재미와 의미를 겸비한 프로그램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예능 PD로서는 처음으로 프로듀서 이름 자체가 흥행의 보증수표 구실을 하는 시대를 열었다. 이후 대학으로 옮겨 교수를 하다 OBS 경인방송 대표이사, JTBC 제작본부장 등을 거쳐 2016년 9월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에 임명됐다.
주 대표는 글도 쓰고 노래도 만드는 만능 재주꾼이다. 〈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 등 책 15권을 썼고, 〈다 지나간다〉 〈시위를 당겨라〉라는 두 장의 앨범도 냈다. 주 대표가 서울의 문화예술 지원 사업을 총괄하게 됐다는 소식에 많은 이가 박수를 친 것도 그의 다양한 창작 경험과 넘치는 에너지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취임 초 각오를 밝히면서 그는 김구 선생의 문화강국론을 인용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입니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임기 반환점을 지난 지금, 그의 문화강국론은 어디까지 왔을까. 5월30일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만난 주 대표는 서울문화재단이 이미 하고 있던 사업과 자신이 새롭게 발진한 사업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기존 사업은 한마디로 ‘지원(志願)하면 지원(支援)하는 사업’이었다. 최대 19명까지 동시 입주해 집필에 몰두할 수 있는 연희문학창작촌을 비롯해 금천예술공장, 서울무용센터, 잠실창작스튜디오,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 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등 17곳 기지를 기반으로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주 대표의 더 큰 관심은 일반 시민이 일상에서 누리는 생활 예술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름하여 ‘풀뿌리 문화주의’. 이를 위해 서울 시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아무나 PD’ 1000명 양성 프로젝트를 가동해 각자의 터전에서 문화공연을 기획하고 즐길 수 있는 생활 예술가들을 배출하고 있다.
서울 시내 지하철을 ‘달리는 문화 공간’으로 바꾸는 것도 그의 숙원이다. 광고판에 성형외과 광고, 대출 광고가 빼곡하고 승객들은 휴대전화에만 집중하는 지하철 풍경을 볼 때마다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시험적으로 경전철 우이신설선을 갤러리로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앞으로 지하철 차량은 물론 ‘서울의 심장부 광화문역’ ‘외국인 놀이터 녹사평역’ ‘연극의 메카 혜화역’ 식으로, 서울의 주요 지하철 역사도 저마다 개성이 강한 문화 공간으로 바꿔나갈 계획이다. “문화(culture)는 재배(cultivate)하는 건데, 지배하면 야만이겠죠? 야만에서 벗어나 시민 모두가 즐겁고 인간다운 문화도시를 만드는 데 남은 임기를 바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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