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을 다섯 발자국 이상 옮기기 어려웠다. 5월2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전 성남시장)가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를 찾았다. 아내 김혜경씨도 동행했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불자와 나들이객으로 붐비던 사찰이 술렁였다. 이 후보 못지않게 김혜경씨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텔레비전에서 잘 봤다”라며 반가워했다. 지난해 출연한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후보를 수행하던 캠프 관계자들 사이에서 “방송에 나오신 게 잘한 것 같다” “후보님이 오히려 서운하겠다”라며 농이 오갔다.

경기도 이천에서 온 이 아무개씨(37)는 한참 동안 이 후보의 뒤를 쫓았다. 인파가 몰려 사진 촬영을 요청할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웠다. 솜사탕을 손에 쥔 3형제가 종종거리며 아빠 이씨를 따라갔다. 이씨는 “이재명 (전) 시장은 기존 정치인들과 달라 마음에 든다”라고 말했다. “성남시장으로서 보여준 시정을 높이 평가한다. 공약을 하면 결단력 있게 추진한다. 복지정책을 보면서 젊은 부모들끼리는 성남으로 이사 가야 한다는 얘기를 했었다.” 앞다퉈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 중에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가족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부모의 성화에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포즈를 취했다.

ⓒ윤성희5월22일 석탄일에 신륵사를 방문한 시민들과 사진을 찍는 이재명 후보와 부인 김혜경씨(왼쪽 두 번째).
‘변방사또’를 자처하던 이재명 전 시장이 체급을 높여 경기도지사 자리를 노린다. 상대는 남경필 자유한국당 경기도지사다. 당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삶의 궤적까지 정반대다. 5선 의원 출신인 현직 도지사와의 대결에서 이 전 시장은 상당히 앞서가고 있다. 5월14일 발표된 경기도지사 선거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56.9%, 남경필 자유한국당 후보는 17% 지지율을 기록했다(〈한국일보〉와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5월11~12일 이틀간 조사.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www.nesdc.go.kr 참조). 경기도는 전통적인 스윙보트 지역이지만, 도지사 선거에서는 1998년을 제외하고 모두 보수 정당 후보가 당선됐다.

물론 성남시장 이재명의 존재감은 일찍부터 기초자치단체장 이상이었다. 이 후보는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서 21.2%를 득표했다. 2위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0.3%포인트 뒤진 3위였다. 탄핵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6년 12월에는 지지율 18%로 당시 야권 후보 중 지지율 1위였던 문재인 대통령(20%)을 바짝 뒤쫓기도 했다. 안희정 전 지사가 성폭행 의혹으로 차기 대선 레이스에서 탈락한 상황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의 이목은 경기도지사 후보 이재명에게 쏠린다.

이 후보는 아웃사이더였다. 공장 노동자 출신 변호사가 유력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열광을 불러왔지만 동시에 여러 약점을 남겼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상대 후보는 이 지점을 치고 들어왔다. 2014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온라인에 퍼졌던 ‘형수 욕설 음성 파일’이 다시 공격 소재가 되었다. 두 후보 사이에서 날선 공방이 오갔다. 이날 만난 이재명 후보 지지자들은 “이 후보의 해명이 납득이 간다” “대선 당시 다 나온 얘기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는 한 도민은 “남경필이라고 뭐…”라며 말끝을 흐렸다.

ⓒ윤성희5월23일 이재명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 9주기 추모제’에 참석했다.
가시지 않은 ‘혜경궁 김씨’ 논란

네거티브 공격은 선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술이다. 기현상은 ‘혜경궁 김씨’ 의혹이다. 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정의를 위하여(@08_hkkim)’라는 트위터 계정의 아이디가 이 후보의 아내 김혜경씨의 이니셜과 같다며 실제 주인도 김씨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일명 ‘혜경궁 김씨’라 불린 이 계정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비방하고,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을 지지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경선 경쟁자였던 전해철 의원은 이 트위터 계정을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했다. 참여정부 민정수석 출신인 전해철 의원은 문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힌다. 논란이 확대되자 이 후보는 “아내는 SNS 계정이 없다”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자 중 일부는 여전히 의혹을 제기한다. 5월9일에는 일간지 1면에 “혜경궁 김씨는 누굽니까”라는 광고를 게재했다. 5월24일에는 민주당 지도부에 이재명 후보를 ‘비토’하는 서명과 의견을 모은 자료집을 보냈다.

이재명 후보는 〈시사IN〉과 인터뷰에서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일부 극렬 지지층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뒤통수를 칠 거라고 저를 의심하는 걸 안다. 이간질이고 분리 전략이다. 저도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문재인 정부가 망했다, 실패했다 그러면 이재명도 미래가 없다. 문재인 정권을 믿는다면 저를 믿어도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 9주기였던 5월23일. 이재명 후보는 이날 일정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제 참석 하나만을 잡았다. 박원순 서울시장 등 여러 후보가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했다. 이 후보는 수원시 연화장에서 진행된 추모제로 향했다. 수원시 연화장은 노 전 대통령의 화장식이 엄수된 곳이다.

추모식이 시작되기 30분 전인 저녁 6시30분 이재명 후보와 김혜경씨가 도착했다. 이주현 수원시민추모제 공동추모위원장과 함께 추모식장 한쪽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생전 사진을 둘러봤다. 노란 티셔츠를 입은 윤철휘 공동집행위원장(47)은 “이재명 후보를 좋아한다”라고 했다. “탄핵 촛불집회 때 분명하게 박근혜 탄핵을 주장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한편 멀찍이서 이 후보를 바라보던 심주완씨(46)는 “추모식에서 깽판 안 칠라고, 진짜”라며 혼잣말을 했다. 민주당 권리당원인 그는 “혜경궁 김씨는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욕보였다. 두 분은 민주당의 정신과 정체성이다. 전해철 의원이 공동 수사 의뢰를 제안했는데 이재명씨는 동참하지 않았다.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당당한 민주당 후보를 응원하고 싶다. (이 후보는) 민주당의 철학과 맞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저녁 7시 추모식이 시작됐다. 민들레 모양 추모비 옆 잔디밭에 수원시민과 경기도민 100여 명이 모였다. 해가 지자 기온이 뚝 떨어졌다. 참석자들은 팔뚝을 연신 비비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저녁 8시30분이 되어서야 추모제가 끝났다. 이재명 후보는 참석자들의 사진 촬영 요청에 일일이 응한 뒤 추모식장을 떠났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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