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4일 경남 김해시 내동의 거북공원 앞. 하얀 운동화에 베이지색 바지, 빨간 점퍼를 입은 김태호 자유한국당 경남도지사 후보가 승합차에서 내렸다.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김 후보는 초등학생 3명과 마주쳤다. 그는 어린 학생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했다. “경남도지사 후보 김태호 아나? 부모님한테 2번이라고 말씀드리래이.”

김 후보는 성능 좋은 진공청소기처럼 공원을 살뜰하게 훑었다.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가족, 보조기에 의지해 걷는 노인, 벤치에 앉아 수다 떨던 여고생 등 마주치는 시민에게 빠짐없이 다가가 눈을 맞추고 인사했다. 한 50대 여성이 “국회의원 시절 7080 댄스 교실에서 본 적 있다”라며 반가워하자 김 후보는 “또 한번 가야 되는데”라며 스텝 밟는 시늉을 했다. 노인들이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시던 정자에서는 술잔을 받으며 “한 번 더 도와주시면 정말 잘하겠심니더”라고 말했다.

김해시에서 김태호 후보는 두 번 당선됐다. 2011년에서 2016년까지 그는 김해을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다(2011년은 보궐선거). 2012년 총선에서는 현재 도지사 선거 경쟁자인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이긴 경험도 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는 경남도지사로 재직했다. 거창군수, 도의원 선거까지 포함하면 경남 지역에서 여섯 번 출마해 여섯 번 당선됐다. 한 시민은 “경남지사 할 때 김태호가 열심히 잘했다. 김경수는 초선인데 인물로만 보면 김태호랑 경쟁이 되겠나”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5월14일 김해시 외동시장에서 김태호 자유한국당 경남도지사 후보가 상인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인지도에서나 평판에서나 두루 빠지지 않는 지역 정계의 거물은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불리는 초선 의원에게 뒤지고 있다. 5월14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김경수 민주당 후보(46.2%)는 김태호 자유한국당 후보(27.8%)를 멀찍이 따돌렸다(한국일보와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5월11~12일 이틀간 조사.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www.nesdc.go.kr 참조). 지금까지 경남도지사 중 보수 정당 소속이 아닌 후보가 당선된 건 2010년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두관 전 지사가 유일했다. 그러나 대통령 지지율이 80%에 육박하는 가운데 보수 정당의 오랜 지역 기반이었던 경남은 이제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험지처럼 보였다.

거북공원에서 만난 장경자씨(가명· 57)는 “김태호 후보를 뽑을 것”이라면서도 당선 가능성에는 갸웃했다. “저번 총선 때 자유한국당은 사람(이만기 새누리당 후보)이 별로였는데 이번에는 당이 별로다. 자유한국당 인기가 너무 없어서 김태호한테 불리할 것 같다.” 한 80대 노인도 “김태호가 돼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국정 농단부터 잘못됐다. 홍준표도 잘못하고 있다. 맞는 말이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창원 출신인 한 40대 남성도 “김태호는 괜찮은데 보수당 또 찍어봤자 뭐하냐고들 한다”라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당이 마음에 안 든다.’ 2000년 총선 때 부산에 출마한 노무현 후보가 들었던 말을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자유한국당 후보가 듣고 있다.

이날 오후 찾은 김해시 외동시장. 김태호 후보는 상점을 하나하나 방문하며 인사를 했다. 상인들은 대체로 그를 반가워했다. 그런데 한 옷가게에서 김 후보는 악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옷가게 주인은 기자에게 “(국회의원 선거 출마했을 때) 시장에서 얼마나 많이 도와주고 했는데, 이후 서울로 떠나버렸다. 김해가 다 김경수 팬이다. 자유한국당 요즘 누가 뽑나. 할매들이나 뽑는다”라고 말했다. 야채가게를 하는 이경애씨(40)도 김경수 후보의 당선을 장담했다. “주변에 젊은 엄마들은 전부 김경수 뽑을 거라고 한다. 내가 장사해서 사람을 많이 아니까 유세 아르바이트할 사람을 모집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예전에는 엄마들이 보수 정당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다. 투표는 다른 당에 하면 되니까. 이번에는 부끄럽다고 자유한국당은 안 하겠다고 한다.”

‘무상급식 확대’ 공약한 자유한국당 후보

같은 날 김태호 후보는 창원에서 경남 지역 개인택시 기사들을 만났다. 간담회에 모인 택시 기사들은 기본요금 인상, 카드 수수료 지원 등 민원과 고충을 전했다. 김 후보는 메모지를 요청해 꼼꼼히 받아 적었다. 김 후보가 떠나고 난 뒤, 진해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전진환씨는 “내일은 김경수 민주당 후보를 만난다”라고 귀띔했다. “오늘은 시 단위 지부장들만 왔는데 내일은 군 단위 지부장까지 총동원령이 내려졌다. 아무래도 김경수 후보 당선 가능성이 높다 보니 그쪽에 거는 기대가 더 크다.”

전씨는 경남 민심의 변화에 대해서도 전했다. “이전하고 분위기가 완전 반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과 핵 폐기까지 가니까 예전에 먹혔던 색깔론이 힘을 못 받는다. 또 대통령과 가까운 여당 후보가 뽑히면 경남 경제를 살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특히 조선업종이 몰려 있는 지역에서 더 그렇다.”

ⓒ시사IN 이명익김태호 후보는 공원과 시장을 다니며 유세하고 있다. 김해시 거북공원에서 건배하는 김 후보.

민심 지형이 새로 짜이면서 캠페인도 바뀌었다. 김태호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초·중·고교 무상급식 전면 확대’를 공약했다. 이미 초등학교·중학교와 동(洞) 지역 이외의 고등학교에서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큰 변화는 아니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경남도는 전임 도지사인 홍준표 지사 재임 시절 무상급식을 중단했다가 학부모들의 거센 반대로 일부 재개했다. 김 후보는 5월8일 서울에서 열린 관훈클럽 경남도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한때 무상급식이 포퓰리즘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적도 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보수·진보의 논리를 떠나 교육적 차원에서 하는 게 맞다”라고 말했다.

경상남도 전체 여론조사에서 김경수 후보와 김태호 후보 지지율 격차가 크지만, 지역별로 나눠보면 편차가 있다. 5월14일 여론조사(한국리서치)에서 김해와 창원 지역은 김경수 후보가 김태호 후보를 크게 앞질렀다. 그러나 사천·통영 등 남부 해안권은 36.8%(김경수) 대 31.7%(김태호), 진주·거창 등 중서부 내륙권에서는 37.7%(김경수) 대 38.1%(김태호)다. 이는 2017년 대선과 비슷한 양상이다.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는 인구 밀집 지역인 김해·양산·거제·창원(마산 제외)에서 1위를 했지만 나머지 지역을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내주었다. 지난 대선에서 홍 후보는 문 후보와 0.5%포인트 차이로 경남에서 1위를 했다.

김태호 후보는 바닥을 싹싹 훑는 방식으로 유세를 이어가고 있다. 일대일로 유권자와 마주칠 수 있는 접점을 최대한 늘린다. 당보다 후보의 호감도가 높은 선거에서는 ‘고공전’보다 ‘지상전’이 적합하다. 한 지지자는 “태호가 악수 한번 하면 표 쫙 끌어온다 아이가”라고 말했다. 5월15일 김태호 후보는 또다시 재래시장을 찾았다. 이번에는 창원시 명서시장이다. 어제 그랬듯, 시장 내 점포를 하나씩 방문했다. 꾸벅 인사를 한 뒤, 두 손을 꼭 잡고 눈을 맞춘다. 그러고 나면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수행비서가 후보의 명함을 건넸다. 수행비서 김강산씨는 “하루에 적을 때는 1000장, 많을 때는 2000장 명함을 돌린다. 엄지손가락 지문이 닳아 만지면 미끌미끌하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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