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현 검사는 “부끄러웠다”고 했다. 5월15일 ‘강원랜드 수사 외압 사건 수사에 관한 기자회견’을 통해 문무일 검찰총장의 수사 외압 의혹을 새롭게 공개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안 검사는 “부끄럽지만”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상황을 되짚어보면 이렇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는 1·2차로 나뉜다. 2016년 시작한 1차 수사를 1년 뒤인 2017년 2월 안미현 검사가 넘겨받았다. 전임 검사가 업무 인계를 하며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 초안과 최종원 당시 춘천지검장(현 서울남부지검장)의 보완 수사 지시 사항을 알렸다.

다른 사건에 매여 있던 지난해 4월17일 최 전 사장 등에 대한 신병처리를 하라는 윗선의 지시가 내려왔다. 구속·불구속 두 경우를 모두 보고서에 담았고, 보고서 말미에 추후 수사 계획도 써냈다. 바로 다음 날인 4월18일 최종원 당시 춘천지검장이 김수남 당시 검찰총장을 만나고 와서, 불구속 기소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지난해 4월20일 최 전 사장을 불구속 기소했다(1차 수사). 인사 청탁자로 지목된 권성동·염동열 자유한국당 의원 등은 빠졌다.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거셌다. 수사를 담당한 안 검사에게도 아픈 지적이었다.

ⓒ시사IN 윤무영5월15일 안미현 검사(오른쪽)가 기자회견을 열고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에 문무일 검찰총장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안 검사는 단순히 지시를 따라 처리해서는 안 되었던 사안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2차 수사에 매진했다. “종전에 잘못된(부정 청탁을 들어준 사람만 불구속 기소하고, 부정 청탁자는 소환조차 하지도 못한) 수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수사했다.”

안 검사는 2차 수사를 하며 강원랜드 채용 비리 사건의 ‘스모킹 건’에 해당하는 대포폰(차명 전화)에 주목했다. 1차 수사 과정에서 수사팀은 최흥집 전 사장의 대포폰을 압수수색했다. 최 전 사장이 채용 비리의 핵심 주범으로 지목되는 최 아무개씨와 대포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수사 상황을 확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화에는 “사장님, 권 의원과 통화해보셨어요?(최○○)” “권 의원하고 내 상황을 이야기했다(최흥집)” “어저께요? 뭐라던가요?(최○○)” “(검찰) 조사받고 왔고 지금 어찌될지 모르겠는데 좀 챙겨봐야겠다고 하니 알겠다고 하더라(최흥집)”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최 전 사장은 바로 이 대포폰으로 권성동 의원과 10여 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다. 관련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안 검사는 법조 브로커로 의심되는 최씨 관련 압수수색을 진행하겠다는 보고를 지난해 10월20일 올렸다. 같은 날 오후만 해도 검찰 내부 통신망으로 춘천지검 차장검사와 대검 반부패부 기획관 사이에 압수수색을 언제 나갈지 시기를 조율하는 쪽지를 주고받았다. 이날 저녁 6시가 넘어 ‘지금은 안 된다’라는 연락이 안 검사에게 떨어졌다. 압수수색을 미루라는 지시였다.

이때만이 아니었다. 안 검사가 보기에 이상하게 ‘권성동’이라는 이름만 들어가면 수사가 더 어려워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권 의원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의 주요 관심사를 다루는 법안의 길목에 있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권성동 의원실 5급 비서관이던 김○○씨의 강원랜드 채용 비리도 2차 수사의 쟁점이었다. 2013년 강원랜드는 예정에 없던 경력직 공채를 통해 김씨를 채용했다. 원래는 ‘워터월드 수질·환경 분야 전문가 채용모집 공고’가 날 예정이었는데, 김씨가 지원할 수 있도록 안전 분야 경력까지 포함시켰다. 모두 33명이 지원한 경력직 채용에서 김씨만 뽑혔다.

안 검사는 지난해 12월8일 권성동 의원에 대한 소환조사가 필요하다는 보고서(1차 보고서)를 위에 올렸다. 다섯 가지 이유를 들었다. 강원랜드 청탁 명단에 ‘국회의원 권성동’이라고 쓰여 있고, 권 의원의 5급 비서관 김○○씨가 권 의원에게 강원랜드 채용을 부탁하는 편지를 작성했으며, 최흥집 전 사장과 권성동 의원은 동향으로 상당한 친분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권 의원의 관련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내용이다(〈시사IN〉 제544호 ‘지원자 이름과 청탁자 이름이 나란히’ 기사 참조).

안미현 검사가 작성한 이 보고서를 이영주 춘천지검장이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보고했다. 이때 문 총장이 심하게 질책한 것이다. 5월15일 안 검사 기자회견 뒤 문 총장은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문 총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춘천지검장을) 질책한 적이 있다. 이견이 발생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한 과정이고 이견을 조화롭게 해결해 나가는 과정도 민주주의의 한 과정이다”라고 해명했다.

‘대포폰 녹취록을 증거 목록에서 빼라’ 지시

결국 지난해 12월13일 안미현 검사는 1차 보고서와는 정반대로 ‘현재까지 조사 결과 권성동 의원은 실제 청탁했다고 볼 증거가 없고,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보고서(2차 보고서)를 작성해 올렸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언급한 ‘민주주의의 한 과정’을 거친 뒤 제출된 보고서였다. 권성동 의원 소환조사가 막히자, 안 검사는 권성동 의원 보좌관 소환 계획을 세웠다. 12월14일 권 의원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날짜를 조율해 춘천지검에 나와달라는 요청을 했다. 전화 통화를 하고 몇 시간 후, 안 검사는 대검의 연락을 받았다. 왜 대검에 보고도 없이 권성동 의원 보좌관을 소환하느냐고 추궁을 당했다. 이미 염동열 의원 보좌관은 소환했고 구속까지 된 터였다. 염 의원실 보좌진은 한 명이 아니라 여럿이 조사받았고, 당시 수사도 대검에 사전 보고 없이 진행했다.

ⓒ연합뉴스강원랜드 수사단은 ‘문무일 검찰총장(위)이
수사 지휘권을 행사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안 검사가 뒤늦게 확인한 바에 따르면, 춘천지검의 소환 요청 전화 이후 권 의원 보좌관은 권성동 의원과 통화했다. 권 의원은 김우현 대검 반부패부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 다음 대검 연구관이 춘천지검으로 다시 연락했다. 권성동 의원은 수사 절차에 대해 김우현 대검 반부패부장에게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검사는 권성동 의원 보좌관을 소환하지 못했다. 지난해 12월20일 최흥집 전 사장과 염동열 의원 전 보좌관 등을 추가로 구속기소하며 2차 수사를 일단락했다. ‘외압’은 멈추지 않았다. 최흥집 전 사장 구속 이후 첫 재판이 1월9일 열렸다. 추가로 수집된 증거를 법정에 내야 했다. 재판 전날인 1월8일 최흥집 전 사장과 법조 브로커로 지목된 최 아무개씨 사이 대포폰 녹취록을 증거 목록에서 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안 검사는 반드시 문제가 생길 거라며 안 된다고 맞섰다.

같은 지시가 계속 내려왔고 이를 따르지 않은 안 검사는 수사에서 배제됐다. 안 검사는 지난 2월 MBC 시사 프로그램 〈스트레이트〉와 〈시사IN〉 인터뷰를 통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안 검사 폭로 이틀 만에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단(단장 양부남 광주지검장)이 꾸려졌다. 수사단은 5월15일 안 검사 기자회견 직후 보도자료를 냈다. ‘직권남용 혐의가 포착된 것으로 알려진 김우현 대검 반부패부장에 대한 기소 방침을 세우자, 문 총장이 애초 약속과 달리 수사 지휘권을 행사했다’는 주장을 담았다. 권성동 의원에 대해 수사단은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했다. 하지만 ‘3차 수사(수사단)’마저 ‘검찰 내 외압’ 논란에 휩싸이면서 검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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