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조사’를 받았다. 피해자 조사나 피의자 조사가 아니라 일종의 참고인 조사였다. 나를 부른 곳은 수사기관은 아니었다. 조사를 맡은 담당자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공무원이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썼던 기사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고 했다. 당연히 성심성의껏 답했다.

ⓒ시사IN 양한모

직업이 직업인지라 답변만 하고 말 수는 없었다. 관련 조사가 어떻게 되고 있고 어디까지 되었는지 물었다. 답변을 듣고 나서 고구마 10개를 삼킨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그때 취재가 막혔던 부분에서 조사 담당자도 막혀 있었다. 시절이 바뀌었지만 그들의 ‘침묵의 카르텔’은 깨지지 않았다.

발단이 된 기사는 〈시사IN〉 제324호 ‘시대정신 쏙 빠진 시대정신 전시회’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전에서 민중미술 작가인 임옥상 화백, 이강우 화백, 신학철 화백의 작품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 관람 직전 내려진 경위를 밝힌 내용이었다. 그때 국립현대미술관 담당자들이 청와대 외압에 대해 끝까지 답하지 않았는데 지금도 침묵한다고 한다.

윤미경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인선 과정을 보면서는 고구마 100개를 삼킨 듯 답답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는 국립극단 사무국장(2014~2016년) 재직 당시 그가 블랙리스트 예술인 작품을 배제하는 데 관여했다고 지목한 바 있다. 5월9일 개선위원회가 이런 결과를 발표하자 다음 날 문체부는 임명을 취소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본인이 블랙리스트 피해자였기 때문에 블랙리스트 적폐 청산만은 확실하게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근 행보를 보니 조금 걱정이 된다. 블랙리스트 적폐 청산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박근혜 정부처럼만 하라고 권하고 싶다. 최근 한 중앙정부 관계자한테 박근혜 정부 시절 페이스북에 올린 글 때문에 조사받은 이야기를 들었다. 해외 주재관으로 있을 때인데 총리실에서 서기관 한 명과 사무관 한 명이 비행기를 타고 현지까지 와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의도를 따져 묻더라는 것이다. 문제가 된 것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딱 두 문장이었다. 블랙리스트 적폐 청산은 그보다 더 꼼꼼하게 해야 할 것이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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