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언론인 신뢰도 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그와 우연히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좋아요’가 1000개에 육박하고 부럽다는 유의 댓글이 100개에 달했다. 그를 향한 대중의 신망이 두텁다는 걸 체감했다. 나도 텔레비전 화면으로만 보다가 실물을 접하자 입이 딱 벌어졌다. 흐트러짐 없는 체형, 우윳빛 안색에 짜증 한번 안 낼 것 같은 고고한 입매의 그는 속인들 사이에서 단연 도드라졌다. 자석에 철가루 끌리듯 몸이 따라가는 바람에 사진까지 찍었지만 ‘우상’에 자동 반응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한 사람이 언론인의 상징적 지위를 수십 년 누린다는 것. 당사자의 탁월함은 기본이고 제도적 뒷받침, 꾸준한 기회, 그리고 동료의 헌신이 따라야 가능하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의 앵커 역할 수행에는 서너 명의 작가가 투여된다. 방송작가가 정규직이 아니며 부품처럼 교체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그는 또한 이성애자·중산층·비장애인· 남성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차별이나 배제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악다구니 부릴 일이 덜한 안전지대에서 살았음을 그의 완벽한 신체-이미지가 증명한다. 남성이라는 스펙, 방송이라는 협업의 결과물이 한 사람으로 수렴되는 부조리한 구조에서 스타 언론인이 만들어진다는 생각에 이르면,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영웅이 나오지 않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 다양한 면이 있다. 이러한 선과 악의 복잡다단한 조합은 고정된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 인격은 극히 다양한 속성의 복합체일 뿐만 아니라 그 속성들은 해마다, 심지어 시간마다 달라진다(82쪽).” 그렇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허물과 결핍의 존재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우상이 된다는 건 한 사람이 단순화·고정화· 신화화된다는 뜻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현명하게도 인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그날 그는 용감했다.”
나는 사진 속의 그를 이렇게 추억하기로 했다. 마이크 앞에서 용감했던 사람, 아니 자신이 가장 용감할 수 있는 자리를 잘 아는 사람으로. 있어야 할 자리를 아는 건 고난도 삶의 기예다. 우리는 뉴스 진행자가 명성을 얻으면 정치판으로 진출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 언론인이 정치인의 예비자 코스처럼 여겨질 정도다. 자기 업에 대해 실력·자부심·절제를 갖춘 언론계 종사자가 귀하다 보니 그의 신실한 행로가 더 귀감이 되는 것 같다.
서로가 경쟁자 아닌 경청자 될 때
자신이 용감해지는 자리를 알기.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이것이다. 글을 쓸 때 나는 그나마 용감하다. 글 바깥에선 비겁하고 부산스러운데 글 안에서만은 일관되고 침착하려 애쓴다. 글과 삶의 (불)일치는 내 삶의 영원한 화두다. 잘 존재하는 방법은 어렵고, 글 쓰는 내가 가장 나으니까, 삶에서 그 비중을 늘리는 전략을 일찍이 짰다.
글쓰기 수업도 그 일환으로 재밌게 하고 있다. 학인들은 매번 말한다. “우리 수업에 ‘좋은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와요.” 그러면 내가 정정한다. 좋은 사람들이 오는 게 아니라 여기서는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서로가 경쟁자 아닌 경청자가 될 때, 삶의 결을 섬세하게 살피는 관찰자가 될 때 우린 누구나 괜찮은 사람이 된다. 대인배라도 된 듯한 그 착각이 좋은 글을 쓰게 하는 동력임은 물론이다. “작가란 최상의 순간에 자기 인격의 최상의 측면을 갖고 주로 글을 쓰고 실제로도 그래야 한다(83쪽).” 저마다 삶에 몰입하고 자기 인격의 최상을 만나는 횟수가 잦아지면 우상의 존재도 자연 소멸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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