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성신여대 교수.언론인)유권자가 가장 쉽게 후보의 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이 토론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각 당의 최종 후보가 맞붙는 ‘1대1’ 토론을 볼 수 없는 걸까? 150년 전, 그 옛날에 링컨과 더글러스도 했는데….
대통령 후보 토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1960년의 케네디-닉슨 토론이고 이 토론은 미국 정치와 미디어 발전사에 이정표가 된 것으로 흔히들 얘기한다.

하지만 미국의 선거 토론은 그보다 100년이나 앞선 1858년의 링컨-더글러스 토론이 원조다. 이것은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2년 전에 벌어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선거 토론으로 당시 링컨의 상대는 일리노이 주지사였던 스테픈 더글러스였다. 대통령 선거 토론은 아니었지만 이 두 사람의 토론은 제대로 된 선거 토론 형식이 자리 잡게 되는, 미국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계기였다.

당시 핵심 쟁점은 노예제도 폐지 여부였고, 유권자들은 링컨-더글러스 토론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진일보한 인식을 갖게 되었다. 링컨은 당시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떨어졌지만, 불과 2년 후 대통령 선거에서는 승리했다. 비록 라디오나 텔레비전이 없던 시대였어도 폭발적으로 확장세에 있던 신문들에 의해 링컨은 이미 전국적인 인물이 되어 있었고, 그것은 그가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던 토론 덕이었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1960년에 케네디 대 닉슨 토론이 벌어진 것은 미국의 토론 문화와 미디어의 발달 속도로 볼 때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다. 미국 대학에서는 1820년대에 매사추세츠 주를 시작으로 토론 클럽이 생겨나기 시작해 전국적 현상으로 번진 뒤, 1920년대에는 각 대학 간 토론 대회가 정착됐다. 지금 미국 대학 중에 학교에서 재정 지원까지 받는 공식 토론팀이 없는 곳은 거의 없다. 마치 각 대학에 농구팀과 미식축구팀이 있는 것처럼 토론팀도 있는 것이다. 클린턴을 비롯한 역대 미국 대통령은 대부분 토론팀 출신이다. 이들은 바로 이 토론팀에서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과 논리적으로 말하는 방법을 체득했다.
 
그리고 라디오는 이미 1920년대에 상용화됐고, 텔레비전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보인 것이 1940년대 중반 2차 세계대전 직후였다. 다시 말해 토론 문화와 매스미디어의 발전이 한참 이뤄진 뒤에야 비로소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의 효시라는 케네디-닉슨 토론이 실시된 것이었다. 물론 안 한 것이 아니라 못한 측면도 있다. 군소 후보에게도 똑같은 기회를 줘야 한다는 미국 연방 통신위원회법 조항이 걸림돌이었던 것인데, 결국 텔레비전 토론은 이러한 규정에서 제외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그 이후 미국뿐 아니라 각 나라의 선거에서 텔레비전 토론이 수행하는 역할은 더 나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정책 토론이 ‘네거티브 선거 추방’ 지름길

남의 나라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오래도 했다. 핵심은 대략 세 가지이다. 토론에 적극적인 자세는 민주 사회에서는 누가 뭐래도 미덕이며, 유권자가 가장 쉽게 직접 후보의 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 것 역시 토론이라는 점, 그리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든 방송사든 후보 토론에 걸림돌이 되는 환경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을 잘한다는 것은 단지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닐 게다. 논리력, 설득력, 호감도 등 후보가 갖춰야 할 덕목은 많다. 링컨의 예처럼 적극성은 이 모든 것들을 포괄한다. 또한 정책 토론은 네거티브 선거를 비켜가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쏟아놓은 그 많은 정책들을 방송 토론이라는 제한된 시간 내에 한 번에 다 다루기 어렵다면, 횟수를 조금만 늘려서 해결하면 된다. 이 경우 한 후보가 한 방송에 여러 차례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면 각 방송사가 주제를 나눠서 돌아가며 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그리고 선관위는 지금도 후보자 토론을 선거일 전 120일 이내부터 가능하도록 묶어놓고 있는데, 각 당의 경선 등 정상적 정치 일정에 비하면 너무나 짧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후보들의 적극성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우리는 왜 각 당의 최종 후보가 맞장을 뜨는 ‘1대1’ 토론을 볼 수 없는 걸까? 150년 전, 그 옛날에 링컨과 더글러스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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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언론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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