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26년차 코미디언 송은이가 만든 ‘제8의 전성기’

코미디언 송은이(사진)는 기회가 오길 기다리는 대신 새판을 짜기로 했다. 2015년 4월 팟캐스트 <비밀보장>에서 벌인 시도는 방송으로, 공연으로, 모바일로 확장됐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2018년 06월 01일 금요일 제558호
댓글 0
데뷔 26년차 코미디언 송은이.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지금 ‘제8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제1의 전성기는 데뷔 직후였다. 1993년 <코미디 세상만사>에서 ‘덕균이랑 은이랑’에 고정 출연하면서 신인으로는 드물게 자기 이름을 딴 코너를 맡았다. 제2의 전성기는 SBS 시트콤 <나 어때>에서 송혜교· 조여정 등과 연기를 한 1998년이다. 제4의 전성기가 되어서야 익숙한 프로그램이 보인다. KBS2 <서세원의 토크박스>의 ‘토크 왕중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시기다. 제7의 전성기(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지나 마침내 현재에 이르렀다. 프로젝트 걸그룹 ‘셀럽파이브’를 결성해 음원을 내고 음악방송 무대에 서는 과정을 담은 웹 예능 <판을 벌이는 여자들 (<판벌려>)>이 가장 최근이다. 설명을 듣던 김숙이 말했다. “죄송한데요. 지금이 제1의 전성기 같은데요(4월18일자 팟캐스트 <송은이·김숙 비밀보장>).”

송은이는 5월3일 제54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예능상을 수상하면서 ‘어쨌거나 전성기’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MBC <전지적 참견 시점>과 웹 예능 <판벌려>로 받은 상이다. 수상 소감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놀이터에서 혼자 놀면 재미없지 않나. 더 많은 동료들과 열심히 판을 만들고 싶다. 외국 시상식을 보면 여자 코미디언 둘이서 진행하기도 하더라. 그런 자리가 있다면 열심히 응원하고 시청하겠다.” 혼자가 아니라 ‘동료들과 판을 만들어’가는 건 코미디언 송은이의 오랜 스타일이다.

ⓒFNC 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예술대학 개그 동아리 ‘개그클럽’ 출신인 송은이는 1993년 KBS 특채로 데뷔했다. 데뷔 직후부터 <한바탕 웃음으로> <폭소대작전> 등에 연이어 출연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제작 회의를 할 때 신인이라 무안을 당하더라도 계속 아이디어를 낸다고 밝히기도 했다. 감을 잡기 위해서다. 이후 2003년 <느낌표>와 2006년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같이 예능과 시사교양을 오가며 부침 없이 꾸준히 활동했다. 과거 롱런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송은이는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의 캐릭터는 잘 못 만들어도 다른 사람의 장점은 잘 본다고 했다. 혼자만 빛나길 바랐던 시절도 있지만 누군가를 빛내는 역할에 더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버티는 것도 쉽지 않아”

수상 직후 SBS <송은이·김숙의 언니네 라디오>에서 김숙은 송은이에게 장난삼아 ‘백상 깜’은 아니라며 “다들 뭐라는 줄 알아요? ‘아, (방송가에서) 버티면 되는구나’”라고 놀렸다. 송은이는 잠시 웃음기를 거두고 답했다. “야, 버티는 것도 쉽지 않아.”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도 금세 사라져버리는 ‘슈가맨’들이 발에 차이는 방송계에서 26년을 버텨온 소회가 함축적으로 담긴 말이었다.

‘전성기 부자’ 송은이조차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전성기 사이에 12년이 흘렀다. 남성 중심의 예능계에서 여성 코미디언이 설 자리는 좁아져만 갔다. 송은이는 2007년부터 2013년 사이 <무한도전>의 ‘스핀오프(기존 방송의 설정을 가져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 버전인 MBC에브리원 <무한걸스>에 출연했는데 남자들이 무리 지어 나오는 예능이 득세하던 시기, 유일하게 개그우먼 여럿이 중심이 된 프로그램이었다. 시즌을 거듭하는 동안 팬층이 두터워졌지만 자주 ‘아류’ 취급을 받았다. 이후 결혼 생활이나 육아와 관련된 경험담을 나누는 기혼 여성 코미디언들의 방송 활동이 간혹 눈에 띄었다. 미혼에겐 그런 자리도 쉽지 않았다. 그즈음 송은이가 적성 검사에서 사무직에 적합하다는 결과를 받고 엑셀 프로그램을 배운다는 사실이 김숙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팟캐스트 <송은이·김숙 비밀보장>은 송은이가 사비를 들여 방송 장비를 구입하며 시작됐다.

송은이는 기회가 오길 기다리는 대신 새판을 짜기로 한다. 2015년 4월, 흔한 BGM 하나 없이 시작되는 팟캐스트가 올라왔다. 녹음이 시작됐는데도 김숙은 게임 중이었다. 그만하고 방송하자는 송은이의 채근으로 시작된 어수선한 방송이었다. ‘결정장애를 앓고 있는 5000만 국민을 위한 속 시원한 비밀 보장 상담소’를 표방한 <송은이·김숙 비밀보장)>(이하 <비밀보장>)이었다. 송은이가 사비를 들여 방송 장비를 구입하고 지상파 출신 작가를 영입했다. 편집도 직접 했다. 김숙은 남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다가 자신의 고민도 토로했다. “암만 생각해도 안 될 것 같아. 팟캐스트 이거 누가 듣나? 계속해, 말아?” 우려와 달리 <비밀보장>은 팟캐스트 시장에서 1위를 기록하며 상위권을 맴돌았다.

청취자들의 고민은 ‘토익 학원을 월수금 갈까, 화목토 갈까?’ ‘로또를 살까 연금복권을 살까?’같이 사소한 데서 ‘가수가 되고 싶은데 꿈이냐, 현실이냐?’ ‘부모께 커밍아웃을 해야 할까’ 등 심오한 주제로 이어졌다. 김숙과 송은이는 ‘도합 80년 넘는 인맥’을 동원해 적합한 상담가를 연결해주었다. 법률 상담은 변호사에게, 취업 사연은 대기업 면접 담당관에게, 복권에 대한 조언은 복권 당첨 방송 진행자에게, 예비 신랑 몰래 담배를 피우는 애연가를 위해서는 담배 피우는 지인에게 전화해 조언을 구했다.

훗날 송은이와 김숙은 한 방송에 출연해 <비밀보장>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김숙이 갑작스럽게 방송 촬영 전날 하차 통보를 받은 뒤 하와이로 가겠다는 걸 송은이가 말렸다. 뭔가 재밌는 걸 직접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과거에도 직접 기획안을 작성해 Mnet <텐트인더시티>를 론칭한 경험이 있었다.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 코난 오브라이언처럼 ‘자신의 방송’을 하고 싶었던 그는 감을 잃지 않으면 기회는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그 수단이 팟캐스트였다.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마련한 대안이 역으로 새로운 매체 환경에 대한 감수성을 높여주기도 했다.

팟캐스트 방송 내용은 어수선해 보였지만 <비밀보장>의 준비는 치밀했다. 유재석의 염려, 김영철의 자기 자랑, 이영자의 넋두리 등의 음원이 웃음을 자아냈다. 이 중 짧은 여행길, 휴게소마다 들러 뭔가를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영자의 음성이 담긴 음원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인기를 끈 ‘영자 미식회’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청취자 한 명만 불러서 하는 1인 공개방송, 싱가포르에 있는 청취자의 집에 찾아가 녹음한 ‘내 청취자의 집은 어디인가’, 이삿짐을 뺀 김숙 집에서 열린 방구석 파티 ‘숙이네 집으로’ 등 단순한 형태의 공개방송 외에도 청취자와 다양한 접점을 마련했다. 고민 해결의 방식도 마찬가지다. 즐겨 먹던 피자 메뉴가 왜 없어졌는지 궁금해하는 청취자를 위해 직접 업체에 전화를 걸어 진지하게 물었다. 팟캐스트 자체는 익숙한 플랫폼이지만 그것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찾는 방식이 달랐다.

ⓒ송은이 인스타그램 갈무리
프로젝트 걸그룹 ‘셀럽파이브’는 일본 여고생 댄스팀 TDC의 춤을 따라하며 시작됐다.
위는 MBC <무한도전> 출연 장면.

<비밀보장>을 빠짐없이 들은 애청자 오수경씨는 “방송만 들으면 굉장히 즉흥적으로 하는 것 같은데 치밀하게 준비를 한다고 들었다. 기본적으로 (송은이는) 성실한 사람이고 본인이 튀려고 하기보다 함께 놀 판을 만들고 그 안에서 어울린다. 기존 예능이 누굴 제물 삼아 웃기는 등 정글의 느낌이 드는 데 비해 <비밀보장>은 송은이를 중심으로 신나게 잘 놀아 좋은 기운이 느껴진다” 라고 말했다. 실제로 두 사람의 깔깔대는 소리가 방송 내내 끊이지 않는다.

얼마 전 <비밀보장> 3주년이 지났다. 그사이 팟캐스트에서 벌인 시도가 방송으로, 공연으로, 모바일로 확장되었다. 2015년 11월부터 두 사람은 SBS FM <송은이·김숙의 언니네 라디오>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비밀보장>의 포맷을 옮겨간 프로그램이다. 2016년 1월에는 모바일 콘텐츠 회사 ‘비보티비’를 설립했다. 송은이는 사원수 10명 규모의 사업체 대표가 되었다. 첫 번째 콘텐츠 <나는 급스타다>는 김숙을 주연으로 한 판타지 드라마였다. <김생민의 영수증>을 비롯해 웹 예능 <쇼핑왕 누이> 등을 히트시켰다.

아무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유머


김숙과 결성한 듀엣 ‘더블브이’로 MBC에브리원 <주간 아이돌>에 나온 송은이는 엑셀 ‘능력’마저 특기로 보여주었다. 특히 <판벌려>는 일본의 여고생 댄스팀 TDC의 춤을 따라하고 싶어 하던 김신영의 기획으로 시작됐다. 무작정 일본을 찾아가 저작권 동의를 받고 안영미·신봉선·김영희 등이 합류해 석 달 동안 매일 8시간씩 연습했다. 그렇게 결성된 셀럽파이브의 뮤직비디오는 나흘 만에 유튜브 조회 수 100만 회를 넘어섰다.

크든 작든 자기 방송을 하고 싶었다는 송은이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방송 철학을 밝혔다. “내가 웃기는 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것은 안 하려고 한다. 좀 덜 웃겨도 무리수는 안 둔다.” 그 때문인지 송은이의 개그는 위화감을 주지 않는다. 그의 오랜 팬인 권김현영씨는 유재석과 송은이를 비교했다. “스스로 지난 시간 ‘사부작사부작’ 해왔다고 표현하는데 송은이는 유행어가 없지만 뛰어난 진행 능력에 더해 아무도 불편하게 하지 않는 능력을 지녔다. 유재석과 비슷한데 유씨가 사람들에게 캐릭터를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다면, 송은이는 실제 사람들이 자기 자신으로 놀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이다. 주눅 들어 있는 연예인들의 어깨를 편 뒤 그가 실은 되게 웃기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 그걸 위화감 없이 해낸다.”

얼마 전 송은이는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해 리스크를 생각하고 일에 임하지만 놓치는 상황이 있다고 밝히며 <김생민의 영수증>을 언급했다. 바로 며칠 뒤 <전지적 참견 시점>이 세월호 속보를 배경으로 이영자의 ‘어묵’ 방송을 내보낸 게 알려지며 ‘일베 편집’ 논란이 일었다. 송은이로서는 잇단 불운이었다. 그의 팬들은 오랜만에 찾아온 상승세가 꺾이는 게 아닐까 염려했다. 일이 있기 바로 직전 ‘비보티비’는 이영자·최화정· 김숙이 참여하고 송은이가 연출하는 새로운 웹 예능을 예고했다.

새로운 감각을 익힌 송은이는 계속해서 선후배와 판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그녀의 지금 전성기를 만든 것은 26년간 쉬지 않고 움직였던 송은이 자신이다. 그의 아홉 번째 전성기는 예상보다 빨리 올지 모른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