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이 558호 기사는 현대차 그룹의 구조개편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진행 중이던 5월 중순에 작성되어 지난 21일 ‘현대차 그룹의 개편안 공식 철회’를 반영하지 못했음을 미리 밝힙니다.


정몽구 일가가 현대차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상황은, 따지고 보면 매우 이상한 일이다. ‘가진 것’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의 ‘중심 기업’은 현대모비스다. 모비스가 현대차를, 현대차는 기아차를 지배함으로써 그룹의 기본 골격이 갖춰진다. 그런데 현대모비스에 대한 정몽구 일가의 지분은 단 7%에 불과하다. 모비스의 최대 주주는 국민연금공단(9.8%)으로 사실상 국가다.

일가의 그룹 지배는 어떻게 가능한가? 기아차는 모비스의 아들(자회사) 격인 현대차의 지배를 받는다. 동시에 기아차는 모비스의 최대 주주(16.9%)다. 기아차는 모비스의 손자인 동시에 아버지인 것이다(아래 〈표 1〉 참조). 정몽구 일가가 모비스, 나아가 현대차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상한 족보 덕분이다. ‘지배받는(소유당하는) 기업’이 ‘지배하는(소유하는) 기업’을 지배(소유)하도록 설계된 그룹 구조이다. 이른바 순환출자다.

ⓒ연합뉴스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사업 부문에 따라 두 기업으로 ‘인적 분할’을 할 계획이다. 왼쪽부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순환출자는, ‘여러 차례 쓸 수 있는 현금’과도 같다. 현금은 뭔가를 사고 나면 그 소유자의 손을 떠난다. 이미 쓴 돈을 다시 쓸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절대다수의 투자자들은 어떤 기업의 주식을 매입했을 때 그만큼의 지배력(지분)만을 갖는다. 순환출자는 같은 돈으로 다수의 지배력을 ‘생산’해서 일가의 지위를 강화한다. 모비스에 대한 일가의 지배력이 여러 갈래로 뻗어가며 확장된 뒤 다시 모비스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일가의 모비스 지분은 7%(5월14일 현재 시세는 약 1조6000억원)에 불과하지만, 모비스로부터 파생된 지지 세력들(계열사들)의 지분은 23.2%(약 5조4000억원)이다. 합치면 30.2%(약 7조원). 정몽구 일가는 모비스에 투자한 1조6000억원으로 7조원 정도의 지배력을 누리는 셈이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재벌 그룹들에게 순환출자 해소를 주문했다. 올해 3월 말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고리들을 완전히 해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몽구 일가가 기아차·현대제철·현대글로비스의 모비스 지분(23.2%)을 모두 사들이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유·지배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정몽구 일가→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로 일원화된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현대제철 및 합병 글로비스를 지배한다. 이 골격에서는 할아버지→아버지→손자의 서열이 바뀌지 않는다(아래 〈표 2〉 참조). 다만 정몽구 일가는 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는 데 필요한 5조4000억원을 따로 조달해야 한다. 한국 최고의 부자에게도 만만한 금액은 아니지만, 방법이 있었다.


모비스 매입하려면 5조4000억원 조달해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먼저 ‘중심 기업’인 현대모비스를 사업 부문에 따라 두 기업(일단 ‘모비스 A’와 ‘모비스 B’라 부르자)으로 ‘인적 분할’을 한다. 현대모비스의 사업은 크게 4부분으로 나뉜다. 핵심 부품, 투자, 모듈, AS 부품이다. 핵심 부품과 투자 사업은 모비스 A, 모듈과 AS 부품은 모비스 B에게 부여한다. 이 가운데 투자 사업은 다른 회사의 주식을 보유, 해당 기업을 지배·관리하는 업무다. 모비스는 현대차 이외에도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 다수 계열사에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다. 이런 주식들과 핵심 부품을 생산하는 기계 설비, 공장 부지, 지적재산권 등이 모비스 A의 자산이다.

‘인적 분할’에서 투자자는 분할된 기업들에 대해 종전의 지분을 그대로 보유하게 된다. 정몽구 일가는 현대모비스에서와 동일하게 모비스 A와 모비스 B에 대해서도 각각 7%의 지분을 갖는다. 다른 주주들도 마찬가지다. 또한 주주들은 분할 과정에서 기존 모비스의 주식을 모비스 A 및 모비스 B의 주식으로 바꿔야 한다. 기존 모비스의 기업가치를 모비스 A와 모비스 B에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다. 현대차그룹은 순자산가치(총자산-부채) 기준으로 기존 모비스 가치의 79%가 모비스 A에, 21%가 모비스 B에 할당된 것으로 평가했다. 기존 모비스 1주를 모비스 A 0.79주로 바꿔준다는 의미다. 모비스 A의 순자산가치를 압도적으로 높게 평가한 이유는 다른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비스 B는 물류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와 합병시키기로 했다. 이 경우에도, 모비스 B와 글로비스의 기업가치를 각각 평가해서, 양사의 기존 주주들이 ‘합병 글로비스’의 주식을 얼마나 받을지 결정해야 한다. 현대차그룹 측은 모비스 B와 글로비스의 분할합병 비율을 ‘0.61대 1’로 결정했다. 기존 글로비스 1주는 합병 글로비스 주식 1주로, 모비스 B 1주는 합병 글로비스의 0.61주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기존 모비스 100주를 가진 주주들은 분할합병 이후, 모비스 A 79주와 합병 글로비스 61주를 갖게 된다.

ⓒ연합뉴스현대차그룹의 구조 개편에 ‘엘리엇 변수’가 튀어나왔다. 위는 현대차가 하이브리드 아이오닉 시승 행사를 하는 모습.

이 분할합병은 굉장히 복잡해 보이지만 한 가지 일관된 목표를 겨냥하고 있다. 정몽구 일가의 순환출자 해소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최대 주주가 정몽구 일가(29.9%)인 현대글로비스에 모비스 B를 합병시킨 이유다. 그룹 경영 차원에선 나름 대의명분을 가진 합병이다. 현대글로비스의 물류와 모비스 B의 모듈, AS 부품  사업 간에는 뚜렷한 시너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합병 글로비스가 카셰어링 등 미래 자동차 비즈니스 진출에 필요한 인프라를 갖추게 되면서 기업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정몽구 일가는 합병 글로비스 지분을 팔아 만든 돈으로 기아차, 현대제철 등이 보유한 모비스 A 주식을 매입하면 된다. 일가가 그룹 ‘중심 기업’인 모비스 A에 대한 지배력을 대폭 강화하면서 순환출자 구조까지 해소되니 일거양득이다. 기아차와 현대제철은 일가에게 모비스 주식을 판 돈으로 합병 글로비스 지분을 매입한다.

현대차그룹의 개편은 미래 자동차 비즈니스를 본격화하기 위한 분업이기도 하다. 모비스 A는 핵심 부품 사업으로 자율주행 등 신기술을 개발하고, 투자 측면에서는 국내외 테크 업체 인수합병으로 그룹 역량을 키운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그 역량을 완성차 조립으로 실행한다. 합병 글로비스는 자율주행차를 투입할 ‘서비스로서의 교통(TaaS:Transportation as a Service)’ 시스템을 구축한다.

현대차그룹의 구조 개편 방안은 정부와 증권가에서 이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일가가 현란한 금융기법을 동원한 ‘자기 돈 쓰지 않는’ 방법이 아니라 직접 조달한 자금으로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려 했기 때문일 터이다. 지난 3월 말 현대차그룹은 5월29일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임시 주주총회에서 계획의 실행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돌발 변수가 튀어나온다.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지난 4월4일,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3개 사 보통주를 10억 달러어치 보유하고 있다”라며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추가 조치를 주문했다. 엘리엇은 3개 사에 대해 각각 1~2%의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

ⓒEPA엘리엇은 2조6000억원 규모인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자사주를 소각하라고 제안했다.
위는 폴 싱어 엘리엇 회장.

사실 현대차그룹의 개편안에는 ‘아픈 구석’이 있다. 모비스 A의 기업가치가 모비스 B보다 훨씬 높게 평가된 것은 순자산을 기준으로 산정했기 때문이다. 이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논란에서 드러났듯이, 기업가치 평가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분야다. 기업은 일정한 자산을 운용해서 수익을 내는 조직이다. 자산이 ‘현재 가진 것’을 나타낸다면, 수익률은 ‘미래에 투자자가 얻을 것’을 대표한다. 자산가치는 높은데 수익률이 낮은 기업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춰 기업가치를 산정하느냐’에는 정답이 없다. 문제는, 모비스 A가 모비스 B보다 순자산 규모는 훨씬 크지만, 수익률에서는 모비스 B가 오히려 높다는 것이다. 수익률의 비중 높은 반영으로 모비스 B의 기업가치를 더 높여 지금의 글로비스와 합병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몽구 일가 등 기존 글로비스 주주들의 ‘합병 글로비스’ 지분이 낮아진다. 순환출자 해소용 자금 마련을 위해 매각할 주식의 수 역시 줄어든다. 정몽구 일가는 모비스 B의 기업가치를 가급적 낮게 평가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정몽구 일가의 그룹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 모비스의 다른 주주들에게 손해를 전가했다는 불만이 넘실거리는 가운데 엘리엇이 출전장을 던진 것이다.

엘리엇 제안 ‘지주회사·사업회사로 분할’

엘리엇은 지난 4월23일 ‘현대 가속화 제안서(Accelerate Hyundai Proposals)’라는 공개서한을 통해 현대차그룹 측의 개편안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큰돈을 들여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돈 안 드는’ 다른 방안도 내놓았다. 현대모비스를 글로비스가 아니라 현대차와 합병해서 지주회사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개편안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다르다.


엘리엇 개편안에 따르면, 현대모비스와 현대차는 각각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 분할’을 하게 된다(〈시사IN〉 제475호 ‘왕좌 지켜줄게 회사만 넘긴다면’ 기사 참조). 현대모비스의 경우, 투자 부문만 ‘지주회사(모비스 지주)’로 분리되고 핵심 부품, 모듈, AS 부품은 ‘사업회사(모비스 사업)’로 몰아준다. 이 방안에서도 정몽구 일가는 두 회사에 대해 종전과 동일한 지분(7%)을 유지한다. 그런데 지주회사보다는 사업회사의 가치가 훨씬 높게 평가되는 것이 보통이다. 지주회사가 가진 것이라곤 주식밖에 없지만, 사업회사는 생산설비를 보유하기 때문이다. 정몽구 일가는 비싼 모비스 사업의 7% 지분을 모비스 지주에 판다. 그 대가로 저렴한 모비스 지주의 지분 14%(설명을 위한 가정임)를 받는다. 결과적으로 정몽구 일가는 이미 보유한 모비스 지주의 지분 7%에 새로운 14%를 더해 21%의 지배력을 확보하게 된다. 같은 작업을 현대차에도 시행한 뒤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끼리 결합시키면 그룹 차원의 새로운 (순수) 지주회사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다(위 〈표 3〉 참조). ‘자기 돈 쓰지 않고’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재벌 일가들이 주로 사용해온, ‘인적 분할의 마술’로 불리는 방법이다. 엘리엇이 정몽구 일가에게 선사하는 당근일 수 있다.

엘리엇은 대가도 요구했다. 2조6000억원 규모인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자사주를 소각하라는 제안이 그것이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식 유통물량이 줄면서 주가가 오르는 경향이 있다. 배당성향을 순이익 기준 40~50%로 확대하고(현재는 20%대 중반), 외국인 사외이사를 추가 선임하라는 요구도 잊지 않았다. 그룹의 현금을 긁어가겠다는 속셈이다.

사흘 뒤인 4월26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엘리엇의 개편 방안에 대해 “부당하다”라고 일축했다. 현대차그룹 내에는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등 금융사들이 있다. 자동차 할부 등 판매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회사다. 현대차그룹이 엘리엇의 요구대로 (순수) 지주회사 체제로 가면, 금산분리 법률에 의해 금융사를 보유할 수 없게 된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지주회사와 자회사가 공동출자해서 국내외의 테크 기업들을 인수하는 길도 막히게 된다. 최근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은 저마다 미래차 기술 부문에서 인수합병을 통해 장기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다음 날 엘리엇은 김상조 위원장의 발언을 반박하면서 속셈을 드러낸다. “2년의 유예기간(지주회사로 전환한 뒤 체제 정비에 허용) 동안 이 문제(금융사 보유)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엘리엇이 밝힌 바 있다는 것이다. 결국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를 매각하라는 이야기다.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의 장기적 성장 따위에는 어떤 관심도 없음을 스스로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차는 4월27일 1조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에 나섰다. 14년 만의 조치다. 엘리엇과의 대결에 앞서 주주들을 포섭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엘리엇에 흔들리지 않고 지배구조 개편을 완수하겠다”라고 밝혔다. 엘리엇 역시 현대차그룹의 개편안이 모비스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며 세력 결집에 나섰다. 외국인 투자자들과 국민연금공단이 엘리엇의 주장에 동조할 경우, 5월29일 주총에서 현대차그룹의 구조 개편 시도가 무산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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