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이 4·27 판문점 선언의 도출로 성공을 거두면서, 북·미 정상회담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의 반대급부로 무엇을 제공할 것인지도 북·미 정상회담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비핵화의 반대급부들 중 하나가 북·미 불가침 협정 체결이다. 불가침 협정은 체제 보장을 원하는 북한의 요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면서,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불가역적인 보상을 제공하기를 꺼리는 미국 정부의 의중도 반영할 수 있는 조치이다.

ⓒ평양 조선중앙통신5월10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물론 불가침 협정으로 미국의 북한에 대해 군사적 행동이 원천 봉쇄되는 것은 아니다. 불가침 협정이란 체결 당사자들이 상호간에 군사적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만일 미국 정부가 북한이 협정을 위반하는 행위를 했다고 판단하면 선제적으로 군사행동을 할 수도 있다. 또 협정의 조건에 따라 미국이 군사행동의 가능성을 열어둘 수도 있다. 국제적 협약과 규범이 미국 이익에 배치되면 미국의 이익을 우선적 판단 기준으로 삼겠다고 주장하며 이에 따라 행동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적 행동을 협정 체결로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연방의원들도 대통령의 핵무력 사용을 제한하는 법안을 제안한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미국과의 불가침 협정을 원하는 이유가, 상원의 인준을 거쳐 조약이 체결되면 전쟁권한법의 제약을 받아 미국 정부가 대북 군사행동을 결정하지 못하리라 믿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정치 현실과 거리가 있는 해석이다. 전쟁권한법은 연방의회가 대통령의 군대 동원 권한을 제약하려는 목적으로 1973년 제정되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군사적 공격을 감행한 뒤 48시간 이내에 의회에 보고하고, 최장 90일 이내에 의회의 추인을 받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이 군사력을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의회가 견제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정치사에서 대통령이 의회의 견제를 무력화하고 군사력을 사용한 사례는 매우 흔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9월10일 이슬람국가(IS) 퇴치를 위해 시리아에 군사적 공격을 감행한 뒤 13일 만에야 의회에 보고했다. 48시간 이내 보고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기간 진행된 시리아 공습은 일회성 군사행동이라는 이유로 의회의 추인 절차가 생략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보듯 미국 내에서는 의회가 대통령의 전쟁 결정을 승인하는 도구로 전락되었다는 비판이 있으며, 일부 정치인들은 전쟁권한법의 강화를 주장한다.

‘조약’과 ‘행정협약’의 차이

그렇다고 북·미 간 불가침 협정이 유명무실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만일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불가침 협정이 체결된다면, 이는 미국과 북한이 최초로 정부 차원에서 불가침 의무를 서면화하는 것이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불가침 약속 언급은 1990년대부터 여러 차례 있어왔다. 2005년 6자회담에서 체결된 9·19 공동성명에는 북·미의 불가침 약속이 문서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제법에 따르면 국가 간 협정과 달리 성명서를 통해 제시된 약속은 당사국 의무사항이 아니다.

북·미 관계의 제도화라는 점에서도 불가침 협정 체결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기존 접근 방식과 달리 양국이 처음부터 관계의 제도화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양국 관계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불가침 협정은 적절한 수단이다.

ⓒ연합뉴스2005년 중국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각국 대표들이 9·19 공동성명을 체결한 뒤 손을 맞잡고 있다.

그럼 미국은 어떠한 방식으로 불가침 협정을 체결할 것인가? 미국이 정부 차원의 국제적 합의를 체결하는 방식은 ‘조약(Treaty)’과 ‘행정협약(Executive Agree-ment)’ 두 가지이다. 둘 다 미국 정부가 다른 정부와 맺은 약속을 이행할 의무를 진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조약은 대통령의 서명 후 의회의 비준으로 발효되는 반면 행정협약은 의회의 비준 없이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된다는 것이다. 군사조약 연구의 권위자인 브렛 애슐리 리즈 교수의 분류에 따르면 20세기 이후 미국은 국제 군사조약을 모두 28건 맺었으며, 그중 5건이 불가침 협정의 범주에 포함된다. 미국이 체결한 5건의 불가침 협정 중 2건은 행정협약으로, 3건은 조약으로 이뤄졌다.

북·미 간의 불가침 협정이 어떤 방식을 취할지에 대한 단서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 존 케리 국무장관의 언급에서 찾을 수 있다. 2013년 10월 일본을 방문 중이던 케리 국무장관은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고, 진정성 있는 협상에 나선다면 북한과 불가침 협약을 맺을 준비가 돼 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때 케리 국무장관이 사용한 용어가 ‘불가침 협약(Non-aggression agreement)’이었다. 이 발언으로 미뤄보면, 당시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행정협약의 형태로 북·미 불가침 협정을 체결하고자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트럼프 행정부도 같은 방식을 원할 것이다. 행정협약은 조약에 비해 효율적이다. 의회의 비준을 얻자면 의회 내에서 논의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릴 테고, 표결에 부쳐진다고 해도 연방의회의 구성과 의원들의 북한에 대한 태도로 북한과의 불가침 협정이 통과되리라 자신할 수도 없다. 일사천리로 자신의 정책을 추진하기를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본인의 서명으로 효력이 즉시 발효되는 행정협약을 더 원할 것이다.

북한의 처지에서도 행정협약이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물론 미국 행정부와 의회가 합심해 북한에 대한 불가침 약속을 해주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현재 추진되고 있는 ‘포괄적 합의, 일괄타결, 단계적 이행’의 북핵 해법에 비춰보면 미국의 불가침 약속을 법적 책임이 있는 문서로 받아내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게 북한으로서도 바람직하다.

북·미 관계가 완전히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결국 의회의 동의가 필수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미국 의회는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해 신중론과 비관론이 대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회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행보에 보조를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북·미 관계 발전에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그보다는 비핵화와 불가침 약속을 먼저 교환한 후 북한이 행동을 통해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의회의 신뢰를 얻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만일 성사된다면 북·미 관계는 물론이고 한반도 평화 체제에도 매우 큰 긍정적 효과를 낳을 것이다.

 

기자명 김영준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선임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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