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요즘 혼자 화가 나 있다. 남북 정상회담 당일인 4월27일 홍 대표는 페이스북에 신랄한 글을 올렸다. “남북 위장 평화쇼에 불과했다. 북핵 폐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김정은이 불러준 대로 받아 적었다.” 곧이어 자유한국당은 “실망스럽고 앞으로 한반도의 상황이 우려스럽다”라는 논평을 냈다. 반면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다른 야당은 일제히 환영 논평을 냈다. 남북 정상회담 직후 각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긍정 평가가 많게는 90%에 육박한다. 오직 자유한국당 대표와, 대표의 입인 당 대변인들만 혹평을 이어가고 있다.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강경 노선은 보수 내에서도 동조자를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다. 큰 틀에서 보수 정당으로 분류되는 바른미래당은 5월2일 “(홍 대표의) 원색적 비난과 반대를 위한 반대는 건강한 보수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라고 논평했다. 자유한국당 당내에서도 남경필 경기지사·김태호 전 경남지사·유정복 인천시장 등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환영하고 홍 대표를 비판했다.

ⓒ연합뉴스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아래)는 리비아 사례를 거론하며 대북 강경 노선을 주장한다.

표 계산일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표를 센다면 회담의 의미를 깎아내리기보다는, 총론을 환영하면서 각론의 흠결을 비판하는 전략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바른미래당이 이런 노선을 잡았다.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 한나라당 이명박 캠프도 그랬다. 홍 대표가 이런 스탠스만 잡아도 차후 남북관계가 꼬인다면 반사이익은 자유한국당의 몫이다. 남북관계가 평화체제 구축까지 잘 풀려나갈 경우, 지금 홍 대표의 노선은 ‘자해’에 가깝다.

그러면 왜 그러는 걸까. 일각의 냉소적 평가처럼 ‘뜻밖의 정상회담 성공에 당황한 이판사판 도박’일까. 홍 대표의 논리를 선입견 없이 최대한 그대로 따라가 보면 의외의 사실이 드러난다. 막말과 거친 표현 아래로, 홍 대표는 그 나름의 일관된 세계관과 논리 구조를 제시하고 있다.

“북핵은 김정은 정권을 지지하는 중심축이다. 북핵이 제거되면 아마 김정은 정권은 무너질 거다. 그런 정권이 핵 포기를 쉽게 할 수 있겠나. 자기의 명운이 달렸는데. 미국이 나선다고 체제 보장이 되지 않는다. 체제 보장은 자기 나라, 주민들이 하는 거다. 개혁·개방을 하면 (김정은이) 온전하게 통치할 수 있을지, 나는 그게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4월30일 홍준표 대표의 남북 정상회담 비판 기자회견에서 나온 말이다. 홍 대표는 비핵화 모델 중 하나로 꼽히는 리비아 사례를 들었다. 독재자였던 카다피 리비아 대통령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으로부터 정권 유지를 보장받았지만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2011년 민주화 투쟁으로 결국 축출당했다는 것이다.

보수 진영의 ‘봉쇄론’ 시각에서 보자면

간단히 말해, 협상으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핵을 포기하면 정권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홍 대표 한 사람의 즉흥적 분석이 아니다. 보수 진영에서 오랜 기간 정립되어온 안보 전략의 핵심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봉쇄론’으로 부를 수 있는 노선이다.

봉쇄론 시각으로 보면 북한은 국가라면 갖춰야 할 정치·경제·사상적 기반이 모두 파산해 정권의 정당성이 위태롭다. 이 같은 국가 실패를 딛고 정당성을 지탱해줄 유일한 보루가 핵이다. 핵을 포기하는 순간 김정은 정권은 체제를 유지할 능력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어떤 혜택을 제공하든, 김정은 정권은 핵을 포기할 수 없다. 미국이 불가침과 방위를 약속해도 소용없다. 내부로부터의 붕괴는 미국이라도 막아줄 수 없고, 김정은 정권도 그걸 안다. 협상을 통해 북핵을 폐기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봉쇄론은 예측한다.

나아가 봉쇄론이 역대 두 차례의 북핵 위기를 보는 관점은 이렇다. 북핵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국제사회는 북한에 당근을 제시했다. 1차 핵 위기에 뒤이은 1994년 제네바 합의는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고 매년 중유 50만t을 제공했다. 2차 핵 위기 당시 6자회담은 테러지원국 지위 해제와 중유 100만t 지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북한은 보상은 ‘현찰’로 받으면서 핵 폐기 약속이라는 ‘어음’을 발행했다. 이 ‘어음’을 실제로 지불할 때가 오면, 어김없이 판을 깼다. 애초에 핵 폐기라는 현찰을 지불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4월29일 페이스북에서 “세 번 속으면 공범”이라고 썼다. 3차 핵 위기 이후 북한 정권의 태도가 1·2차 핵 위기 때와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이 문장에서 드러난다. 

 

ⓒ한국 공동사진기자단4월27일 남북 정상회담 성공을 기원하며 나온 시민들과 문재인 대통령이 손을 맞잡고 있다.

이 논리의 결론은 자명하다. 고강도 제재를 정권의 존망을 좌우하는 수준까지 밀어붙여야 비로소 북한은 핵 폐기를 고려할 것이다. 협상으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 수 없다. 만약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면, 북에 속았거나 북에 동조하는 것이다. ‘위장 평화쇼’라며 홍 대표가 비난하는 논리는 이래서 나온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시사IN〉과 통화에서 북한에 대해 “건전한 회의주의”를 견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적 빗장은 풀어줬는데 완전한 핵 폐기가 아닌 ‘핵 동결’에 그칠 수 있다. 여덟 번 거짓말했던 북한을 어떻게 믿나. 경제적 지원은 받고 문을 걸어 잠그면 다시 위기가 찾아온다. 역풍이 분다 해도 제1야당으로서 이를 지적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장 대변인이 말하는 건전한 회의주의가 곧 봉쇄론의 논리다.

이런 맥락을 짚어보면 홍 대표가 화가 나 있는 이유를 ‘극우 유권자만 잡자는 표 계산’이나 ‘이판사판에 몰려 쏟아내는 막말’로 조롱할 필요는 없다. 홍 대표와 한국 보수 주류가 가진 북핵 문제 사고 틀에서는 현재 진행되는 상황이 우려스럽고, 남한이 또 북한에 속고 있다는 결론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홍 대표는 4월30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유한국당도 다른 정당들처럼 적당히 환영하고 실천을 촉구하는 수준에 머무른다면 지방선거에 더 유리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명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념적 확신을 갖고 던진 주장이 여론에서 고립되자 홍 대표는 현실을 비튼다. ‘막말’이 여기서 나온다. 그가 보기에 핵 폐기 없는 판문점 선언은 “김정은과 우리 측 주사파들의 숨은 합의”가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남북 정상회담에 우호적인 여론에 대해서는 “내 나라 국민들을 탓해야 하는지 가짜 여론조사를 탓해야 하는지” 한탄스럽다.

결국 기댈 곳은 미국이다(4월28일 홍준표 대표 페이스북 “미국은 위장 평화회담을 하지 않을 것”). 미국은 이런 북한의 기만전술을 꿰뚫어보고 있으므로 북한의 ‘위장 평화쇼’에 걸려들 리가 없다. 여기서 홍 대표의 사고 틀을 뒤흔들 사건이 등장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환영하고, 김정은 정권에 전향적인 메시지를 잇달아 쏟아내며, 심지어 노벨 평화상까지 염두에 두는 것 같다. 어느 대목을 보나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신호다. 이것은 홍준표 대표의 봉쇄론 세계관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결론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무언가 결론을 낼 것이라면 홍 대표는 그 새로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까. “북·미 정상회담이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5월1일 홍 대표는 “핵물질·핵기술 이전 금지, 핵실험 중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 중단 등 미국을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정도로 합의가 될 경우 우리는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비참한 처지가 된다”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이런 얘기다. 결코 핵을 포기할 수 없는 북한(봉쇄론의 교리)과 중간선거를 앞두고 성과를 내야 하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은 핵 확산이나 ICBM 등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만 차단하고, 남한의 머리 위에 있는 핵은 나 몰라라 한 채 협상을 타결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향적 신호도 설명이 된다. 홍 대표는 새로운 현실을 기존 세계관에 이어 붙였다.

봉쇄론의 전제, 현실과 들어맞나

홍 대표의 ‘일관된 논리 체계’는 지나치게 일관된 나머지 현실의 변화를 반영할 여지가 없다. 만약 현실이 바뀐 것이라면, 봉쇄론이 가정하는 ‘북한 핵 포기 불가능성 테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런 관점에서 읽는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2016년 3월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기 연구 부문 과학자·기술자들을 만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 내부에서는 군부에서 노동당으로 통치의 중심을 옮기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이 이루어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군부가 장악하고 있던 외화벌이 사업권이나 인허가 권한을 노동당과 내각의 전문 부서로 이관했다. 집권 5년차였던 2016년 5월에는 당 대회를 열었다. 1980년 10월 6차 당 대회 이후 36년 만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한 번도 당 대회를 열지 않았다. 선군정치의 후퇴 조짐으로 북한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정상회담 다음 날인 4월28일 북한 〈노동신문〉은 ‘완전한 비핵화’ 문구가 들어간 판문점 선언 전문을 게재했다. 북한이 해석의 차이를 이유로 합의 내용을 변질시킬 여지가 줄어든다. 봉쇄론의 전제와 달리 이제 북한은 핵 폐기 이후에도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핵이 북한 정권을 떠받치는 유일한 기둥이라는 봉쇄론의 가정 자체도 그리 탄탄하지 않다. 2013년 통일연구원 박형중 선임연구위원은 논문 〈북한은 왜 ‘붕괴’도 ‘개혁·개방’도 하지 않았을까?〉에서 다른 전망을 내놓는다. ‘수령제’가 확고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통계상 절대다수의 독재자는 대중이 아니라 주변 통치 엘리트에 의해 권좌에서 내려온다. 그런데 수령제와 같은 확고한 독재(established autocracy)에서, 통치 엘리트들은 독재자의 행정 요원에 지나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도 권력을 분점하지 못한다. 확고한 독재 권력이 붕괴할 확률은 일반 독재의 5분의 1쯤이다. 북한 정권은 핵이 있어야 버틸 수 있다는 봉쇄론의 전제가 흔들린다면 ‘협상과 설득을 통한 외교적 해결’도 옵션이 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장악력이 강해질수록 봉쇄론의 전제는 흔들린다.

무엇보다도 봉쇄론의 이론적 세계와 실제 현실의 차이가 가장 크게 드러나는 대목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성과 없이 워싱턴에 돌아가기에는 그는 북·미 정상회담의 기대치를 너무 높여놓았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나는 사실이 바뀌면 생각을 바꾼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지금까지 홍 대표가 보여준 접근법은 정확히 반대다. “생각이 그대로면 사실도 그대로다”에 가깝다. 그런데 사실이 바뀌었다는 신호가 너무 많다.

 

 

기자명 김연희·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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