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그때는 ‘강남스타일’  이번엔 ‘한반도 스타일’

토론토·성우제 편집위원

남북 정상이 악수를 나눈 4월27일 오전 9시29분은 캐나다 동부 시간으로 4월26일 저녁 8시29분이었다. 캐나다 공영방송 CBC가 역사적인 장면을 생중계해줄까 싶어 텔레비전을 켰더니 NHL 플레이오프 경기가 한창이었다. 하키의 나라다웠다. 텔레비전 방송을 보아서는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세계사적인 사건에 캐나다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게 아니었다. 비록 공영방송이 실시간 중계는 하지 않았으나 CBC 인터넷에는 두 정상이 만나자마자 금세 뉴스가 올라왔다. 이튿날 아침 캐나다 양대 일간지 〈토론토 스타〉와 〈더 글로브 앤드 메일〉 역시 문재인·김정은 두 정상의 사진을 1면 머리기사와 제호의 상단에 올렸다. 물론 북한 지도자가 1953년 종전 이후 남한 땅을 처음으로 밟았다는 내용을 비롯해 회담이 진행되는 과정, 성과, 의미 등을 소개하는 기사가 뒤따랐다.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 선언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도 빠뜨리지 않았다.

ⓒ한국 공동사진기자단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진 4월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 집 앞에서 국군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캐나다 언론 보도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내가 만난 캐나다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그동안 이곳 매체들은 ‘노스코리아’를 지구상에서 가장 호전적인 나라로 지목했고 김정은 위원장을 ‘전쟁 미치광이’ 정도로 묘사해왔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캐나다 매체는 미국 영향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 있는 캐나다인들은 ‘북한’과 ‘김정은’이라는 말만 들어도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랬던 그들이 “뉴스 봤니? 남북한 정상들이 만나 평화 선언을 했는데 어떻게 생각해?”라는 내 질문을 받고는 반색했다. “축하한다”는 말은 기본이고 “드디어 평화가 왔다”라며 내게 악수까지 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는 “하느님이 축복을 내렸다”라고 했다. 다소 전문적인 견해를 내놓는 사람도 있었다. 러시아에서 역사 과목 교사를 했다는 어느 중년 여성은 “결국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으니 한반도 문제는 미국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내 질문을 받은 10명 중 2명만 남북 정상회담 뉴스를 모르고 있었다.

마침 한국인으로서 캐나다 연방정부에서 일하는 이인원씨와 연락이 닿았다. 캐나다 공무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전해달라고 했다. “전쟁광으로 알려진 김정은 위원장의 멀쩡한 모습에 모두들 놀라워했다.” 이인원씨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강남스타일’ 노래가 유행했을 때만큼이나 한반도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라고 말했다.

ⓒ성우제 제공캐나다 일간지 〈토론토 스타〉와 〈더 글로브 앤드 메일〉은 문재인·김정은 두 정상의 사진을 1면에 실었다.

캐나다 국민들이 보기에, 한반도는 당장 전쟁이 터져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화약고와 다름없었다. 더구나 올해 초까지만 해도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타격이 거의 기정사실화되어, 그런 뉴스를 보는 나 같은 한국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드라마틱한 반전이 일어났다. 이곳 신문의 제목처럼 남북한 두 정상이 ‘역사적인 악수’를 나누었고 곧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보이던 한반도가 ‘새로운 (평화의)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전쟁 먹구름이 걷혔다고 믿으니 악수를 청하며 축하하는 것이다. 한국의 일각에서는 판문점 선언을 두고 ‘실질적 내용이 없다’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지만,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에서 벗어난 것 이상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이 어디에 있을까 싶다. 캐나다에서 보면 그렇게 보인다는 얘기다.

스웨덴

쉴 새 없이 울린 한국학자의 휴대전화

예테보리·고민정 통신원

필자는 학회 행사 때문에 예테보리를 방문한 가브리엘 욘손 교수를 만났는데, 이날은 운 좋게도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날이었다. 그는 스톡홀름 대학의 한국학과 교수로 스웨덴에서 대표적인 한국 전문가로 통한다. 한국 언론에도 자주 나온다. 남북 정상회담 전날인 4월26일(현지 시각) 욘손 교수는 스웨덴 TT뉴스통신과 인터뷰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는 자리에 초대되는 사람, 만찬 음식, 심지어 가구 배치와 선택, 미술 작품까지 모두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빈틈없이 일하고 있으며 최고 예우에 맞는 역사적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온 필자보다 남북 정상회담 정보에 더 밝아 보였다.

ⓒ고민정 제공스웨덴 언론은 남북 정상회담을 크게 다뤘다.
일간지 〈예테보리 포스텐〉 마트손 국제정치 전문 기자는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나눈 두 정상의 대화를 ‘햇빛 대화’라고 정의했다.

4월27일(현지 시각) 오후, 예테보리 대학에서 욘손 교수를 만나는 동안 그의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스웨덴 방송사를 비롯해 신문사에서 연락이 빗발쳤다. 논평 요청뿐 아니라 한국어를 번역해달라는 전화도 많았다. 그는 길을 가다가 전화를 받고 벤치에 앉아서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필자는 그에게 “역사적인 날이지요?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해서 북한을 거쳐 서울로 갈 날이 올까요? 교수님이 보시기엔 남북통일이 될 것 같나요?”라고 물었다. 욘손 교수는 “판문점 선언이 선언으로만 끝나면 안 되지요. 행동도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도 있어야 하고요”라고 답했다.

스웨덴 언론도 남북 정상회담을 크게 다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에서 만나는 사진을 1면이나 국제면에 일제히 실었다. 일간지 〈예테보리 포스텐〉의 브릿 마리 마트손 국제정치 전문 기자는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나눈 두 정상의 대화를 ‘햇빛 대화’라고 정의했다. 그는 “이번 회담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광신적인 전쟁광’에서 탈피해, 대화가 가능한 정치 지도자 반열에 자신을 올려놓았다”라고 평가했다. 마트손 기자는 또 “평창 동계올림픽을 이용한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력이 돋보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회담 전에 나온 남북한 화해 노력(판문점 선언)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분석했다.

물론 이번 정상회담의 한계와 한반도 평화 정착의 어려움을 지적하기도 했다. 일간지 〈다겐스뉘헤터〉 군나 욘손 주간은 ‘지속 불가능한 화해의 문턱에’라는 논설을 통해 “역사적인 화해의 만남이 연출되긴 했지만 남북 사이에는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와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의 간극이 있다. 또 북·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도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석간 〈아프톤블라뎃〉은 평양에서 2년째 살고 있는 스웨덴인 스벤 텔린 씨를 인터뷰해 눈길을 끌었다. 텔린 씨는 평양의 스웨덴 대사관에 식품 공급을 하고 있다. 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평양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이동하고 북한 주민들과 만나지만 주민들과 가깝게 지내기는 어렵다”라고 전했다. 텔린 씨는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예상보다 북한에서 일하기가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홍수 등 자연재해로 농작물 피해가 커서 영양실조를 겪는 사람들이 많은데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그도 “북한과 남한 간의 회담에 긍정적인 발전이 보이며, 대화가 계속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독일

독·미 정상회담 ‘톱뉴스’가 아니라고?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4월27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메르켈 독일 총리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있었다. 그런데 독일 공영방송 ZDF는 이날 간판 뉴스 프로그램 〈오늘의 저널(Heute Journal)〉의 첫 화면으로 메르켈·트럼프 정상회담을 보도하지 않았다. 대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을 내보냈다. 뉴스 시작과 더불어 남북 정상회담을 첫 화면으로 내보낸 것은 이를 지켜보는 독일인들의 관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ZDF는 전체 방송 시간 중 약 10분을 할애해 남북 정상회담을 상세히 보도했다. 메르켈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한 기자회견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언급한 내용도 소개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인들은 양국이 오랫동안 분단되었다가 다시 관계를 맺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다”라며 남북 정상회담을 축하했다. 메르켈 총리는 또 “남북문제와 함께 이루어나가야 할 목표가 비핵화 지역을 만들어내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ZDF 갈무리독일 공영방송 ZDF는 간판 뉴스 프로그램 〈오늘의 저널〉의 첫 보도로 남북 정상회담을 내보냈다.

또 다른 공영방송 다스 에어스테의 대표 뉴스 프로그램 〈타게스샤우〉도 ‘남북, 악몽에서 봄으로’라는 기사를 방송했다. ‘비핵화, 평화협정,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이 공동으로 합의한 판문점 선언을 자세히 소개했다. 〈슈피겔〉도 4월27일자 인터넷 판에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분석 기사를 내보냈다. 〈슈피겔〉은 “남북 정상회담은 매우 잘 계산된 장면이 많았지만 역사적인 판문점 회담은 주변국들 사이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킬 것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목표는 김 위원장을 설득해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시키는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슈피겔〉뿐 아니라 독일의 많은 언론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앞으로 있을 북·미 정상회담의 사전 회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독일 언론은 판문점 선언을 두고도 호평했다. 다만, 판문점 선언 가운데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를 두고는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독일에서 한국 전문가로 통하는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의 발터 클리츠는 라디오 방송 〈도이칠란트풍크〉와 한 인터뷰에서 “구체적으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반면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한국학을 연구하는 페테르 사비키 박사는 같은 방송국 인터뷰에서 “제3자가 아닌 김정은 위원장을 통해 비핵화가 목표로 제시된 것이 의미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이 참여할 수밖에 없다. 남북한 문제에 미국이나 중국 같은 외부 국가의 역할도 필요하지만, 독일 경험에서 볼 수 있듯 통일을 위해서는 당사자인 남북한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사비키 박사는 “한국인들에게 이번 정상회담은 (그전 정상회담에 비해)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개성에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두기로 하는 등 먼 미래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항목을 합의했다는 게 중요하다”라고 평가했다.

프랑스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넘어서

파리·이유경 통신원

프랑스 주요 언론도 4월28일(현지 시각) 1면에 남북 정상회담을 담았다. ‘두 한국의 역사적인 악수(〈르몽드〉)’ ‘새로운 시대의 시작, 함께하는 두 한국(〈리베라시옹〉)’ ‘역사적 만남(〈르피가로〉)’ 등을 제목으로 뽑았다. 프랑스 언론은 김정은 위원장이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처음 남한 땅을 밟은 북한 지도자라며, 한국 현대사를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이번 회담의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손을 맞잡은 모습, 정상회담이 열린 평화의 집에 걸린 금강산 그림, 평양냉면, 만찬장에 울려 퍼진 음악 등도 놓치지 않고 자세히 보도했다.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 특파원 얀 루소는 남북 지도자가 높이 5㎝ 군사분계선을 넘나든 장면을 두고 “역사적 순간”이라며 “실향민의 아들인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에게 감동적인 일이다”라고 평가했다.

ⓒ이유경 제공6개월 전만 해도 한반도 전쟁 위기를 보도하던 프랑스 언론은
남북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에서 손을 맞잡은 모습을 실었다.

겨우 6개월 전만 해도 한반도 전쟁 위기 보도가 프랑스 언론에서도 나왔다. 그래서 이번 정상회담이 열리기까지 ‘속도’에 대한 평가도 있었다. 국제문제 연구소 연구원이자 남북한 정세 전문가인 앙투안 봉다즈는 프랑스 대표 라디오 채널 〈프랑스 엥포〉와 한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수개월, 수년간 협상을 거쳐 정상회담이 열리는데 이번에는 정반대다. 오히려 이 만남이 이후 남북한 협상을 제도화하게 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일회성 정상회담에 그치지 않고 남북 군사회담 등으로 연쇄 회담이 이루어지리라 보았다.

한편 소르본 대학 교수인 마르크 뒤발은 BFM TV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같은 언어로 진행됐다는 점도 눈여겨보았다. 그는 “남북한이 두 개의 다른 언어가 아니라 스위스·벨기에의 프랑스어처럼 같은 언어의 다른 형태”라며 한국어 특성을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가 찾아올지에 대해서는 다소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역사가 장루이 마르골랑은 일간지 〈라크루아〉와 인터뷰하면서 “2007년 김정일의 핵 동결 선언이 실현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3월 〈북한과의 결말을 위하여(Pour en finir avec la Corée du Nord)〉라는 책을 출간한 작가이자 역사가 피에르 리굴로는 4월30일 〈르피가로〉와 한 인터뷰에서 “(판문점 선언) 약속이 지켜지기만 한다면 분명히 역사적인 일이지만 이산가족 상봉과 한반도에서 전쟁이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판문점 선언에 담긴 ‘완전한 비핵화’가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전문가들의 이 같은 우려에도 프랑스 언론은 이번 정상회담만의 다른 ‘환경’을 강조하기도 했다. 〈르몽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적극적 개입을 들었다. 이전 정상회담에 비해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곧바로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져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프랑스 사람들은 “잘했다” 또는 “좋다”는 말보다는 “나쁘지 않다”는 말을 자주 쓴다. 거의 모든 면에서 약간 회의적 사고가 강한데 4·27 남북 정상회담을 두고 ‘역사적인 날’이었다는 평가에 이견이 없었다. 〈르몽드〉를 비롯해 남북 정상회담을 다룬 기사에 달린 시민들의 댓글에는 일단 남북 합의(판문점 선언)를 믿고 지켜보자는 평가가 많았다.

 

 

 

 

 

일본

‘보수 신문’ 반응은 영 다르구먼

홍상현 (〈게이자이〉 한국 특파원)

4월27일 일본공산당은 판문점 선언을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커다란 진전’이라며 대표자 명의로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총선거 이후 야당·시민 연대를 주도하며 아베 신조 총리를 압박하고 있는 일본공산당이 신속하게 반응한 것은 북한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다. 국회의원 26명과 당원 33만명을 거느린 일본공산당은 1983년 아웅산 테러 이후 북한 조선노동당과 관계를 단절했다. 대북 관계에서도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합의에 기초한 원론적 태도를 취해왔다.

일본공산당의 판문점 선언 지지는 ‘국내적 요인’이 더 커 보인다. 판문점 선언은 강경 대북 정책을 펴며 군사대국화와 평화헌법 파괴를 획책해온 아베 정권의 정책 기조를 밑에서부터 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케이 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연합뉴스일본공산당과 시민사회는 판문점 선언을 지지했다.
반면 대다수 언론은 ‘완전한 비핵화 합의’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이 제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견해는 시민사회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일본 최대의 평화운동 단체인 일본평화위원회의 지사카 준 사무국장은 기자에게 이번 회담이 “동북아시아의 안보 환경이 핵 갈등에서 비핵 평화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일본 내 진보 매체도 판문점 선언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신문 아카하타〉는 4월28일자 1면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사진과 함께 ‘완전한 비핵화로 핵 없는 한반도를, 한국전쟁의 종결 연내에’라는 제목을 올렸다. 이튿날인 4월29일자에는 문 대통령에 대한 인물 기사를 올렸다. 이 신문은 한국전쟁 당시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의 아들로 이후 민주화운동에 투신, 인권변호사로 활약한 문 대통령의 인생사를 소개했다. 그가 촛불시위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부터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라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다”라는 의지를 천명해왔다고 전했다.

반면 일본 언론 대부분은 판문점 선언에 ‘완전한 비핵화 합의’ 문구가 포함되었지만, 비핵화의 일정과 방법 등 구체적인 로드맵이 제시되지 않은 점을 한계로 지적했다. 보수 성향의 신문은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여과 없이 보여주기도 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산케이 신문〉이다. 이 신문은 4월28일자에서 “삼촌인 장성택을 숙청하고 형인 김정남을 화학무기로 살해한 인물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정하게 대했다”라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했다.

현재 일본 정가와 언론에는 ‘재팬 패싱’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남북 정상회담 직전인 지난 4월17~18일 이틀 동안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하지만 이 자리마저 ‘트럼프-김정은 직접 대화’ 속보에 묻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미국 플로리다 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정상회담을 한 첫날, 로이터 통신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대화했다”라는 속보를 전 세계에 타전했다. 오보였지만 나중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 방북이 확인되었다.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재팬 패싱 논란을 불식시키려던 아베 총리의 꼼수는 그렇게 물거품이 되었다.

이렇게 대미 외교 카드까지 소진해버린 상황에서, 아베 정권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북한 핵도, 북한 미사일도, 개헌 드라이브도 더는 먹혀들지 않는 현실을 감안한 마지막 카드로 보인다. 이 카드가 일본 국내에 통할까? 쉽지 않아 보인다. 굳이 성향을 따지자면 보수에 가까운 전문가들조차 신통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외무부 국제정보국장을 역임한 마고사키 우케루 전 방위대학 교수는 ‘아베 총리가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기자의 지적에 공감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함으로써 북한과 트럼프 대통령이 호응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라고 평가했다.

 


중국

중국에도 부는 평양냉면 바람

베이징·양광모 통신원

4월27일 중국의 관영 매체를 비롯한 각 언론은 정상회담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 첫 화면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사진으로 도배되었다.

중국의 대표 관영 뉴스 사이트 인민망(人民網)은 이번 정상회담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자세히 보도했다.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악수하고 난 후, 김 위원장의 요청에 따라 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잠시 넘어갔다 온 장면은 놀랄 만한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뿐 아니라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한국군 의장대 사열을 한 사실을 전하면서, 당시 제한된 공간(판문점)이지만 300여 명이 사열에 참여했다고 소개했다.

 

ⓒGoogle 갈무리중국 온라인상에는 판문점 선언의 중국어 번역 자료가 급속도로 퍼졌다.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에서는 양국 정상이 함께 심은, 수령 65년의 소나무에 대해 보도했다. ‘1953년생인 소나무는 1953년 정전협정 이후 65년 세월의 아픔을 함께해왔으며, 긴 세월 동안 아픔을 치유하고 평화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평화의 나무이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공동 기념식수 옆 표지석에 새겨진 문구(평화와 번영을 심다)의 의미도 함께 전했다.

저녁 만찬도 중국 언론의 큰 관심 대상이었다. 오후 도보다리 단독 회담에 이어 만찬에 참석한 김정숙·리설주 여사부터 만찬에 등장한 음식까지 소개를 이어갔다. 〈환구시보〉는 ‘평양냉면’이 인기가 있다며, 서민들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냉면의 제조 과정에서부터 시작해 평양냉면의 가치, 나아가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차이를 보도했다.

중국 언론은 특히 판문점 선언의 내용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 중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 등 구체적인 합의 사항까지도 소개했다. 현재 중국에서는 판문점 선언의 중국어 번역 자료가 온라인상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에 대한 분석도 다양하게 나왔다. 중국 대표 포털사이트 시나닷컴은 전문가 멘트를 인용해 “북핵 문제는 결코 남북이 해결할 수 없으며, 북한과 미국이 해결해야 하는 난제”라고 평가했다. 또한 앞으로 한반도 평화에 핵심적인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반도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해 이른바 ‘차이나 패싱론’을 불식시키기 위한 보도로 보인다. 봉황망(鳯凰網)에서는 이번 회담의 성공으로 ‘재팬 패싱론’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보도의 핵심도 결국에는 중국 역할론이었다. 즉, 일본이 재팬 패싱론을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로서 중국을 적극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지 중국 지인들도 필자를 만날 때마다 급변하는 남북관계에 대해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한반도의 봄바람이 중국까지 불고 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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