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 삶는 데만 15분 아닌가요?” “8분입니다.” 단호했다. 봉골레 파스타를 만드는 데 15분이면 된다는 말에 무심코 던진 질문이었다. 파스타 면을 익히는 데는 8분, 당면은 10분이 걸린다고 했다. 요리에는 재료와 불, 타이밍이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출판 편집기획자로 오래 일했고 인문학 저술과 강의를 하는 강창래 작가(59)는 4년 전까지만 해도 라면 정도밖에 끓일 줄 몰랐다. 지금은 돔베국수, 해삼탕, 유산슬에도 능숙하다. 아내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은 덕분이다. 그의 아내는 정혜인 전 알마출판사 대표다. 3년여간 암 투병 끝에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났다.

2014년 5월17일, 강 작가에게 다른 삶이 시작됐다.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정 전 대표는 남편이 자신을 돌봐주길 원했다. 강 작가가 부엌일을 맡았다. 입맛이 까다로운 아내는 적당히 봐주는 법이 없었다. “원래 아내 성격이 ‘열심히 만들었으니 내가 먹어줄게’ 이런 게 없는 사람이에요. 제대로 된 게 아니면 입에 대질 않았죠.” 잘될 리가 없었다. 어느 땐 하소연할 데가 없어 부엌에서 울음을 삼켰다.

ⓒ시사IN 윤무영강창래 작가는 3년여간 암 투병 중인 아내를 돌보았다. 그가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해준 음식은 주스였다.
울면서 익히는 한편으로 원론적인 공부를 했다. 같은 음식 레시피 10개를 검토해 핵심이 뭔지 파악했고 1260쪽짜리 책 〈음식과 요리〉를 보며 요리의 원리를 탐구했다. 그래야 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요리법을 기억하기 위해 메모 형식의 레시피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글을 읽은 이들이 ‘절절하고 사무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눈 밝은 편집자가 책을 내자고 제안했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그가 아내의 투병 생활 동안 써내려간 레시피를 묶은 책이다. 콩나물로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쳐내는 과정 등이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따라가다 보면 일순간 먹먹함에 숨을 고르게 된다.

동갑내기인 강창래 작가와 정혜인 대표는 경남 진주 출신이다. 아이를 갖고 함께 살면서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 여성은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시절이었다. ‘아트 타일’ 개발자로 잘나가던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여섯 살쯤 되었을 때 출판 일을 시작했다. “정혜인이라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나 존경심이 없었으면 못했을지도 몰라요.” 그의 말에 따르면 아내는 ‘감동적인’ 사람이었다. 네 자매 중 맏이라 뭔가 해주는 게 몸에 배어 있었다. 그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준 사람이기도 했다. “내가 지금 그럭저럭 사람들이 받아들여줄 만한 사람이 된 게 아내 덕이라고 생각해요. 빚을 진 거죠.”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강창래 지음
루페 펴냄
부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마지막을 함께한 건 아니다. 암 선고를 받기 전에는 오히려 관계가 안 좋았다. “사랑을 하든 안 하든 35년간 함께 산 사람이 죽을 때까지 보살펴달라고 말하는데 그걸 안 할 수 있나요?” 강 작가는 이번 책이 다른 남편들에게 ‘또 하나의 억압’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요리하는 남편이 중요한 게 아니다. 다만 그에게 지난 3년은 누군가에게 음식을 해 먹이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시간이었다.

정혜인 대표는 지인들에게 병을 숨겼다. 발병 사실을 안 이후에도 1년 동안 출판사 일을 놓지 않았다. 적당히 넘어가는 법이 없는 건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인문교양 서적을 주로 펴낸 출판사는 업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주변 사람들이 투병 사실을 알게 된 건 지난해 2월부터다. “남들이 불편해하는 걸 못 견디는 사람이었어요. 누구에게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했고요.” 두 사람은 출판사 대표와 작가로 일하기도 했다. 편집자 정혜인은 작가 강창래에게 엄격했다. 강 작가가 다시는 일을 같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 아내는 단점을 매몰차게 지적했다.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좋았지만 다른 사람보다 더 대우해줄 수는 없다고 했다. 남편이라서다.

강 작가는 아내의 병이 일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한겨울에도 열흘씩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고 제대로 먹지 않고 추운 데 엎드려 잠들곤 했다. 한번 일을 붙들면 기절할 때까지 했다. 아내를 그렇게까지 내몬 출판계가 지겹지는 않을까. 그는 고개를 젓는다. “일을 하면서 본인이 매우 행복했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출판사와 책에 대한 칭찬이 본인을 무척 행복하게 했을 거예요. 그러다 보니 대충 할 생각이 없었겠죠. 좋은데 어떻게 해요. 운명 같은 거죠.”

‘이러라고 아내는 까탈스럽게 굴었던 것일까’

아내에게 해준 요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의외로 조리하기 간단한 대패 삼겹살이다. 아내가 소장과 대장을 연결하는 수술을 한 뒤였다. 암의 차도와는 상관없지만 병원에서 지낼지, 집에 머물지 가르는 수술이었다. 성공적이었다. 병실 대신 햇빛 드는 집에서 직접 지은 밥을 먹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그때 아내가 대패 삼겹살이 먹고 싶다고 했다. 육류를 멀리할 때였다. 세 식구가 병동에 앉아 무항생제 대패 삽겹살을 맛있게 먹었다. 아내는 겨우 두 점, 고소한 맛을 음미했다.

청양고추도 자주 등장한다. 무염 무당의 음식에서 입맛을 돋우는 건 매운맛이다. 그 결과 매운 걸 전혀 못 먹던 강 작가가 이제 맵지 않은 걸 못 먹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해준 음식은 주스였다.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할 때였다. 입을 적시는 수준이었지만 맛볼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었다.

‘콜래트럴 뷰티(collateral beauty)’ 라는 말이 있다. 굉장한 슬픔이나 비극 속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뜻한다. 드물지만 암에 걸려서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 속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슬프고 힘든 순간에도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아름다울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 찾아오는데, 그 시간을 놓치지 말고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아내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로 생의 마지막 3년을 꼽았다.

강창래 작가에게는 책과 글쓰기가 ‘고통 속에서 드물게 찾아오는 짧은 기쁨’이었다. 말기로 갈수록 아내의 고통이 심해졌다. 어떻게 될지 몰라 늘 대기 상태였다. 밥을 해주고 아내가 잠든 뒤에는 책을 읽거나 있었던 일을 글로 정리했다.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던 시간이다. 칭찬에 인색한 편집자 아내도 마침내 상찬을 늘어놓았다. 이번 책에 실린 글 일부를 보고 ‘우아하다’고 평가했다. “객관성 없는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은 안 그런데 수고했다고 그러는 것 같고(웃음). 제가 쓴 글을 늘 좋아하긴 했지만, 장점보다 단점을 이야기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칭찬이죠. 큰 선물입니다.”

지난 3월20일은 강창래 작가의 생일이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6개월 되는 날이기도 했다. 아들이 봉투를 건넸다. 작년부터 다달이 10만원씩 모은 돈이었다. 그날 아들은 독립을 선언하며 ‘아빠도 행복한 삶을 찾으라’고 말했다. 그날 저녁 제자에게 새로운 사업을 제안받기도 했다. 비로소 인생의 2막이 저무는 느낌이었다. 아내가 떠난 자리에서 그는 요리를 한다. 이번엔 본인을 위한 음식이다. 손에 익어서 이젠 손쉽게 만든다. 지난 3년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상이다.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다. ‘이러라고 아내는 그렇게 까탈스럽게 굴었던 것일까?’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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