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총회와 상담 주간을 준비하며 학습 관련 자료를 잔뜩 쌓아두었다. 올해부터 ‘2015 개정교육과정’이 적용되니 학업에 신경 쓰는 학부모들이 많으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이가 즐겁게 생활했으면 좋겠어요. 친구 관계가 제일 걱정이에요.” 새로 바뀐 교과서를 잠시 옆으로 밀어두어야 했다. 특히 여학생 학부모들은 뉴스에 등장하는 극단적인 학교 폭력 사례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근래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 등 청소년 강력 범죄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들은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를 방문하거나 학교 일선에 인성 교육 강화를 요청한다.

학교 내부 사정도 비슷하다. 사회에 크고 작은 사고가 터지면 교실 현장에 책임이 넘어온다. 학교는 여론과 외부 기대에 맞춰 결과를 보여줘야 하므로, 업무 차원의 인성 교육 담당자가 생겨난다. 사실 인성 교육은 늘 하고 있지만, 그럴싸한 실적을 위해 활동 내역을 사진으로 찍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리하여 갑자기 ‘친구사랑 주간’이 생기고, ‘애플데이’에 친구에게 미안했던 기억을 편지로 사죄하며, 진짜 사과를 나눠 먹는 ‘웃픈’ 일이 벌어진다.

ⓒ박해성 그림

학교 교육은 지식 전달을 넘어 덕성과 품성의 도야를 목표로 한다. 당연히 인성 교육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인성 교육은 특별 사업처럼 추가되어 교사들에게 뚝 떨어진다. 어느 날 공문이 날아오면, 인성 담당자는 교육과정을 수정해야 한다. 기존 교과 수업 시간을 줄여가며 인성 프로그램을 대체할 순 없으니 만만한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손본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이미 안전 교육, 다문화 교육, 소프트웨어 교육 등 온갖 사회적 요구에 따른 강화 교육으로 가득 차 있다. 부족한 시간에 쫓겨가며 생색내기 용도로 추진되는 특별 프로그램이 내실 있게 진행될 리 없다. 그럼에도 근거 자료를 만들고 보고하지 않으면 학교가 인성 교육을 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하니 보여주기식 교육의 악순환은 계속된다.

좀 더 근원적으로 들어가면 인성 교육을 교과 교육과 분리하여 생각하는 방식이 더 난제다. 인성이 갖춰지지 않은 지성이 무의미하듯, 지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인성은 맹목적인 착함에 지나지 않는다. 착한 것도 배워야 제대로 착할 수 있는 셈이다.

인성 교육은 교과 교육 기반으로 설정돼야

6학년 2학기 사회 1단원 ‘우리나라의 민주정치’에서는 헌법의 의미와 국민의 권리를 다룬다.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때 시민은 헌법 정신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 국회와 법원이 하는 일을 배우고,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보는 것은 단지 시험에 나오기 때문이 아니다. 각 교과는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기 위하여(교육기본법 제2조 교육이념)’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

결국 인성 교육의 방향은 교과 교육을 기반으로 섬세하게 설정되어야 한다. 또한 교육과정에 새로운 인성 교육 요소를 더하거나 수정하고자 할 때도 현직 교사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인성은 말 그대로 일생을 통해 갈고닦아야 할 어마어마한 영역이다. 인성 교육 또한 사과 몇 쪽 나눠 먹고 사진 찍는 것으로 끝나는 감정적인 이벤트가 될 수 없다.

기자명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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