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최근 삼성그룹 압수수색을 통해 ‘삼성 노조 와해’ 문건 수천 건을 확보했다. 삼성전자 직원이 갖고 있던 외장하드에서 압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4년여 전인 2013년 10월14일 이와 유사한 문건이 세상에 드러난 적이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114쪽 분량의 ‘2012년 S그룹 노사전략’이라는 문건이다. 작성 시기가 2012년 1월로 기재되어 있고 작성 주체는 명시되어 있지 않은 이 문건에는 “(노조 설립 시) 조기 와해가 안 될 경우 장기 전략을 통해 고사화시켜 나가야 한다”라는 내용과 함께 그룹 차원의 구체적 대응 방안이 담겨 있었다. 4년 전 삼성은 “해당 자료 전체를 검토한 결과, 삼성에서 만든 자료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라고 부인한 바 있다.

하지만 2011년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노동조합 설립을 추진하다 징계 해고된 조장희씨 사건을 다룬 서울행정법원·서울고등법원·대법원은 삼성그룹이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인정했다. 법원은 삼성 내부 고위 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자료가 포함되어 있으며, 내용이 실제로 진행된 사실관계에 대체로 부합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시사IN 조남진4월3일 금속노조 삼성지회,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삼성웰스토리지회 등의 조합원들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면담을 요구하며 본관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서 ‘실제로 진행된 사실관계’란 조장희씨가 징계 해고된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보면, “에버랜드 문제 인력 4명”이 2011년 7월13일 노조를 설립했으며 부위원장인 조장희씨가 “주동자”라고 사진과 실명이 나와 있다. 이어 “주동자 1명 징계 해고, 조합원 1명 정직 조치” 등의 표현이 나온다. 2011년 7월18일 에버랜드는 회사 명예 실추, 개인정보 유출 등 여덟 가지 사유를 들어 조씨를 징계 해고했다.

조씨는 자신의 해고가 부당해고이자 부당노동행위라며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조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씨는 법정으로 사건을 가져갔고 1·2·3심은 모두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에버랜드가 조씨를 해고한 것은 재량권을 남용한 부당해고이자 노조 조직을 이유로 한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하며 그 근거 가운데 하나로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들었다. 조씨는 2016년 12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아 2017년 3월 복직했다.

그러나 이 문건과 관련한 수사와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문건은 에버랜드 노조 설립 대처뿐 아니라 복수노조 시행 2년차인 2012년 삼성그룹 차원의 노조 설립 대응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담았다. 문건을 보면, 삼성은 ‘문제 인력’에 대해 “외부 세력과 연계하여 노조 설립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지속적으로 감축하여 문제 발생 소지를 원천적으로 해소”하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특히 노조 설립 시 즉시 징계할 수 있도록 비위 사실 증거 수집을 지속하라며 계열사인 SMD(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가 “문제 인력 개개인에 대한 ‘100과 사전’을 제작해 개인 취향, 사내 지인, 자산, 주량 등을 꼼꼼히 파일링하여 활용 중”이라는 예를 들었다. 문제 인력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는 방호 인력, 여론 주도 인력, 노조활동 대응 인력으로 구성된 ‘사내 건전 인력’이다. 이들에게는 “지속적인 신뢰 유지를 위해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명단은 철저히 보안 유지(점조직형 운영)”한다. 사내 건전 인력과 인사·홍보·법무 등 관계자를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모의훈련도 실시한다.

ⓒ시사IN 신선영삼성의 노동 탄압을 비판한 최윤동 금속노조 삼성지회 회계감사, 박원우 지회장, 조장희 부지회장(왼쪽부터).
이런 기조를 바탕으로 해서 노조가 있는 8개사와 노조가 없는 19개사 각각의 단계별 대응 방안을 제시한다. 설립신고 단계에선 그룹 비상상황실과 실시간으로 대책을 공유하며 노조 탈퇴와 설립 신고 취하를 설득한다. 단체교섭 요구 시 합법적으로 거부하고, 신규 노조의 내부 분열을 유도하고, 기존 노조를 활용해 노노 갈등을 유발하며, 고액 손해배상 및 가처분신청 등을 통해 경제적 압박을 가중시켜 활동을 차단하고 식물 노조로 만든 뒤 노조 해산을 유도하는 식이다. ‘친사노조’를 활용할 경우 “PU(서류상 노조)가 있는 4개사는 공개 시 ‘알박기 노조’라는 비난 여론을 감안해 신규 노조의 조기 와해 가능성을 면밀히 분석한 후 결정”한다는 표현도 있다.

“노사협의회를 친사노조로 전환”

2013년 10월22일 조씨와 그가 속한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옛 삼성노조) 등은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최지성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실장, 이부진 제일모직 사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관계자들을 부당노동행위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고소·고발했다. 하지만 2015년 1월26일 검찰은 해당 문건에 대해 “명의가 표시되어 있지도 않고 작성 주체 및 출처도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이건희 회장 외 35명을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고소·고발인 측은 2015년 2월26일 검찰에 항고했지만 5월20일 기각되었다. 그해 6월5일 재정신청을 했지만 같은 해 12월23일 서울고등법원은 재정신청을 기각했다.

4월4일 만난 조장희씨는 “무혐의 처분을 했던 검찰 스스로 재조사하겠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과거처럼 잘못은 위에서 하고 처벌은 밑에서 대신 받아선 안 된다. 무노조 경영을 누가 왜 시작했는지 제대로 밝혀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건을 보면, 삼성이 노사 화합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노사협의회’를 “유사시 친사노조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활용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문건에는 “외부 환경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임직원들이 전혀 흔들림 없이 비노조 경영철학을 견지할 수 있도록 정신교육을 강화”한다고 되어 있다. 임금과 복리후생 비교우위를 유지하고 임직원 기념일 선물에 사장 사인이 있는 축하편지를 보내는 것(회장님 말씀)도 노조 관련 관심을 줄이는 방안으로 제시된다. 복수노조 시행에 대비해 ‘CCTV’를 보강했다는 문구도 있는데, 에버랜드 내에 삼성지회 설립 3개월 만에 CCTV 150대가 추가 설치되었다.

1987년 ‘노사관리 기본지침’, 1989년 ‘345 사업장 수호전략 수립지침’, 1990년 ‘노사관리 지침’, 1998년 ‘인력 구조조정에 따른 시나리오 및 대응방안’ 등 지금까지 삼성에서 유출된 노동자 통제 지침은 여럿이다. 삼성SDI 인력개발팀이 2001년 12월 대외비 형태로 삼성전자 본사에 보고한 것으로 추정되는 ‘2002년 임금, 노사 추진 전략 문건’은 ‘MJ’, 즉 문제 인력 제로화 전략 수립을 최우선 과제로 꼽는다. 2004년 삼성SDI 노동자들 휴대전화 위치추적 사실이 확인되었으나 아직까지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2015년 삼성테크윈 노조원 미행이 발각되는 등 감시 논란도 여전하다.

삼성은 최근 협력업체 노조도 조직적으로 관리한 정황이 확인됐다. 2013년 7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출범한 뒤인 2014년 삼성전자서비스 울산센터를 운영하는 협력업체가 작성한 ‘조직 안정화 방안’ 문건에는 노조 조합원을 ‘NJ’로 지칭하며 이들을 ‘Green화’, 즉 탈퇴하도록 공작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들의 위장 폐업, 노조 탈퇴 회유 등 광범위한 탄압과 원청의 지시 의혹이 제기되었다. 문건이 나온 울산센터의 경우 유사 납치 사례까지 있었다. 노조 탄압과 관련한 죽음마저 이어졌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이자 조합원 표적감사로 고통받던 조합원 최종범씨는 2013년 10월 “삼성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이듬해 5월 조합원 염호석씨도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라고 적고 세상을 떠났다. 이번에 검찰이 확보한 문건에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관련 보고 문건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삼성노동인권지킴이 공동대표)는 삼성의 노동통제 전략을 4가지로 개념화하기도 했다. △폭력이나 징계 등 불이익을 주는 물리적 강제력 △노조 탈퇴 회유와 관련된 물질적 보상 △기업과 노조 사이에서 기업 정체성을 갖게 하는 조직 규범 △문제 인력 격리, 왕따와 같은 사회적 관계 배제 등이다. 조 교수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직원들의 자발적인 동의가 아니라 그룹 차원의 노동 통제와 일상화된 감시체계로 유지되었다. 노사전략 문건의 존재 자체가 이를 입증한다. 삼성은 시장에서의 성공이 무노조 경영 덕분이라고 교육하지만 삼성에 노조가 있었다면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재 사망이 이어졌을지 묻고 싶다”라고 말했다.

4월3일 오전 11시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 금속노조 삼성지회,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삼성웰스토리지회, 서비스연맹 삼성에스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저마다 삼성 마크가 새겨진 조끼를 입고 모였다. 삼성지회는 2011년 조장희씨와 에버랜드 노동자들이 만든 노조로, 교섭권은 없지만 조금씩 조합원을 늘려가고 있다. 2013년 설립된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대부분 협력업체 소속이지만 싸움 끝에 그룹사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2017년 연이어 출범한 삼성웰스토리지회와 삼성에스원노동조합은 교섭대표 노조 지위를 확보하고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4개 노조는 “우리는 파산하고 있는 무노조 경영의 마지막 숨을 거두기 위해 모였다”라고 말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면담요청서를 전달하러 들어가려다 막혔다. 이들은 앞으로 공동으로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1년을 망설이다 에버랜드 노동자들로 구성된 삼성지회에 지난해 6월 가입했다는 최윤동 삼성지회 회계감사는 “예전에는 노조 하는 사람들이 도깨비인 줄 알았다. 회의실에 가면 회사 사람들이 피하기도 하고, 가난해서 노조 들어갔느냐는 오해도 받지만 24년 근무한 세월보다 노조에 가입한 1년이 직장 생활 만족도가 높고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비로소 부품이 아니라 삼성의 일원이 된 느낌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이번 문건 발견 및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무노조 경영 방침과 관련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말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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