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핸드폰 교체로 시작했다. 테이블 위에 폴더폰이라 불리던 2G폰 대신 스마트폰이 놓였다. “바꿨어?” “네. 사장이 바꿔줬어요.” 사장은 국가정보원 원장. 음지가 익숙한 내곡동 정보맨들은 양지에선 원장을 사장 또는 회장이라 부른다.
박근혜 국정원 시절이었다. 남재준 원장이 국정원 직원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허락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이 밝혀진 뒤였다. 증거를 조작해 간첩을 만든 국정원이 ‘셀프 개혁안’을 내놓았다. ‘국회와 정당·언론사에 대한 연락관(IO) 상시 출입제도 폐지’ ‘모든 직원에 대해 정치 개입 금지서약 의무화’ ‘부당명령 심사청구센터 설치’ ‘퇴직 후 3년 동안 정당 가입 및 활동 금지’ 등을 담았다.
권력기관이 스스로 제 머리를 깎는다고? 믿지 않았다. 그래도 ‘IO 상시 출입제도 폐지’가 궁금하긴 했다. “진짜 출입 안 해?” “저희는 원래 출입 안 하잖아요.” 농담인 줄 알았다. 국정원은 언론사까지 촘촘하게 출입하며 정보를 모은다. 기자와 하는 일도 비슷하다. 매일 기사를 쓰듯 국정원 직원들은 정보를 모아 보고서를 쓴다. “진짜잖아요. 사무실에 ‘출입’하지 않고 이렇게 밖에서만 만나잖아요?” 그랬다. 박근혜 국정원의 셀프 개혁은 무늬였다. 휴대폰만 바꾸고 개혁은 끝났다.
문재인 정부 국정원 개혁은 잘 되고 있을까?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 재수사에서 드러나듯, 민간인 협조자들은 대부분 기소됐지만 국정원 직원들은 극히 일부만 형사처벌을 받았다. 제도 개혁도 더디다. 정부 여당뿐 아니라 야당, 특히 자유한국당 책임이 크다. 대공수사권을 이양하면 마치 간첩이 활보할 것처럼 호도하며 국정원 개혁에 반대한다. 권력기관 개혁은 제도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언제든 뒷걸음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목도했다.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이번 호 커버스토리를 ‘강추’한다. 천관율·김은지 기자가 그냥 지나치기 쉬운 보도 자료에서 의문을 품었다. 끈질기게 달라붙어 그 이면에 감춰진 팩트를 확인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의 빅브러더 실체를 드러냈다. 국정원이 민간인의 고용보험 외에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자료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했다. 국정원이 개혁되지 않으면 홍 대표도 이렇게 동향 파악을 당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국정원만큼이나 정보력이 짱짱한 삼성그룹의 노조 와해 공작도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노동 전문기자를 자처하는 전혜원 기자가 추적에 나섰다. 이번 기사를 시작으로 이 문제 역시 전 기자가 끝을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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