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 이사장, 안은주 상임이사 등 한솥밥을 먹은 선배들이 만든 제주올레. 호평이 많아 내가 다 뿌듯했다. 정작 개장 9년이 되도록 제대로 걷지 못했다. 뒤늦게 지난해부터 걷기 시작했다. 첫걸음부터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풍광을 가리는 생활 쓰레기가 눈에 거슬렀다. 19코스 북촌리 일대를 걸을 때도 그랬다. 쓰레기로 보이는 아이 장난감이며 양말이 길 옆 돌무더기 위에 놓여 있었다. 고개를 돌렸더니 ‘너븐숭이 4·3기념관’이 보였다. 너븐숭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들어갔다. 전시물을 찬찬히 살펴봤다. 고작 하루 이틀 사이 학살당한 400여 명의 이름과 나이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여섯 살, 일곱 살, 아홉 살… 내 아이 또래도 수두룩했다. 안경을 벗고 눈언저리를 만져야 했다. 어려서 겪었던 1980년 그해 5월이 떠올랐다.
먹먹한 채 기념관을 나오다 장난감이 놓인 돌무더기를 다시 보았다. 애기무덤이었다. 주민들이 일부러 장난감을 놓아 어린 넋을 위로한 것이다. 또 안경을 벗고 한참을 그곳에 서 있었다. 그 뒤부터 곤을동 등 길을 걷다 만난 4·3 현장에서 일부러 발길을 멈추고 유심히 보았다. 공통점이 있었다. 4·3 기념비나 위령비 건립 시기가 모두 2000년 중반 이후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한 뒤에야, 정부가 지원을 한 뒤에야 제주도 사람들은 4·3을 ‘이제사 고람수다(이제야 말한다)’ 한 것이다. 서명숙 이사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길 위에서 4·3을 만나게 해줘 고맙다고.
이제 70주년이다. 육지 사람들은 특별법도 만들어졌고 추모공원도 지어졌으니 해원(解冤)이 되었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지금도 제사를 지낼 후손까지 몰살당해 ‘가마귀 모른 식게(까마귀도 모르는 제사)’를 올리는 집이 수두룩하다. 지난 5년간 제주도 사람들의 냉가슴을 카메라에 담아온 김흥구 작가의 사진을 이번 호에 담았다.
그가 찍은 양여하 할머니(91) 사진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예비검속된 오빠에게 갈아입을 옷을 전해주러 매일 저녁 제주경찰서 유치장을 찾았던 양 할머니. “이젠 더 이상 옷을 받아줄 수가 없다”라는 경찰의 말을 듣고 오빠의 죽음을 직감했다. 양 할머니의 오빠는 1950년 음력 7월7일, 정뜨르 비행장(제주국제공항)에서 총살당했다. 지금도 시신을 찾지 못했다. 올해 할머니의 오빠가 묻힌 제주국제공항에 대한 유해 발굴이 다시 시작된다. 70여 년 동안 오빠 사진을 소중히 간직한 양 할머니를 표지에 올렸다. 이제 4·3은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아주어야 한다. 미군정의 책임 등 진실을 밝히고 양 할머니 오빠처럼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찾아야 한다. ‘모진 목심 이제 몬딱 풀어사주(질긴 한 이제 모두 풀어 남기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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