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이다. 다양하고 복잡한 캐릭터를 가진 ‘살아 있는’ 여자들을 스크린에서 종종 만난다. 성녀도, 창녀도, 시체도 아닌 인간으로 존재하는 여자들. 이는 지난 몇 년간 여자들이 싸워왔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이자 그 결과다. 물론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나는 더 많은 여자를 스크린에서 보기 원한다. 적어도 ‘절반’은 될 때까지. 〈레이디 버드〉의 감독 그레타 거윅의 말마따나 “영화감독·뮤지션·소설가·미술가 등의 그룹에 속한 이들의 리스트를 보면 전부 남자라서 짜증이 난다. 더 많은 여성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자라나는 여자아이들에게 ‘일종의 여권’을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3월4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쓰리 빌보드〉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트로피를 바닥에 내려둔 채 객석의 모든 여성을 일으켜 세웠다. 서로를 둘러보게 한 후 두 단어를 남기고 무대에서 내려간다. “인클루전 라이더(Inclusion Rider).” ‘포용 특약’으로 번역되는 이 말은 2016년 미디어 연구자 스테이시 스미스 박사가 테드 강연을 통해 처음 주장한 개념이다. 그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800편의 영화에 등장한 캐릭터 전체를 분석했다. 대사가 있는 여성은 전체의 30%도 되지 않았고, 성 소수자나 유색인종은 말할 것도 없었다. 스테이시 스미스는 할리우드의 A급 배우들에게 계약 시 ‘여성이나 유색인종, 성 소수자, 장애인을 배우나 제작진으로 구성하도록 요구할 것’, 즉 포용 특약을 내걸자고 요청했다.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수상 소감을 통해 이에 응답한 셈이다. 제시카 채스테인이 함께 영화에 출연하는 흑인 배우 옥타비아 스펜서의 출연료를 자신과 동일하게 하라고 요구한 것도 포용 특약 사례로 볼 수 있다.

한국 여성 영화인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계기로 2년간 준비해온 단체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 3월12일 문을 열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와 임순례 감독이 공동 센터장을 맡았다. 성평등 가치에 기반한 영화산업 노동환경 조성을 목표로 성폭력 예방교육 및 피해자 지원, 성평등 영화정책 연구 및 실태조사 등을 해나갈 계획이다. 한국 영화를 ‘사랑하고 싶은’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덩달아 든든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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