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식 금융감독원장(금감원)이 취임한 지 6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3월12일 그는 “금융권 채용 비리 조사를 담당한 금감원 수장으로서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물러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라는 말을 남기고 자진 사퇴했다. 최근 〈주간조선〉은 그가 하나금융지주 사장으로 재직하던 2013년, ‘지인의 자녀가 하나은행에 채용되도록 힘썼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최 금감원장은 당시 관례에 따라 추천했을 뿐, 최종 선발 과정에는 개입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금융감독 수장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여론을 이기기는 어려웠다. 지난해 연말부터 금융권 전반에 걸친 채용 비리를 조사해온 금감원 처지에서도 곤혹스러웠다.

이번 최 전 원장의 채용 비리 의혹은 KEB하나은행 내부 전수조사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연임 과정에서 불편한 관계였던 최흥식 금감원장 견제용으로 KEB하나은행이 정보를 흘렸다는 말도 돌았다. 당초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11개 은행을 대상으로 채용 시스템 현장 점검(2015~2017년 채용 대상)에 나섰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된 우리은행 특혜 채용 문제가 금융권 전반에 대한 점검으로 이어졌다. 금감원은 이 조사 결과, KEB하나은행을 비롯한 5개 은행에서 총 22건의 채용 비리 의심 사례가 발견됐다고 발표하고 검찰에 이첩했다.

ⓒ연합뉴스2014년 3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왼쪽)과 최흥식 당시 사장.
당시 채용 비리 의혹 사례로 지목된 22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3건이 KEB하나은행에서 발생했다. KEB하나은행은 “정상적인 채용 절차였다”라고 항변했다.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였던 최흥식 전 원장은 2010년 김승유 당시 하나금융지주 회장과의 인연으로 하나금융그룹(당시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에 입성했다. 김승유 회장은 김정태 현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긴 이후에도 하나금융지주 고문으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2014년 3월 김정태 회장이 김승유 당시 고문과 그의 측근을 정리하면서 최흥식 당시 사장도 물러나야 했다. 김정태 회장은 하나금융지주 사장 자리를 없애고 회장이 직접 그룹 관련 업무를 지휘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9월 최흥식 금감원장이 취임하자 금융권에서는 김정태 회장과의 대립을 예상했다. 실제로 갈등 양상도 보였다. 김 회장의 3연임을 두고 금감원과 하나금융지주가 대립했다.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이사회 인사들로 구성된 회장추천위원회(회추위)가 회장 후보를 추천하고 주주총회에서 최종 임명한다. 2018년 새 회장을 선출해야 하는 하나금융지주는 회추위를 가동했는데, 금감원은 하나금융지주에 공식적으로 “회추위 일정을 연기해달라”라고 권고했다. 3연임에 도전하는 김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에서였다(〈시사IN〉 제542호 ‘셀프 연임 논란에도 3연임 굳히기’ 기사 참조). 금감원의 이 같은 권고에도 불구하고 회추위는 1월22일 김정태 현 회장을 단독 회장 후보로 추천했다. 3월23일 하나금융지주 주주총회만 통과하면 김 회장은 3년 더 하나금융그룹을 이끌게 된다.

회추위 추천 과정에 최흥식 금감원장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2월20일 금감원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하나금융지주 회장추천위원회가 금융감독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라며 “금융당국으로서 우리의 역할(지배구조 점검)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연합뉴스2017년 9월13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금융권 공동 채용박람회에서 현장 면접을 보기 위해 구직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노조 “김 회장, 조카와 친동생 채용 관여”

‘불편한 관계’였던 최흥식 금감원장이 물러났지만, 현 상황이 김정태 회장에게 긍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최 금감원장 사퇴 하루 뒤인 3월13일 금감원은 20여 명 규모의 특별감사단을 구성해 KEB하나은행 채용 비리 의혹 조사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최우선 조사 대상은 최 전 금감원장이 연루된 2013년도 채용이지만, 사실상 조사 대상과 활동 기한을 따로 두지 않고 전방위 조사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국회 정무위에서 “최흥식 금감원장에 대한 의혹은 하나은행 내부가 아니면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나은행 임원도 알고 있었다는 일반적인 추론이 가능하다. 채용 비리를 발본색원하겠다”라며 강도 높은 발언을 남겼다.

최흥식 금감원장 사퇴 직후, 김정태 회장의 채용 비리 의혹도 추가로 제기됐다. 하나금융 계열사 노조의 연합체인 ‘하나금융 적폐청산 공동투쟁본부(공투본)’는 3월14일 기자회견을 열어 김 회장이 본인의 조카와 친동생 채용에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공투본에 따르면 김 회장의 조카는 2004년 하나은행 계약직으로 입사한 뒤 이듬해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근무 중이고, 동생은 2006년 ‘하나은행 행우회 자회사’에 입사해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두 사람 모두 공식적인 채용 과정을 거쳤으며, 2004년과 2006년 당시 김 회장은 가계고객사업본부 담당 부행장으로 인사 담당자도 아니었다”라고 해명했다.

금융위원회가 3월15일 발표한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 개선 방안’도 김정태 회장과 하나금융지주 처지에서는 불안 요소다. 이날 금융위는 금감원에서 조사한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 운영 실태 점검 결과’와 이에 대한 ‘개선 방안’을 함께 발표했다. 금감원의 지적 사항 중 눈에 띄는 부분은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 CEO가 영향력을 미치기 쉬운 구조(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CEO가 참여한다)라고 지적한 대목이다. 금감원은 사외이사에 대한 평가 기준도 불명확하다고 진단했다.

금감원의 진단 대부분이 하나금융지주 김정태 회장의 연임 과정에서 불거졌던 논란과 맞닿아 있다. 김 회장 본인이 회장추천위원회에 포함되어 논란이 된 바 있다(논란 직후 회추위 정관을 개정함).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추후 CEO 선임 과정의 투명성과 사외이사의 책임성을 강화하도록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3월15일, 청와대는 채용 비리를 통해 강원랜드에 부정 합격한 226명 전원에 대해 직권 면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발표 직후 청와대 관계자는 준공기업이나 민간 기업의 채용 비리와 관련해서도 “정부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그 권한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말한 ‘민간 기업’은 가장 논란이 되는 금융권 채용 비리를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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