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구 1인당 연평균 영화 관람 횟수(2017년)는 4.25회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국 극장은 452개, 스크린 수는 2766개에 달한다. 하지만 지역 간 영화 관람 불균형 현상이 나타난다. 서울 사람들이 한 해 5.89회 영화를 봤다면, 전남 사람은 2.38회를 보았다. 아무래도 영화관과 거리가 영향을 미친다.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63곳에 극장과 스크린이 하나도 없다. 이런 곳에서는 극장 가는 게 ‘큰일’인 셈이다.

경북 상주시도 영화관이 한 곳도 없는 지자체다. 상주시민이 영화를 보려면 문경·구미·김천이나 대구로 나가야 했다. 1998년부터 대도시 중심으로 등장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가 지나면 인구 10만여 명의 상주에도 영화관이 생긴다. 현재 상주시 삼백농업농촌테마공원 안에 있는 홍보영상관을 작은영화관(삼백시네마·1개 스크린 98석)으로 바꾸는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삼백시네마의 위탁·운영은 ‘작은영화관 사회적 협동조합’이 맡는다. 이 사회적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29번째 작은영화관이다.

ⓒ시사IN 윤무영작은영화관 사회적 협동조합의 임직원들. 맨 오른쪽이 김준근 시네마운영본부장.
작은영화관의 첫 시작은 ‘맨땅에 헤딩’이었다. 2009년 디지털시네마 기술 관련 벤처기업인 ㈜글로벌미디어테크가 작은영화관 사업을 구상했다. 이 업체는 필름에서 디지털로 영화 배급이 바뀌는 흐름을 눈여겨보았다. 영화 필름 한 벌을 만드는 데 드는 제작비는 200만원 수준. 하루에 영화 다섯 편을 극장에서 틀려면 영화 필름 값만 1000만원이 든다. 디지털로 배급하면 이런 비용이 들지 않는다. 김선태 글로벌미디어테크 대표(53)는 작은영화관 건설 비용을 계산해보았다. 중소 시군의 인구 규모로는 초기 투자비를 회수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했다. 영화관은 지자체가 조성하고, 운영은 민간이 맡으면 어떨까.

그는 전국 100여 개 중소 시군 지자체장 비서실로 우편을 발송했다. 작은영화관 설치를 제안하는 내용이었다. 전북 장수군에서 유일하게 답신이 왔다. 당시 김선태 대표는 난감했다고 한다. 문제는 인구였다. 적어도 5만명 이상은 되어야 사업성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장수군 인구는 2만3000명가량이었다. 장수군은 인구가 적기로 전국 지자체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게다가 장수군 인구 절반 가까이가 55세 이상이었다. 이런 조건에서 영화관 운영이 가능할까. 조심스럽기는 군청도 마찬가지였다. 예산을 투입해 극장을 만들었는데 운영 문제로 금세 문 닫으면 곤란했다.

검토 끝에 결론은 ‘해보자’였다. 발상을 달리했다. ‘장수군에서 가능하면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적자가 나도 3년 동안 책임지고 영화관을 운영하겠다는 계약서를 썼다. 이런 전후 사정을 감안해 장수군에서는 영화관 전기요금을 현물로 지원하기로 했다. 예산 8억원을 들여 장수군의 유휴 시설인 한누리전당 내 1층 전시관을 극장으로 리모델링했다. 그렇게 2010년 11월 장수군에 ‘1호 작은영화관’ 한누리시네마(2개 스크린, 90석)가 탄생했다.

ⓒ현대차그룹 기프트카 유튜브 갈무리 현대자동차 ‘기프트카’ 공익 캠페인 텔레비전 광고에 나온 작은영화관 한누리시네마.
1호 작은영화관 성공으로 다른 지자체도 관심

한누리시네마는 2012년까지 3년 동안 적자였다. 하지만 영화관을 찾는 주민이 점점 늘어났다. 첫해인 2010년 두 달 동안 1499명이 영화를 관람했는데, 2013년에는 3만8946명이 극장을 찾았다. 2013년부터 흑자로 전환했다. 지난해에는 4만7741명이 한누리시네마를 찾았다. 한누리시네마는 현대자동차의 ‘기프트카’ 공익 캠페인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기도 했다.

1호 작은영화관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다른 지자체에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013년 전북 임실군에 ‘작은별 영화관(10월)’이 개관했다. 2014년에는 강원도 홍천군에 ‘홍천시네마(4월)’와 전북 무주군에 ‘무주 산골영화관(6월)’이 문을 열었다. 관람객이 꾸준히 증가하자 전북도청·강원도청·문화체육관광부도 작은영화관 사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국비·도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즈음 영화관 위탁·운영을 맡은 ㈜글로벌미디어테크에서 새로운 논의를 시작했다. 지속가능성과 조직 형태 문제였다. 위탁·운영 계약을 하게 되면 대개 3년마다 공개 입찰을 통해 재계약을 해야 한다. 탈락할 수도 있다. 지속 가능한 사업을 하기에는 불안정한 요소였다. 또 지역 내에 영화 관련 전문법인이 없음에도 왜 지역 내 법인에 운영을 맡기지 않느냐는 말도 나왔다. “우리 생각에도, 정부·지자체에서 영화관을 조성하고 회사가 수익을 얻는다면 그게 설득력이 있을까 싶었다. 사회적 협동조합(배당 불가)을 설립해 사업을 하는 것을 검토했다. 당장은 손해처럼 보이지만 공익성을 강화해 좀 더 안정적으로 가자고 결정했다(김선태).” 이런 과정을 거쳐 2014년 7월, 작은영화관 사회적 협동조합(이사장 김선태)이 설립되었다.

김선태 이사장은 사회적 협동조합을 세우기로 한 결정이 ‘옳은 방향’이었다고 평가한다. 위탁·운영자가 수익성보다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한 공익적인 비영리 법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뒷말’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작은영화관 사회적 협동조합이 위탁·운영하는 영화관도 29곳(상주 포함)으로 늘어났다. 전국의 작은영화관이 39곳인데, 74%에 해당한다. 영화관은 30석에서 230석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위탁·운영하는 영화관 숫자가 늘어나면서 사업도 안정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작은영화관 사회적 협동조합의 직원은 260여 명. 본사-지점 체제다. 본사(18명)가 배급·영사 기술·회계 등을 담당하고, 각 지점(작은영화관)은 매장 운영 등 고객 서비스를 맡는다. 각 지점에는 7~8명이 일하는데 지역민 채용이 원칙이다.

각 영화관에서는 하루에 4~6편의 영화를 튼다. 2D 영화 관람료는 6000원, 3D 영화 관람료는 8000원으로 일반 영화관보다 저렴하다. 관람료 수익은 배급사와 작은영화관이 5대5로 나눈다. CJ, 쇼박스, 롯데, NEW 등 주요 배급사와 협력해 수도권과 동시에 영화를 개봉한다. 김준근 시네마운영본부장(45)은 “주민 연령·계층을 고려해 다양한 작품을 교차 상영한다.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극장을 찾을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 영화를 특별히 챙긴다”라고 말했다.

작은영화관이 개관하는 날에는 ‘동네 축제’가 벌어진다. 개관일에는 작은영화관 사회적 협동조합이 관람료를 부담해 지역 주민들이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다. 팝콘과 음료도 무료로 제공한다. 김선태 이사장은 “개관 날엔 영화관 앞이 장사진을 이룬다.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개관식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서고 무척 좋아한다. 그때마다 작은영화관 사업하기를 잘했다고 느낀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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