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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 실무회담부터 신경전 치열할 듯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 요청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월 안에 김정은을 만나겠다”라고 화답했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3월 19일 월요일 제5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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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안에 김정은을 만나겠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 요청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화답했다. 북·미 관계가 급속도로 해빙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두 지도자는 상대방을 ‘땅딸보 로켓맨’과 ‘늙다리 미치광이’로 부르며 설전을 벌였다. 5월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비핵화에 관한 중대 합의가 이뤄질지 벌써부터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3월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3월8일(현지 시각)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했다. 정 실장은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라는 김 위원장의 뜻을 구두로 전달했다. 정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고, 향후 어떠한 핵 또는 미사일 실험도 자제하기로 약속했으며, 한·미 양국의 정례적인 연합 군사훈련도 지속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했다”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미국이 북·미 대화 전제조건으로 바라던 내용이었다.

ⓒ청와대 제공
3월8일(현지 시각)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마이크 펜스 부통령,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왼쪽부터)에게 방북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미국 외교 전문가들은 북한의 태도 변화로 2012년 이후 사실상 중단됐던 북핵 협상이 재개될 발판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북한은 미국과 국제사회를 향해 “비핵화는 절대 없다”라고 주장해왔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는 물론 북·미 관계의 지형까지 근본적으로 흔드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외교 전문가들은 본다. 미국 국무부 동북아지역 정세분석실장을 지낸 존 메릴 박사는 <시사IN>과 인터뷰하면서 “(김정은의 제안에 대한) 트럼프의 긍정적 답변은 북·미 관계 해결의 돌파구가 될 것이다. 일이 잘 풀릴 경우 비핵화 과정이 시작되면서 북·미 관계가 크게 개선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메릴 박사는 특히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면 미국과 관계 개선을 바란다는 뜻을 전달할 게 확실하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이나 중국에 대한 북한의 견제 심리가 북·미 관계를 풀어줄 동력이다”라고 설명했다. 즉 부강한 이웃인 한국, 갈수록 북한을 영향권 안에 두려는 중국 사이에 놓인 북한이 미국을 일종의 ‘균형자(balancer)’로 삼고 싶어 한다고 분석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화되면서 미국 측 움직임도 빨라졌다.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백악관 선발대가 조만간 평양을 방문할 것이다. 선발대가 검토할 정상회담 의제 가운데 비핵화는 당연히 최우선순위다. 주무 부처인 국무부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구체적 협상 전술·전략이나 로드맵을 짜야 하는데, 문제는 사실상 미국의 대북 라인이 공백 상태라는 점이다. 최근 북핵 협상의 주역인 조지프 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물러났다. 후임 인선도 만만치 않다. CNN에 따르면 국무부는 조지프 윤 특별대표 후임으로 내부 인사가 아닌 외부 전문가를 영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부 수전 손턴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지명자도 아직 ‘대행’이다. 백악관 사정도 비슷하다. 굳이 대북 담당 전문가를 찾자면,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외에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출신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정보장교로 근무했던 매슈 포팅어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 등이다. 하지만 이들도 적임자로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릴 박사는 “5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가 관료 사회에서 북핵 문제를 제대로 조언해줄 인물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현재 가장 큰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설상가상 트럼프 행정부 내에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밝힌 비핵화 진의를 둘러싸고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 격론이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AFP PHOTO
2016년 4월29일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 목사(가운데)가 평양 최고재판소로 들어서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까지도 ‘선(先)비핵화 의지 표명·후(後)협상 가능’ 기조 아래 북한에 최대한 압박을 가했다. 북한에 제한적 타격을 가하는 ‘코피 전략(bloody nose)’까지 검토하면서 북·미 대화는 물 건너간 듯했다. 하지만 최근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미국도 선회했다. 어떻게든 대화의 ‘모멘텀’을 살리려는 한국 처지를 고려해 북한과 대화도 가능하다는 쪽으로 궤도를 수정한 것이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실무회담부터 양측 신경전이 치열할 수 있다. 미국 측이 신경 쓰는 대목 가운데 하나는 북한이 협상의 전제조건을 내걸 경우다. 북한은 실무협상을 전후해 자국에 대한 경제제재 완화를 요구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라는 ‘비핵화 전제조건’을 내건 점도 미국이 껄끄럽게 여기는 대목이다. 북한이 이를 빌미로 협상장을 박차고 나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뉴욕타임스>에 “빌 클린턴 행정부 때도 북한의 체제 보장을 약속했다. 하지만 북한 처지에선 충분치도 않았고 수용할 수도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실무회담부터 양측 신경전 치열할 듯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화 기간 중 추가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 중단을 언급했지만, 미국의 의구심을 완전히 불식시키지는 못했다. 미국 행정부 고위 관리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위해 시간을 벌 속셈이라면 북·미 회담은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런 회의와 의구심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5월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과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메릴 박사는 “북한이 대화에 관심이 많은 지금 같은 기회를 미국이 놓쳐선 안 된다. 북한이 비핵화로 돌아선 의중을 미국이 간과해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지난해 11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자 미국은 기겁해 ‘예방전쟁(preventive war)’까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에 북한은 자신들의 병진 전략이 너무 멀리 나갔다 보고 재균형(rebalance) 작업에 들어갔고, 그 결과 군사보다는 경제·외교 궤도에 더 비중을 두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즉 북한이 경제·외교 노선으로 선회한 만큼 미국도 북한의 ‘재균형 작업’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정상회담 전후 억류 중인 미국인을 일괄 석방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현재 북한에는 김동철(목사)·김상덕(평양과학기술대 초빙교수)·김학송(평양과학기술대 직원) 등 한국계 미국인 3명이 간첩 혹은 적대행위 혐의로 억류 중이다. 미국도 한·미 연합 군사훈련 규모 축소나 기간 단축, 전략자산 전개 중단 등을 취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최대의 압박과 관여’ 중 ‘압박’에 비중을 두었던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가 ‘관여’ 쪽으로 점점 선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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