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일 토요일 저녁 서울 광화문역 4번 출구. 300명이 훌쩍 넘는 간호사가 국화꽃과 촛불을 들고 모였다. 설 연휴 첫날인 2월15일 숨진 채 발견된 서울아산병원 박선욱 간호사 추모 집회였다. 낯선 광경을 본 시민들이 한마디씩 했다. “뭐야? 아, 간호사 태움~” “왕따당해가지고….” ‘태움’이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를 가르침 명목으로 괴롭히는 행위를 가리킨다. 고 박선욱 간호사가 입사 5개월 만에 목숨을 끊은 원인으로 태움이 지목되었고, 인격 모독이나 집단 괴롭힘에 초점을 맞춘 ‘태움 문화’ 기사가 쏟아졌다.

물론 그러한 괴롭힘이 있었는지 엄정하게 밝혀야 하지만, 정말 그것뿐일까. 태움을 간호사 조직 특유의 극단적인 문화로 이해하면 누군가를 욕하고 처벌하고 혀를 차면 끝나는 문제가 된다. 하지만 태움을,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을 노동조건과 연결해보면 많은 것이 달리 보인다. 고인은 자신도 환자를 보기 바쁜 선배 간호사한테 석 달 동안 교육받고(그마저도 충실히 받지 못한 채) 중환자 3명을 책임지며 하루 16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을 했다. 박선욱 간호사와 같이 2017년 9월 서울아산병원에 입사한 동료 간호사는 대자보에 “근본적인 원인은 간호사 근로환경의 구조적 문제”라고 적었다.

환자의 생명을 책임지는 간호 인력이 만성적 과소 고용, 초과 노동 상태에 있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적절한 보상체계 확립에 실패했다는 의미다. 병원은 간호사를 최소한만 고용해 쥐어짜고 있다. 전문적이고 숙련된 간호사를 충분히 고용하는 데 자원을 투자하지 않는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병원도 문제지만, 간호사를 많이 고용하는 것이 이익이 되지 않는 현행 의료수가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시민이자 환자로서 우리가 부담하는 비용과 연결되는 문제다.

“너는 나였다. 너는 우리다. 스스로를 잃어가 아픈 우리다. 나는 너였다. 나는 너이다. 나는 나를 잃지 않겠다. 나를 지켜봐줘.” 고 박선욱 간호사를 위해 간호사들이 직접 만든 노래다. 노래를 듣는 간호사들이 여기저기서 흐느꼈다. 동료의 죽음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그들에게 우리는 어떤 답을 들려줘야 할까.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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