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사람이 어떻게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나. 더군다나 가족 제도란 장자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한 장치라 할 수 있는데, 굳이 그것을 반복하기 위해 아까운 내 인생 쏟아 붓긴 정말 싫었다.
내 첫사랑이 시작된 건 중3 무렵이었다. 그녀와 나의 사랑은 고등학교로도 이어졌고, 대학교 때도 여전했다. 하지만 대학교 2학년 여름, 나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가 갑자기 쌀쌀맞아졌다. 내일 좀 만나자 전화해도 시큰둥, 주말에 집에 오라 해도 시큰둥, 말을 걸어도 시큰둥, 말을 안 걸어도 시큰둥. “너 왜 그러냐?” “몰라, 그냥 기분이 그저 그래.”

며칠 뒤, 다시 한번 물어봤다. “너 정말 왜 그래?” “우리 잠깐 헤어졌다 겨울방학 때 다시 만날래?” “왜?!” “아니, 우리 요즘 좀 그렇잖아. 이렇게 지내느니 한 반년 헤어졌다 겨울에 만나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여행…?” “그래 여행. 난 내 남자친구 데리고 올 테니까 넌 여자친구 데리고 와.” “뭐? 그럼 너 지금 나 말고 남자친구가 있단 얘기야?!” “응.” 다음 날 우린 헤어졌다. 그리고 한 달 뒤 다시 만났다. 그녀가 말했다. 자기가 왜 그랬는지 아느냐고. “남자친구 생겼다며?” 그녀가 다시 말했다. “우리 사귄 지 벌써 6년째야. 그러면 당연히 결혼해야 하는 거 아냐? 난 니가 지금쯤이면 결혼하자고 말할 줄 알았어. 근데 도무지 말이 없네. 그래서 홧김에 쇼 좀 한 거야. 자, 그럼 이젠 프러포즈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난 그날도 결혼하자고 말할 수 없었다. 내게 결혼은 중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결코 하고 싶지 않은 그런 것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나. 더군다나 가족제도란 장자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한 경제적 제도라 할 수 있는데, 굳이 그 시대착오적 관습을 반복하기 위해 아까운 내 인생 쏟아 붓긴 정말 싫었다. 난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결혼은 하기 싫었다. 어쩌면 난 그녀를 죽을 때까지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결혼은 하기 싫었다. 사랑은 사랑 그대로 온전히, 결혼은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만나 자기들끼리.

이후로 시간이 흐르며 결혼에 대한 내 생각은 또 다른 줄기를 타고 흘러갔다. 굳이 남자 하나 여자 하나가 만나 결혼하다 나중에 이혼이고 뭐고 시끄러워지느니, 차라리 남자 A가 여자 A랑 결혼했다 남자 A에게 여자 B가 생기면 그렇게 결혼을 또 한 번 하고, 얼마 뒤 여자 A에게 남자 B가 생기면 거기서 또 결혼하고, 이렇게 여러 명 대 여러 명이 결혼을 해 각각 서로에게 부여된 시간과 사랑의 양만큼 웃고 또 웃으며 다중 결혼제도를 누리자. 여러 개의 사랑, 정말 있을 수도 없는 애들 장난일까? “야, 어제 내 마누라 B, 침대에서 끝내주던데?” “와, 자기 정말 좋았겠다. 오늘은 나랑 하는 날이네. 오늘도 파이팅!!”

‘다른 사랑’ 나누는 이들에게도 그들만의 세상을

ⓒ난 나 그림
소설가 박현욱의 2006년 화제작 〈아내가 결혼했다〉를 원작으로 한 동명 영화가 개봉했다. 많이들 아시는 대로, 남자 덕훈은 지극하고 지덕한 일부일처주의자, 그녀의 아내 인아는 이중 결혼이고 삼중 결혼이고 필요한 만큼 결혼한다는 자유주의자다. 내가 부러워한 건 당연히 인아였다. 그리고 내가 안쓰러워한 건 덕훈이었다. 인아의 두 남편 중 기껏 초라한 하나라서? 아니, 덕훈 자신도 또 다른 아내와 결혼하지 못한 게 아쉬워서.

막 나가자는 게 아니다. 다만 필요한 것은 사랑의 본질을 재고하고, 각기 다른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에게 그들만의 세상을 허용해주며, 더 이상 오랜 제도가 통제와 폭압의 자물쇠로 잠겨 있어선 안 된다는 마음에서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아내들이 그리워진다. 늙어가는 내 육신, 남루한 욕망이라도 채워줄 누군가가 아니라, 처음부터 내 곁에 있었을 또 다른 사랑이 말이다.

기자명 이지훈 (FILM2.0 편집위원·영화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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