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4월, 과도한 노동과 비정규직 스태프 해고 문제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한빛 tvN 〈혼술남녀〉 조연출의 죽음을 둘러싼 내막이 세상에 알려졌다. CJ E&M에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던 유족들은 회사의 공식 사과를 받았다. 유족들의 기부금과 CJ E&M의 출연기금, 시민들의 성금 등이 모여 사단법인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한줄기의 빛 한빛(사단법인 한빛)’이 탄생했다. 사단법인 한빛의 이한솔 이사(28·왼쪽)는 고 이한빛 PD의 동생이다.

ⓒ시사IN 신선영

사단법인 한빛은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만들어졌다. 방송업계에 만연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게 이 PD를 추모하는 길이라고 유족들은 생각했다. 산적한 노동문제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장을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떠오른 게 언론노조였다. 사단법인 한빛은 언론노조와 함께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한빛인권센터)를 설립했다. 언론노조에서 조직쟁의실장을 지내는 등 경험이 풍부한 탁종렬씨(51·오른쪽)가 한빛인권센터 소장으로 합류했다.

지난 1년, 속도감 있게 진행된 것 같지만 이 PD의 유족들로서는 아직 답답한 구석이 많다. 이한솔 이사는 “현장의 분노 섞인 목소리들이 실질적인 제도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던 아쉬움과 죄송한 마음이 컸다”라고 말했다. 현장 사고도 계속 발생했다. 희망을 주기보다 ‘이 판(방송계)은 안 바뀐다’는 무력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게 아닌가 싶어서 그는 안타까웠다. 한빛인권센터는 2월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장시간 노동이 의심되는 드라마 〈미스티〉 〈라디오 로맨스〉 등 4개 작품에 대해 특별 근로감독을 해달라는 요청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

한빛인권센터의 시작은 이제부터다. 노동계 현안으로 ‘노동시간 단축’이 언급되지만 드라마 현장은 예외일 가능성이 높다. 장시간 노동은 안전 문제와 직결되기도 한다. 탁종렬 소장은 “드라마 제작 현장은 산업재해 사고 집계 자체가 불가능하다. 누군가 분명히 다쳤고 사망했지만 원인 규명이 어렵다”라고 말했다. 한빛인권센터는 직접 드라마 현장을 찾아가고 회사 측과 면담을 추진하는 등 방송계 비정규직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뛸 예정이다. 탁 소장은 “특히 비정규직 스태프의 처우에 대한 책임이 있는 방송사와 방송사 노조에서 관심을 보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빛인권센터는 4월1일 사무실을 열 예정이다(후원 문의: facebook.com/hanbit.mediacenter).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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