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2005년 4월 23일 이중섭씨의 아들 이태성씨가 위작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미술계의 무게가 요즘처럼 느껴진 적이 있을까? 보통 일간지 문화면에 볼만한 전시 정도로만 소개되던 미술계가 이제는 사회면을 장식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1면 톱 기사로 떠오르기도 한다. 최근 터진 이중섭·박수근 위작 사건,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 학력위조 사건 등으로 미술계가 오랜만에 세인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검찰 수사 결과 밝혀진 이중섭·박수근 위작 사건의 발단은 2005년 초 이중섭 위작 파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이전에도 이중섭 위작은 심심찮게 미술계에 파장을 일으켰던 단골손님이었다. 2005년 3월16일에 열린 서울옥션의 제94회 경매에서 근·현대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이중섭의 〈아이들〉이 3억1000만원에, 또 다른 작품 〈사슴〉이 4200만원에, 〈가지〉가 5200만원에, 그리고 〈아이들〉이 1억5000만원에 각각 낙찰되어 화제를 낳았다.

2005년은 이중섭 타계 50주기를 꼭 1년 남긴 때여서 일본에서 표구상을 운영하는 차남 이태성씨가 가족을 이끌고 경매 전에 서울에 직접 왔고, 거기에 이중섭 50주기 기념사업회가 구성되는 등 이중섭과 관련한 분위기가 짐짓 뜨거워지는 듯했다. 당시 이태성씨가 한국에 가져온 작품은 총 8점. 이중섭의 미공개작이 발표된다는 점에서 미술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더욱이 엽서보다 조금 큰 크기의 이중섭 작품이 당시 최고가로

이중섭 〈황소〉의 위작품.
거래되고 있던 터라, 경매를 향한 일반인의 관심도 증폭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서울옥션은 4점을 경매에 출품했고, 2점은 경매사가 매입해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 미술관에 기증하고, 1점은 일반 판매, 그리고 나머지 1점은 다음 경매에 출품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사)한국미술품감정협회는 경매에 앞서 의뢰받았던 위 이중섭 작품이 위작으로 판명되었음에도 버젓이 경매에 출품되었다며 강하게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이 단체는 그해 4월12일 위 작품들이 왜 위작인지를 밝히는 세미나를 열어 이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옥션 측은 회사 대표가 직접 일본에 가서 유족이 보관하던 작품을 인수해왔으며, 자체 감정 결과 진품으로 결론짓고 경매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또한 경매 후 일본으로 돌아간 이태성씨는 4월22일 서울옥션이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해 소장 경위 등을 밝히고 경매에 낙찰된 작품은 자신이 아버지에게 물려받아 보관하고 있었던 진품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유족이 직접 받은 이중섭의 작품이 위작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밝힌 위작 제작의 다양한 사례들
이러한 진위 공방이 일어난 와중에 갑자기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 650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김용수씨가 사건의 전면에 등장했다. 고서화를 수집하는 김씨는 예전에 고서화를 구입하러 고서점에 들렀다가 구석에 처박혀 있던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을 발견하고 묶음으로 샀다고 말했다. 이후 소장품 수가 650여 점이 아닌 3000여 점까지 증폭되었고 소장 경위에 대해 말을 바꾸는 등 혼란을 가중시켰다.

(사)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김씨를 유족과 공모하여 위작을 제공한 이라고 지목하면서 급기야 3000여 점에 대한 검찰의 감정이 진행되었다. 이 결과 검찰은 김씨가 소장한 작품 전부가 위작으로 의심된다고 밝히고 이를 수사하겠다고 했다. 물론 김씨는 작품을 해외로 가져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강하게 저항했으나, 위 작품을 검찰이 모두 압수했고 이에 대한 재감정을 거쳐 이번 발표에 이르렀다.


몸집 키워가던 미술 시장에 치명타

(사)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밝힌 위작 제작 방법은 하나의 원본으로 같은 도상을 위조한 경우, 한 작품의 도상을 각각 분리해 위조한 경우, 원작과 색채만 달리해 위조한 경우 등 그 유형도 다양하다. 그리고 협회 측은 그림 종이가 없어 담배 속지나 책의 공란에 그린 이중섭 같은 사례는 위작을 위해 당시 연도의 고서(古書)가 대량 사용되었다고 주장했다.

2005년 서울옥션에서 3억1000만원에 낙찰된 〈아이들〉이 이번 위작 사건의 시초가 되었다.
그동안 위작 대상이 되었던 작가는 도상봉, 천경자, 이상범, 김환기, 오지호 등 대다수가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이중섭과 박수근 작품에 유독 위작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감정 전문가들은 이중섭과 박수근 작품은 일단 고가(高價)이면서 위작 제작이 매우 쉽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선 몇 개만으로 그려낸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은 위에 얇은 종이를 대고 누구나 그릴 수 있을 정도라는 것. 최근에는 박수근의 작품을 위와 같이 제작하다 국전 수상 작가가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이번 위작 사건으로 미술계는 이중섭과 박수근이라는 걸출한 근·현대 작가 작품의 유통이 마비되는 것을 심히 걱정하고 있다. 이제 겨우 기지개를 켜고 몸집을 키워가는 미술 시장에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이중섭 같은 경우는 2005년 위작 파문 이후 경매를 비롯, 거래가 거의 전무하다. 박수근 작품도 이번 검찰 발표로 거래에 위협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 미술계의 전망이다. 위작 사건과 관련하여 이전까지 미술계는 유야무야 처리했던 것이 사실이다. 명확하게 의혹을 매듭짓지 못했던 것이 지금 부메랑이 되어 미술계를 강타하고 있다.

기자명 황석권 (월간 미술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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