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한 번쯤은 신데렐라처럼 한 방에 풍요로운 인생이 펼쳐지기를 꿈꾼 적이 있을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성공한 사람들, 성공한 연예인들이 나와 쇼를 하고 그런 사람들이 선망의 아이콘이 되어 젊은이들의 가치관을 흔든다. 정작 우리 삶은 어떤가. 대부분의 사람은 그달 벌어 그달 생활하기에 바쁘고 젊은이들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한 끼를 때우기 일쑤다. 핑크빛 미래를 상상했던 결혼 생활은 깨진 유리창처럼 산산조각 나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되어 외로운 도시의 늑대처럼 서글픈 밤을 맞는다. 하지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일어서려 애쓰고, 이런 우리의 인생은 모두 소중하다.

〈이 삶을 다시 한번〉은 도다 세이지의 단편 30화로 이루어진 만화책이다.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준다. 심지어 몇몇 작품은 단 한 쪽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담고 있는 메시지와 울림이 커 이 작가의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된다.

ⓒ(c)2003 by Toda Seiji, OHZORA Publishing.co〈이 삶을 다시 한번〉 도다 세이지 지음, 조은하 옮김, 애니북스 펴냄
예를 들면 ‘인생’이나 ‘가족’은 한 쪽짜리 만화다. ‘인생’은 양파에 빗대어 실체 없는 우리의 인생을 보여주고, ‘가족’은 노아의 방주에 빗대어 신이 우연히 만들어준 구성원과 한 가족이 된 이야기다. 우리는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가족(핏줄의 의미로서)을 선택할 수 없다. 그렇게 저절로 이루어진 가족, 그런 나의 가족도 타인과 마찬가지로 조금 더 이해하려 노력해야 행복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검정 1, 2’는 두 쪽짜리 단편이다. 외로운 사람들에게 인연이 되어준 고양이와의 만남을 건조하게 그렸다. 하지만 누구라도 함께하면 ‘가족’이 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이 책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삶, 죽음, 가족, 인연, 그리고 사랑이다. ‘검정’에 이어 계속되는 세 편의 이야기는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작은 죽음’과 ‘2009년의 결단’에서는 죽음 앞에서 사랑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꽃’은 한 걸음 더 나아간 성찰을 보여준다. 특히 만화가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는 듯한 대사가 눈에 많이 띈다. “창작이란 건 사실 마음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의 특권 아닐까.”
이 에피소드에서 주인공 작가는 “모래시계의 모래가 떨어져가는 듯한 조용한 시간 속에” 서서히 죽어간다. 작가는 꽃을 못 피우게 하려면 물이랑 영양분을 충분히 주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식물이 안심을 해서 꽃을 피우지 않는단다. 꽃이 피게 하려면 그 반대로 해야 한다. 영양분이 고갈된 식물이 죽어가면서 자손을 남기기 위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법이라고. 그렇다. 우리의 삶도 고통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고 그런 고통을 견뎌야 진정한 꽃을 피울 수 있다.

ⓒ(c)2003 by Toda Seiji, OHZORA Publishing.co
삶, 죽음, 가족, 인연 그리고 사랑

단편들이 모두 우울한 것만은 아니다. 한 쪽짜리 단편 ‘아톰’에서는 인류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해학적으로 담겨 있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일본 인디 만화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 도다 세이지는 이 책이 데뷔작인데도 ‘단편의 귀재’답게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면면을 날카롭게 도려내어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개인 삶에 충실한 인간의 자세와 그런 작고 소중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그의 일관된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개인 홈페이지에 1999년부터 작품을 공개했는데, 한 출판사의 제안으로 단행본을 엮기에 이르렀다. 이 이야기를 만화로 처리한 것도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한다. 자잘한 재미와 감동이 있는 책이다.

기자명 김문영 (이숲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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