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20일 전재숙씨가 다급히 찾아간 용산 남일당 건물은 지옥이었다. 남편 이상림씨는 다른 철거민 5명과 함께 시신으로 돌아왔다(당시 경찰 특공대원 1명도 사망했다). 망루에서 뛰어내리다 크게 다친 아들 이충연씨는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되었다. 법원은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 25명에게만 책임을 물었다. 당시 과잉 진압 의혹이 불거졌던 경찰은 전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최근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팀’ 구성을 마친 경찰청은 용산 참사를 비롯해 백남기 농민 사망, 평택 쌍용차 파업을 우선 조사하기로 했다. 지난 9년 동안 용산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해온 전재숙씨를 만났다. 며느리 정영신씨가 전씨의 인터뷰를 도왔다.


ⓒ시사IN 윤무영용산 참사로 남편을 잃고 아들마저 감옥에 갇혔던 전재숙씨(오른쪽)와 며느리 정영신씨.
당시 피해를 가장 많이 당한 가족이다.

남일당 뒤쪽에 가게를 얻어 20년 넘게 장사를 했다. 아들 내외가 대출받은 돈까지 더해 2억원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했던 터라,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장사가 잘되고 있었다. 재개발한다는 소식이 들려와 처음에는 건물을 새로 지은 뒤 다시 장사를 하게 될 줄 알았다. 철거하더라도 투자한 자금을 증빙서류만 있으면 다 보상해주고 내보낸다고 했다. 그런데 거짓말이었다. 당초 약속과 달리 그냥 내쫓으려고 용역 깡패를 동원했다.

왜 바뀌었나?

용산 4지구 개발 소식이 알려지면서 땅값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3개월 영업이익을 보상금으로 줄 테니 나가라고 했다. 그냥 길거리로 나앉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수십 년씩 장사 터전을 일군 세입자들이 이대로 죽을 순 없다며 대화를 하자고 호소했다.

누구에게 대화를 요구했나?

구청에 가도 반겨주지 않았고, 또 재개발 조합사무실에서도 못 오게 막았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을 찾아갔지만 시청에서 막고 외면했다. 다들 우리 목소리를 안 들어주었다. 조합에서 용역 깡패를 동원했다. 용역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가게마다 쳐들어와 우리를 끌어냈다. 어쩔 수 없이 남일당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대화를 하고 싶다는 절박한 뜻을 표시하러 올라간 거였다. 대화가 이루어지면 잘 해결될 걸로 기대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철거민을 도심 테러리스트라고 했는데?

경찰 진압작전 때까지 차량도 계속 다녔다. 특공대원들이 진압하기 전까지는 그 정도로 긴박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압 전에 대화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심지어 납치범을 상대할 때도 ‘너 왜 누굴 납치했냐, 왜 그 사람 잡고 있느냐’고 물어보는데, 서울 한가운데서 소위 시위라는 걸 하는데, 어느 누구도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강경 진압작전에 들어갔다.

당시 경찰 특공대 투입이 없었다면?

하루만 내버려두고 지켜봤어도 본인들 스스로 내려왔지, 시위를 계속 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추웠고 먹을 것도 없었다. 일단 물이 없었다. 망루에 있던 사람들도 날이 밝으면 본인들 스스로 내려왔지 그렇게 새벽에 강제 진압할 줄은 몰랐다고 하지 않나.

재판부는 화재 원인을 철거민이 던진 화염병으로 보았다.

우리는 그런 추정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진압작전 들어오기 전에, 토끼몰이식으로 진압하지 말라고 위협하느라 화염병을 던진 적은 있다. 하지만 특공대가 투입된 마지막 순간에는 전부 다 탈출하기 바빴고, 정말 공포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화염병을 던지고 끝까지 저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심 때는 수사 기록이 공개되지 않다가 2심 때 수사 기록 일부를 받았다. 거기에는 대부분 경찰 수뇌부들 진술과 경찰특공대들 초기 진술이 들어 있었다. 특공대원 전부가 진입한 이후로는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더라.

화염병이 아니라면 다른 발화 원인은?

당시 망루에 시너와 인화물질에서 나온 유증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는 발전기도 있었기 때문에 유증기가 가득한 곳에서는 작은 정전기만으로도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법의학 박사들이 법정에 나와 증언했다. 가장 큰 원인으로 발전기가 지목되기도 했다. 당시 망루에 발전기가 가동 중이었고 발전기 스위치를 끈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을 상대로 압수해간 발전기 스위치에 대한 증거물 보전신청을 했다. 그런데 국과수에서 스위치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발화 원인을 가리는 데 중요한 증거물인 스위치를 분실했다면서 재판에 내놓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보존했어야 하는 증거물 아닌가. 스위치가 켜진(On) 상태인지 꺼진(Off) 상태인지 밝혀야 한다.

발화 원인 규명이 재심의 핵심인가?

그렇다. 1차 진압에 투입된 경찰 제대장은 재판정에 나와서 울먹였다. 본인만 뛰쳐나와서 숨 쉬면서 보니까 저쪽 망루 쪽 창문에 사람이 한 명 고통스럽게 몸을 내밀고 숨 쉬러 나와 있었다고 했다. 제대장은 ‘내가 차라리 들어가서 저 사람을 끌고 같이 나왔으면 괜찮았을 텐데 혹시 내가 본 그 사람이 죽은 사람 아닐까’ 하면서 재판정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그럴 정도였다면 경찰이 2차 진압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1차 진압 때 경찰이 가지고 있었던 소화기 같은 장비를 다 썼으므로 만약 재진압을 할 거라면 소화기도 충전시키고 그 안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해 대비책을 세워서 들어가야 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무리하게 진압해 큰 참사로 이어졌다. 그래서 철거민뿐 아니라 경찰관도 숨진 거 아닌가. 재판 자체가 경찰관의 사망 책임을 따지는 재판이었지 철거민 5명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반드시 밝혀야 한다.

특공대는 망루에서 철거민이 “다 죽어”라고 외쳤다고 했다.

진압 현장에서는 특공대원들도 흥분해서 철거민들이 일부러 불냈을 거라고 악의적으로 말했는데, 자기들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보니까 그렇게 일어날 사고가 아니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했다. 1심 때와 달리 2심 때 나와서는 “다 죽어”란 말이 “이러다 우리 다 같이 죽을 수도 있으니까 도망가자는 거지 다 죽이겠다는 뜻이 아니었다고 본다”라고 증언하더라.

경찰이 무리하게 진압한 이유가 뭐라고 보나?

당시 영상을 보면 진압작전 때 특공대장이 망루에 있는 대원한테 “아직 멀었냐”라고 무전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어서 “내가 올라갈까?” 하고 다그친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특공대는 본인들의 안전도 보장 안 된 곳을 그냥 마구 밀고 올라간다. 참사를 부른 진압작전이 상부 지시라고 볼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상부란 누구를 말하나?

당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과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해 9월 파업 농성 중이던 쌍용자동차에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경찰 특공대를 태운 컨테이너가 올라가서 노동자들을 진압했다. 당시 조현오 경기경찰청장은 나중에 “청와대에 보고했고, (이명박) 대통령이 허락했다”라고 말했다. 경기지방경찰청장도 청와대에 직보해 특공대를 투입시키는데, 서울 한복판에서 철거민들이 농성하는 걸 김석기 서울청장이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고 진압 지시 사인을 했겠나. 우리 요구는 하나다.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과 이명박 전 대통령을 조사하라는 거다.

두 사람에 대해 책임을 끝까지 추궁하는 이유는?

용산 참사 당시 경찰의 과잉 진압이 인정되어야 나머지 사건 해결과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그동안 경찰이 과잉 진압을 해도 우리 사건이 면죄부(경찰 무혐의 처분) 노릇을 했다.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밀양 행정대집행 때도 그랬다. 공권력이 시민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너무 많이 봤고 잘 알기 때문에 사명감을 가지고 끊임없이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싸우는 거다.

참사 이후 경찰은 어떻게 대응했나?

남편 시신이 안치된 순천향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경찰이 우리를 미행했는데 장례를 치를 때까지 1년간 계속됐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집회에 나가서도 경찰들한테 맞아 팔이 부러지고 턱이 찢어지고 그런 건 다반사였다.

지난해 12월 이충연씨를 비롯해 참사로 처벌받았던 철거민 25명이 사면 복권됐는데?

어차피 다 형을 살고 나온 사람들이고 사면을 위해 싸우는 건 아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어떤 정권에서도 우리 문제를 다뤄주거나 이야기해준 사람이 없었는데 그나마 문재인 정권 들어와서 사면 복권이 되었다.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팀’도 만든다고 하니 조금 희망이 보인다고 할까.

경찰의 진상조사팀 활동을 기대하나?

9년 동안 누구 하나 물어봐준 사람 없고 손잡아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기대를 안 할 수 없다. 우리는 솔직히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되니까. 제대로 조사를 하는지 끊임없이 감시할 거고,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끝까지 갈 거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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