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공익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한가람 변호사가 보낸 메일을 받았습니다.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를 여성으로 정체화한 한 트랜스젠더의 병역 면제 취소 관련 소송에 전문가 소견서를 제출해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트랜스여성은 정신과에서 오랜 기간 상담을 받고 성주체성 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 진단을 받았지만, 고환 절제술과 같은 외과 수술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병무청에서 현역 입영 판정을 받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저는 연예인 하리수씨 외에는 트랜스젠더에 대해 아는 게 없었습니다. 논문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한국의 트랜스젠더는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호르몬 치료와 성전환 수술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았고, 트랜스젠더를 진료하기 위해 의료인을 양성하는 병원도 없었습니다. 의료비용도, 적절한 전문가를 찾는 일도 모두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트랜스젠더의 건강과 관련해 진행된 연구가 없었습니다. 데이터가 없으니, 한국에서 살아가는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시사IN 신선영2017년 7월15일 서울 퀴어문화축제 행사장에 마련된 성 중립 화장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공중화장실 이용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때 전문가 소견서를 쓰면서 결심했습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트랜스젠더의 건강에 대한 연구를 해야겠다’라고요. 이후 3년,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트랜스젠더 15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고 2017년 여름에는 한국 트랜스젠더 279명이 참여하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애초 목적은 트랜스젠더들이 의료 이용 과정에서 겪는 차별이나 어려움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연구를 진행하면서 제게는 오랫동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성별 이분법의 세계’, 즉 인간을 남자와 여자 두 개 성별로만 구분 짓는 사회가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폭력적인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연구 주제는 자연스럽게 넓어졌습니다.

앞서 언급한 군대 문제도 그중 하나입니다. 제가 전문가 소견서를 제출했던 트랜스젠더 젊은이는 서울고등법원에서 현역 입영 취소처분 판결을 받았지만, 한국에서 남성으로 태어난 많은 트랜스여성은 병역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입대를 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트랜스젠더는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하기 전에 성전환 수술을 받거나 법적 성별 정정 절차를 완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도 부담이지만, 가족의 반대도 만만치 않은 장벽입니다.

저희 연구팀에서 2017년 여름에 진행한 설문조사에 참여한 트랜스여성 173명 중 70명은 현재 군복무 중이거나 군복무를 마친 분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군대 생활에서 어려운 점을 물었습니다. 70명 가운데 30명(42.8%)은 복무 중 관심사병으로 분류된 적이 있고, 그중 5명(7.1%)은 비전캠프와 같은 부적응 기관으로 이송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이들 가운데 17명(24.2%)은 군복무 도중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지요.
 

ⓒ연합뉴스많은 트랜스여성이 병역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입대한다. 위는 수류탄 투척 훈련을 받는 신병들.

“우리는 트랜스젠더 군인을 환영한다”

2018년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벨기에 등 20개 국가에서는 공식적으로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강제로 입대해야 하는 한국과 이들 국가의 상황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모병제로 군을 운영하는 캐나다는 트랜스젠더의 군 입대를 권장하고 그들이 복무 도중 성 정체성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도록 배려할 뿐 아니라, 성전환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의료비용까지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현재 캐나다 군대에는 200명에 달하는 트랜스젠더가 복무 중이며,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성전환 수술을 받은 군인은 19명입니다.

저희 연구팀 조사 결과는 어땠을까요. 한국에서 군복무를 했던 트랜스여성 70명 가운데 30명(42.8%)이 복무 중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게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고 응답했습니다.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성 정체성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는 한국의 트랜스젠더 군인과, 성 소수자 축제에 해군 군악대가 참여한 사진을 공개하며 ‘우리는 트랜스젠더 군인을 환영한다’라고 국방부가 발표하는 캐나다의 트랜스젠더 군인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미국공중보건학회에 참석했습니다. 건물 1층에서 화장실을 가기 위해 두리번거리는데,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헤매다가 마침내 화장실로 추정되는 장소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일반적으로 화장실을 나타내는 남녀 표시 대신에 다음과 같은 공지사항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습니다. ‘이 화장실은 성 정체성과 성별 표현에 상관없이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사용 가능한 안전한 공간입니다. 만약 당신이 성별에 따른 화장실을 원한다면, 이 컨벤션 센터에 있는 다른 화장실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성 중립 화장실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성 소수자 인권포럼과 같은 소규모 행사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참가자 수가 1만명이 넘고 1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학술대회에서 성 중립 화장실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다시 주위를 둘러봤지요. 내가 이 화장실에 들어가도 되는지. 뭔가 낯설었으니까요.

 

 

 

ⓒ시사IN 신선영트랜스젠더는 ‘신분증 확인’ 때문에 투표를 포기하기도 한다. 아래는 19대 대선 사전투표 모습.

 

제게 공중화장실은 위험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한국에서 제가 남성이기 때문에 누리는 기득권입니다. ‘몰카’의 위험은 물론이고 강남역 살인사건이 보여주듯이, 한국 여성에게 화장실은 위험하고 두려운 공간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공중화장실 사용에서 비(非)트랜스젠더라는 기득권을 하나 더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화장실 이용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출생 시 법적 성별은 여성이지만 스스로를 남성으로 정체화하는 트랜스남성 중에서는 외모가 남성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이들은 공중화장실에 갈 때마다 두렵습니다. 제 연구에 참여한 트랜스남성 106명 중에서 38명(35.8%)이 지난 5년 동안 화장실 이용을 제지당한 적이 있고, 33명(31.1%)이 화장실 이용 과정에서 모욕적인 발언을, 4명(3.7%)이 물리적인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화장실을 성 중립 화장실로 바꾸자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처럼 여성에 대한 사회적 폭력이 심각한 나라에서 모든 공중화장실을 성 중립 화장실로 바꾸는 것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대규모 행사를 개최할 때 한두 개의 화장실을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성 중립 화장실로 시범 운영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것은 트랜스젠더인 당신이 이 공간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으며, 당신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는 신호가 될 테니까요.

트랜스젠더 연구를 하면서,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을 만나는 일은 반복되었습니다. 2017년 학술지 〈청소년 건강〉에 게재된 〈트랜스젠더 청년의 낮은 가임력 보존(Low Fertility Preservation Utilization Among Transgender Youth)〉을 읽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오하이오 주립대학과 하버드 대학 연구진은 미국에 거주하는 트랜스젠더 젊은이 73명을 대상으로, 성전환을 위한 호르몬 치료를 받기 전 난자나 정자 보관에 대한 상담을 했는지, 나중에 아이를 입양할 마음이 있는지 등을 조사한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을 읽고서야, 2016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심리학회에서 네덜란드의 한 연구자가 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동성애자 커플이 입양한 아이와 이성애자 커플이 입양한 아이의 정신건강을 비교했을 때 차이가 없다는 것은 더 이상 학술적인 논쟁거리가 아니다. 이제 양성애자 커플이나 트랜스젠더 커플의 아이 입양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당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아득한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한국에서는 트랜스젠더의 아이 입양이나 정자·난자 보관에 대한 연구는 물론이고,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정신건강에 대한 연구조차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왜 트랜스젠더의 가족 구성이나 자녀 육아에 대한 질문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성별 정정을 고려하는 20대 초반의 트랜스젠더들에게는 절실하고 중요한 질문입니다. 의학적으로 난자·정자를 보관하지 않고서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많은 경우 자녀를 낳는 일은 어려워집니다. 또한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습니다. 2015년 개정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에 대한 사무처리 지침은 ‘신청인에게 현재 생식능력이 없으며, 향후에도 생식능력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음을 확인하는 진단서나 감정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한국에서 법적인 성별 정정은 자신의 생식능력을 포기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저희도 관련 질문을 조사에 포함해보았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연구에 참여한 출생 시 법적 성별이 여성인 트랜스남성 106명 중 18명(17.0%)이 ‘호르몬 조치 또는 성전환 수술 전에 임신, 출산 등을 위해 난자를 보관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또 그중 47명(44.3%)이 본인 또는 파트너의 정자나 난자를 이용해 자녀를 낳을 의향이 있다고, 49명(46.2%)은 자녀를 입양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분증 제출’에 불편을 느낀 적 있나요?

신분증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었습니다. 저는 공공기관에서 서류를 뗄 때, 은행 업무를 볼 때 신분증 제출 요구를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간혹 귀찮기는 하지만 불편을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많은 트랜스젠더에게 신분증 확인은 불편하고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신분증에 있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의 첫 번째 숫자는 성별을 나타냅니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은 그러한 정보를 통해 확인되는 성별과 현재 자신의 외양으로 드러나는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서 모욕당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는 아무런 잘못 없이 타인에게 거부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이어져 여러 일상적인 사회 활동을 위축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병원에 처음 방문했을 때 주민등록번호를 제출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아파도 병원에 가는 일이 조심스러워집니다. 이력서를 제출할 때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기업에는 지원하기가 망설여지고요.

이런 낙인의 두려움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궁리하던 중 2017년 5월 시행된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트랜스젠더에게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했는지 묻고 ‘투표하지 않았다’고 답한 이들에게는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하지 않은 트랜스여성 36명 중에서 12명(33.3%)이 ‘신분증 확인으로 출생 시 성별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서’라고 말했고, 3명(8.3%)은 ‘신분증 확인으로 현장에서 주목받는 것이 두려워서’라고 답했습니다. 신분증 확인 과정이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장벽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신분증 확인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과 낙인이 문제였던 것이지요.

20여 년 전이었습니다. 한 선배가 학자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제게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질문에 대해 답하려고 해봐.” 저는 ‘가장 중요한 문제’에 도전해보라고 요구하는 그 패기와 담대함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충고가 불편해졌습니다.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지, 그런 존재를 가정하는 것 자체가 폭력은 아닐지 의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한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권력과 자본을 가진 다수자들의 삶에 더 중요한 질문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수자의 삶을 옥죄는 낙인과 편견은 종종 우리가 그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을 병들게 하고 있었습니다.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를 하면서 그 생각은 확고해졌습니다. 심층 인터뷰를 통해 만난 한 트랜스젠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가 막 화를 내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살 거야? 너 어차피 이상해질 거다’라면서요. 〈개그콘서트〉 같은 데서 흔히 써먹는 소재가 남자들이 여장하고 나오는 거잖아요.” 누군가는 가볍게 웃으며 즐길 수 있었던 그 장면이, 트랜스젠더인 그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비웃는 불편하고 아픈 장면이었습니다.

트랜스젠더가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두려움, 성전환을 시작하기 전에 난자·정자 보관을 통해 자녀를 가질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절박함, 신분증 확인 과정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을 저는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상상하지 못하니 질문하지 못했고, 묻지 않았으니 해결책이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그 출발점은 ‘나는 아직 당신의 삶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그렇게 우리의 무지와 무례함을 사과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명 김승섭(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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