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8일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검색어 ‘정형식’을 치면 결과가 1000건이 넘게 뜬다. 구치소에 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월5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후, 항소심 재판장인 정형식 부장판사를 두고 분노에 찬 국민청원이 쏟아졌다. 정 판사의 판결에 특별감사를 요구하는 청원글은 청원자 21만명을 넘겼다. 청원자가 20만명을 넘으면 30일 이내로 청와대가 답변하도록 되어 있다. 답변은 사실상 정해져 있다. 법관의 판결을 감사할 권한은 행정부에 없다. 국민청원이 삼권분립의 기본 원리도 모르는 청원자들로 뒤덮였다는 비판도 나왔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법부의 판결이 마음에 안 드니 행정부가 개입해달라는 발상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하기 어렵다.

ⓒ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판결에 대한 특별 감사를 청원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

그러나 역대 최단기간에 20만명 기준선을 돌파한 여론 폭발을 무지한 탓 하나로만 돌리기도 어렵다. 분노한 여론은 “법관은 누가 통제하고, 누구로부터 감시받는가?”라고 묻는데, 이 물음은 의도했든 안 했든 민주주의의 최대 난제를 건드린다. 민주적 통제의 원리와 사법부 독립의 원리가 서로 충돌할 때, 어느 쪽이 우선인가? 다수의 지배를 추구하는 민주정 원리와,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사법의 원리는 기원부터 달라서 구조적으로 충돌하기 쉽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민주정에서 정통성의 원천은 인민의 선출이다. 주권자인 인민은 선출을 통해 공직자를 통제한다. 그런데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는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대통령과 의회의 추천과 동의로 임명된다. 이들 외의 인사는 사법부 스스로 한다.

인민이 법관을 선출하도록 한다면 어떨까? 각 지방법원장을 선거로 뽑은 후 선출된 법원장이 인사권을 행사하도록 하면, 민주적 통제가 작동하는 동시에 행정부·입법부에 대한 사법부의 독립성도 보장된다는 주장이 있다. 미국에는 판사 선거제도가 있다. 주 법원 판사들 중 일부는 주지사가 임명하지만 일부는 선거로 뽑는다.

하지만 판사 선거는 환영받는 아이디어가 아니다. 법학계는 선거자금을 매개로 기업이 법원에 영향력을 행사할 위험이 있다고 본다. 미국의 웨스트버지니아 주에서 한 거대 탄광회사가 토박이 탄광업자와 5000만 달러 규모의 소송전을 벌였다. 이 탄광회사는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주 대법관의 낙선을 위해 경쟁 후보에게 300만 달러를 선거자금으로 ‘베팅’했다. 탄광회사가 후원한 후보는 새 대법관이 되었고, 그는 재판에서 후원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과는 3대2, 한 표 차이로 탄광회사가 승리했다. 이 ‘캐이퍼톤 대 매시 석탄회사’ 사건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며 중요한 논란을 일으켰다.

정치학 또한 법관 선거에 우호적이지 않다. 사법부까지 선출로 정통성을 부여받으면 각각 독립된 정통성이 셋 존재하게 된다. 대통령제에서 입법부와 행정부의 이중 정통성 문제만 해도 교착상태를 풀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알려져 있다. 선출된 사법부는 해결 불가능한 ‘삼중 정통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위)

사법부 독립을 민주적 통제보다 우선하는 주장도 있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앞두고, 사법부는 정치적 견해와 무관하게 오로지 법리(法理)에 의해서만 판단을 내려야 하고, 사회는 사법부의 판단에 승복하자는 주장이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이재용 항소심 판결 이후 정형식 판사는 〈조선일보〉와 만나 “법리는 양보할 수 없는 명확한 영역이었고 고민할 사안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정치 논리’의 반대편에 ‘법리’가 존재하고, 사법부는 오로지 법리에 충실한 기관이라는 세계관이 깔려 있다. 이 세계관에서는, “법관은 누가 통제하고, 누구로부터 감시받는가?”라는 질문에 “법리 그 자체”라는 답이 나오게 된다. 동어반복이다. ‘법리가 법관을 통제한다고 어떻게 믿는가’라는 질문이 다시 나올 수밖에 없다.

“법을 해석하는 일이 독단적 관료들의 배타적 영역이 되면, 민주주의는 반드시 위협받게 되어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카를로 과르니에리 교수(정치학과)는 논문 ‘수평적 책임성의 도구로서 법원’에서 유럽 각국의 사법부 구조를 비교 연구한 후 이렇게 결론 내렸다(여기서 ‘관료’는 ‘사법 관료’, 즉 법관이다). 왜 그럴까? 사법부가 정치체제로부터 절연되어 사법 관료의 배타성이 보장되는 시스템은 역설적으로 독립성이 내외부의 침투로부터 더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외부의 침투’ 중에 대표 사례가 ‘캐이퍼톤 대 매시 석탄회사’ 사건으로 확인된 기업 권력의 침투다. 거대 기업은 선출직보다 배타적 관료조직에 침투하는 일을 훨씬 더 쉽게 해낸다. ‘내부의 침투’ 중에 대표 사례는 현재진행형이다. 법원행정처는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판사 성향을 사찰하는 등 사실상 권력기관처럼 활동했다. 사법부 독립은 내부에서 가장 크게 흔들렸다.

정치적 압력 제도화해 작동 과정 공개해야

이렇게 취약해진 사법부는 결국 법 집행의 신뢰를 흔들어서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한다. 오히려 정치적 압력을 제도화해서 작동 과정을 눈에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과르니에리 교수는 결론 내린다. 이로써 묘한 역설이 성립한다. 사법부가 적절한 방식으로 민주적 통제하에 들어올 때, 사법부의 독립성도 더 잘 보장된다.

ⓒ연합뉴스2월6일 경제개혁연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참여연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제는 ‘무엇이 적절한 방식의 민주적 통제인가’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추천하는 인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개헌안을 다듬고 있다. 인사위원회는 정통성의 두 원천인 대통령과 국회가 일정 비율로 추천한다. 법원행정처의 권한 집중은 법원 내부의 인사위원회 도입 등으로 개선해나갈 방침이다. 

장기적으로는, 법원의 판단 자체에 대한 비평과 논쟁이 풍부하게 벌어지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 집단의 피어 리뷰(Peer Review:동료 심사)는 강제력 없이도 강력한 압력으로 작동한다고 알려져 있다. 판결문을 신성불가침의 최종 판단이 아니라 ‘논의의 준거점’ 정도로 보고 피어 리뷰가 활발하게 작동하는 문화가 ‘독립과 통제의 상충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마침 이재용 재판은 1심과 2심이 크게 갈렸다. 피어 리뷰와 사회적 논쟁이 작동하기 좋은 구도다.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정형식 판사는 판사에 대한 사회적 비난 여론을 두고 “결국은 사회가 성숙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맥락으로 보아 정 판사는 이 말을, ‘결국은 법리 그 자체에 충실했던 법관의 진의를 사회가 알아주는 과정’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 같다. 하지만 판결을 신성불가침으로 간주하지 않고 기나긴 숙의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이번을 계기로 정착한다면, 민주적 통제와 독립성의 상충 문제는 상당히 완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정 판사의 의도와는 다른 맥락에서 ‘사회가 성숙해나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