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문제를 둘러싼, 20여 년에 걸친 공화당과 민주당의 해묵은 갈등과 상호 불신. 바로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1주년 즈음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을 불러온 근본 원인이다. 1월22일 여론 압력에 위기감을 느낀 양당이 타협해 임시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사흘 만에 셧다운이 종료되었다. 하지만 셧다운 촉발의 직접 원인인 다카(DACA·불법체류 청년 추방유예 프로그램)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연방정부는 2월 중 또다시 셧다운에 몰릴 수 있다. 다카 부활을 요구한 민주당이 여의치 않으면 2월8일 시효인 임시 예산안의 재통과에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미국 의회는 상·하원 모두 공화당 의석수가 민주당보다 더 많다. 민주당보다 56석 더 많은 하원과 달리 상원에서는 민주당 동의 없이 예산안 가결이 불가능하다. 공화당의 상원 의석이 의결 정족수에 필요한 60명에서 6명 부족하다.

ⓒAP Photo1월23일 미국 국회의사당 밖에서 불법체류 청년 추방유예 프로그램인 ‘다카’ 지지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양당은 불법체류자의 자녀(청년)에 대한 대우 문제를 두고 오랫동안 싸워왔다. 약 80만명으로 추산되는 불법체류 청년은 히스패닉계가 많은데, 이들은 어릴 적에 부모 혹은 친척을 따라 미국에 건너왔다. 이들은 자신의 체류 신분을 증명할 아무런 서류가 없었다.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2000년 이후 조지 W. 부시 공화당 행정부와 버락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를 거치면서 공화·민주 양당이 협상을 벌였다. 당시 공화당에서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 민주당에서는 고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등 거물급 중진이 적극 중재에 나서 포괄적인 이민 타협안을 도출했다. 하지만 공화당 하원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하원 본회의 표결조차 하지 못했다.

2013년 10월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불법체류 청년의 추방을 행정명령(다카) 발동으로 유예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유세 때부터 ‘다카 폐지’를 공약했다. 그는 지난해 9월 다카 폐지를 공식 선언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론을 의식해 오는 3월5일까지 의회에 항구적 대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카는 폐지되고 불법체류 청년들은 추방당한다.

상원에서 극적으로 타협이 이뤄져 ‘그런대로 괜찮은’ 다카 관련 법안이 통과돼도 낙관하기는 힘들다. 반이민 정서로 똘똘 뭉친 공화당 의원들에게 장악된 하원이 순순히 양보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원에서 재적 100명 가운데 70명이 찬성할 정도의 압도적 지지율로 새로운 다카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트럼프 행정부와 하원이 거부하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의회에서의 반목으로 이번 셧다운이 터진 것을 감안하면 이 같은 낙관은 기대하기 힘들다.

ⓒAFP1월25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자금이 확보되면 다카에 등록된 청년에게 시민권을 취득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사태 해결이 어려워진 근본 원인은 이민 문제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불신 및 인식 차이가 너무 커서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이민에 포용적이었다. 이에 비해 공화당의 인식은 “민주당이 아무 견제 장치도 없이 불법 이민자들을 무조건 이 나라에 쏟아부으려 한다”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트위터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아이티와 아프리카 일부 국가를 겨냥해 ‘거지소굴(shithole)’이라는 저속한 표현을 써가며 “왜 이런 나라에서 온 사람을 받아줘야 하느냐?”라고 이민 문제에 대한 속내를 드러냈다. 대다수 강경파 공화당 의원들의 인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를테면 “민주당 의원들의 주장은 불법으로 미국에 사는 이민자들을 사면해주자는 것”이라고 비난한 공화당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단적인 예다.

다카 존속에 대한 찬성 여론 87%

현재 미국 의회에는 기존 다카 수혜자만을 구제하는 데 초점을 맞춘 법안, 합법적 이민자 수를 연간 26만명으로 제한하는 법안, 채용 시 고용주가 이민자의 합법적 신분 확인을 의무화하는 법안 등이 상정되어 있다. 그러나 양당의 견해차가 심해 진전을 본 법안은 거의 없다. 특히 16세 이하로 미국에 불법 입국해 고교 학력 이상을 가진 청년에게 영주권까지 부여하는 내용의 ‘드림 법안’은 2001년 8월 초당적으로 발의되었는데, 의회에서 10년 이상 심의만 거듭하다 빛을 보지 못했다.

만일 양당이 다카 문제로 계속 말싸움만 하다가 오는 2월 다시 연방정부가 셧다운으로 치닫게 되면 여론의 거센 비판이 불가피하다. 성난 민심이 올가을 중간선거(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 1을 선출한다)에서 분출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선거에서 상·하원 모두 공화당에 빼앗긴 민주당은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우세한 지역에서 다카를 이슈화할 계획이다. 다카 존속에 대한 일반 찬성 여론이 87%에 달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공화당의 타격은 불가피해 보인다. 최근 NBC와 〈월스트리트저널〉의 여론조사에서도 히스패닉 유권자 64%가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길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문제 해결의 열쇠는 트럼프 대통령이 쥐고 있다는 견해가 많다. 법안 거부권을 가진 그가 부정적이면 다카 문제는 또다시 미궁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장기적 차원에서 미국에 좋은 타협안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오락가락하는 게 문제다. 이를테면 그는 셧다운 2주일 전까지만 해도 다카 문제를 타결하고 싶다는 희망을 일부 의원에게 표시했다.

그런데 정작 셧다운 직전 공화당 중진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과 민주당의 리처드 더빈 상원의원이 ‘다카 수혜자의 시민권 취득 허용을 대가로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자금을 예산안에 반영한다’ 등을 포함한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트럼프는 거부했다.

1월25일 트럼프 대통령은 다카의 보완 입법을 추진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국경 장벽 건설자금을 예산안에 포함하도록 할 계획이다.

대다수 정치 분석가들은 이민 문제에 관해 최근까지도 갈팡질팡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극우파 참모인 스티븐 밀러 백악관 선임보좌관에게 휘둘렸던 것이라 본다. 밀러는 트럼프의 취임 연설문에 담긴 ‘미국 우선주의’와 시리아·북한 등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 금지령 아이디어를 낸 장본인으로 알려졌다.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밀러가 이민 협상을 주도하는 한 아무런 진전도 보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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