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 도날도 마세도·하워드 진 지음 김종승 옮김, 궁리 펴냄

“우리 모두가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법에 대해 경외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법이 정한 대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발상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발상은 한 개인으로서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할 권리를 박탈하여, 자기들끼리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결정해온 소수의 법률 제정자 집단한테 모든 권한을 이양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하워드 진의 말이다. ‘소수의 법률 제정자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다수당의 밀어붙이기식 전횡이 걱정되는 현실, 법질서 확립을 유달리 강조하지만 그 법질서가 정권을 비판하는 이들에게만 유달리 엄격하게, 때로는 초법적으로 적용되기도 하는 현실.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하워드 진의 말이 주는 울림은 더욱 크다. 시시비비를 토론하는 자유로운 공론의 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하워드 진은 이렇게 말한다.

“교사들은 종종 자신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옳고 그름은 주관적인 문제이며, 그런 문제는 학생과 교사들의 의견이 일치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불일치의 영역이 가장 중요합니다. 옳고 그름과 정의의 문제는 언제나 제기되어야만 하는 문제입니다.”

미국 교육은 ‘대량 기만’이다

 미국의 비판·실천적 지성의 대표자이자 역사학자·극작가·사회운동가·대학교수로 활동하는 하워드 진, 그리고 보스턴 대학 교수이자 교육비평가인 도날도 마세도. 이 공동 저자가 말하는 오늘날 교육의 문제점과 앞으로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비단 교육 분야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예컨대 마세도는 오늘날 미국이 당면한 교육의 문제를 ‘대량 기만’(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운 ‘대량’ 살상무기를 빗댄 표현)이라고 정의한다. 그 대량 기만은 성공적이었고, 그래서 치명적이다.
 “아직까지 이라크가 9·11과 모종의 연관이 있다고 믿는 대학생이 60퍼센트가 넘는다는 사실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는 정치 선동을 견제할 비판적 사고에 대한 교육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정말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열망하는 민주주의 이념에 비춰볼 때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닙니다. 학생들이 교조주의 체제의 진군 명령에 기꺼이 복종하는 자동인형이 될 정도로 길들여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Flickr
미국의 비판·실천적 지성의 대표자로 평가받는 하워드 진(위)은 역사학자·사회운동가로도 활동한다.

하워드 진과 마세도에 따르면 미국의 교육체계는 학생에게 이상과 대안을 꿈꿀 것을 권하는 대신 ‘사회 내 모순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그리고 그것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으로 여기도록’ 가르친다. 부조리와 모순에 분노하고 저항할 수단과 방법을 전수하는 대신 변화의 원동력인 창의적 사고와 ‘마음 깊이 진정으로 느끼는 본질적인 앎’에 도달하는 길을 가로막는다. 이상과 대안을 꿈꿀 것을 권하는 데 역사 교육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여러분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모른다면, 여러분은 마치 어제 갓 태어난 것과 같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제 갓 태어났다면, 확성기와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우리는 이라크를 폭격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대통령에게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어느 정도 역사를 알고 있다면 ‘잠깐만요, 이 문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죠’라고 말할 것입니다… 비록 역사가 어떤 특수한 상황에 담긴 진실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려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여러분에게 경계하고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은 가르쳐줍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큰일이다. 이제는 역사 교과서 내용마저도 정부의 입맛에 맞도록 고치려 드는 형편이니, 우리 교육이 학생들을 미성숙에서 성숙으로가 아니라, 미성숙한 갓난아이로 되돌려 놓으려는 것인가.

기자명 표정훈 (출판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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