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회사 동료 윤보라씨는 열심히 일하는 가운데 맥주를 즐기며 생활한다. 맥주가 그이의 유일한 낙은 아니겠으나, 퇴근 후에 편의점에 잠깐 들러 세계 맥주 4캔을 고르는 그이의 얼굴이 얼마나 설렘과 평온으로 가득할지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날 이 땅의 많은 청년 노동자들은 편의점 세계 맥주 앞에서 일제히 같은 표정을 짓는다. 다 일하며 먹고사는 가운데 고만고만한 생활의 활력소를 찾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스갯소리로 맥주를 마시기 위해 운동한다고 말하는, 생활형 맥주 애호가 윤 대리는 얼마나 인상적이고 보편적인 인물인가.

그런 보라씨가 최근 들어 매우 흔한 것과는 거리가 먼 ‘자신만의 것’을 찾고자 소원하는 모양이다. 사무노동과 가사노동으로 이어지는 생활에서 벗어나 한순간일지언정 대리도 아니고 아내도 아닌 나라는 주체가 되어보고자 하는, 그런 걸 가능하게 해주는 물건 혹은 행위를 발굴해내기 위해 골몰 중이라는 전언. 대리님에게는 아무튼, 맥주가 있지 않습니까, 말해준들 맥주·고양이· 강아지는 누구나의 것이지 나만의 것은 아니잖습니까, 라는 말이 되돌아올 게 뻔했다.

ⓒ시사IN 윤무영4캔에 1만원 하는 ‘편의점 세계 맥주’는 청년 노동자들의 작은 행복이다.

나만의 것이란 뭘까? 나만이 애호하는 것이 있긴 있는 걸까? 보라씨가 이즈음 불현듯 열과 성을 다해 찾으려고 하는 것이 그 옛날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져버린 것인지(열정 같은 거랄까), 혹은 그 옛날에는 없었으나 지금에야 비로소 찾고 싶어지는 것인지(새로운 식습관 같은 거랄까) 궁금한 마음이 솟아났다. 전자의 향수와 후자의 회한은 아무래도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향수에서 찾아오는 인생의 허무함(어쩌다 이 나이가 됐나…)보다야 회한에서 찾아오는 과한 긍정(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어!)이 한결 낫지 싶다가도 둘 다 현재의 보라씨를 형상화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스치자 어쩐지 덩달아 골똘하게 되었다. 윤보라씨에게 ‘아무튼, ○○’이란. 

보라씨는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일까. 그이가 학창 시절에 관심을 두었던 교과 밖의 것들과 앞으로 꿈꾸는 노년이 정년퇴직인지, 자영업인지, 건물주인지 묻고 듣고 싶었다. 출판편집 노동자로서 수년을 쉬지 않고 일해온 이의 헛헛함은 때론 그 자신이 그렇게 시원하게 좋아하던 것마저 시큰둥하게 만들기도 하는 법. 보라씨에게 아무튼, 호프 한잔을 사고 싶었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라는 구절이 나오는 사이토 마리코의 시 〈눈보라〉를 넌지시 들려주며, 남들이 하는 걸 다 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나만의 것’이 있다고,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건네고 싶었다. 생활형 애주가들이야 잘 알겠지만, 술자리에서 삶의 진리다 싶은 말들은 모두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말 가운데에서 찾아진다.

애호는 돌출되는 말이 아니라 함몰되는 말

어느 날 불쑥,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는 나를 더 구체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올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그렇다. 그럴 때 우리는 자주 더 먼 것에, 더 새로운 것에, 더 특별한 것에 눈을 돌리기 마련이지만, 어쩌면 그때야말로 나와 제일 가까운 것에 눈을 돌려야 한다. 애호라는 말은 돌출되는 말이 아니라 함몰되는 말이다. 애호하는 삶의 이야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저 그렇게 되어버린 생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무언가를 특별히 애호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보라씨라고 해서 별다를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니라 아주 일상적인 것을 꾸준히 하는 사이에 비로소 나만의 서사가 시작되기도 한다. 가령, 나는 지난해 스웨터에 관한 글을 계속 써서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굳이 자기를 대변할 특수한 소재를 찾지 않아도 윤보라씨의 삶은 결국 윤보라만의 것이다. 회식하고 귀가해 부족한 술을 순대볶음과 함께 채우는 윤 대리의 음주 가정사를 재밌어하는 게 나만은 아닐 것이다.

기자명 김현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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