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미국의 석학 에이브럼 놈 촘스키가 ‘몇 년 뒤에 하겠다고 약속을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만한 강연 주제가 있다면 무엇이겠느냐’고 익살맞게 물은 적이 있는데 답은 ‘중동의 현재 위기’였다. 경험상 앞으로 중동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예측할 수 없지만 항상 위태로우리라는 사실은 거의 틀림없기 때문이다. 외부 세계 사람들에게야 재미있는 농담 소재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중동의 내부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악몽 같은 얘기이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피를 흘려야 중동에 평화가 올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시간이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중동 전문기자 로버트 피스크는 〈전사의 시대〉라는 그의 저서에서 예전에 영국에서 유행했던 ‘믿거나 말거나’ 칼럼을 카피해 냉소를 퍼붓는다.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때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사람 1만7000명이 살해됐는데 그 대부분은 민간인이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말입니다.” “2003년 미·영 연합군이 이라크를 침공한 지 4년 만에 65만명에 달하는 이라크인이 사망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말입니다.”

그가 이 책을 쓴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군인은 팔레스타인 소년들을 살해하고 있다. 내전에 휩싸인 이라크와 시리아에서는 집계도 하기 힘든 수의 민간인이 죽었으며 수백만명이 남의 나라와 사막을 떠도는 난민 신세가 되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 방문을 계기로 우리는 중동문제가 새삼 먼 나라 얘기가 아니란 걸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아랍에미리트와 원전 수출 계약을 맺고 아크 부대를 파병하면서 군사협력 양해각서(MOU)를 맺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던가. 아랍에미리트가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아 안보 위기를 맞을 경우 한국군이 자동 개입한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미국과 맺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도 ‘자동 개입’ 조항은 없다. 동맹을 넘어 혈맹 간에나 가능할지 말지 한 합의 수준이다. 더구나 전시작전권도 없는 국가의 군대가 남의 나라 전쟁에 즉각 뛰어들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국회의 비준도 받지 않고 진행돼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오히려 사소해 보이게 만들 만한 문제는 따로 있다. 이번 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이슬람 세계 전체에 어떻게 비칠까 하는 점이다.

중동은 아직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란 속에 있지만 서서히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힘을 키워가고 있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실로 오랜만에 중동의 위기가 과거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 고통 속에서 싹트고 있다. 그 첫 번째 조짐은 2009년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혁명이었다. 결정적으로는 그동안 중동의 하늘에 짙게 드리웠던 먹구름인 미국이 물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빈자리에 러시아나 중국, 그리고 프랑스가 몰려오고 있지만 그들이 미국을 대신하기에는 한참 역부족이다.

미국이 중동에서 서서히 손을 떼려고 하는 것은 갑자기 평화를 원하게 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기술의 발달로 값싼 셰일오일을 생산할 수 있어 산유국이 전혀 부럽지 않게 된 까닭이다. 천문학적 군사비와 아까운 미국 젊은이들의 피를 바쳐가며 중동에서 석유 생산 시설을 확보할 이유가 더 이상 없어졌다. 미국은 조만간 석유 최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신할 것이다. 기후변화와 대체에너지 생산 기술의 비약적 발전도 석유의 전략적 가치를 떨어뜨렸다. 미국이 중동에 강제로 심은 질서는 재편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아랍의 봄은 프랑스 혁명이 유럽에 줬던 충격에 버금가는 영향을 이슬람 세계에 끼쳤다. 자자손손 대를 이어 영화를 누릴 것만 같던 독재자들이 시민의 손에 끌려 내려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프랑스 혁명이 주변 왕국들에게 악몽을 안겼듯이 국민 위에 군림하던 아랍 왕국들도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프러시아나 오스트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 바레인이 시민 혁명에 맞서 연합전선을 형성했다.

ⓒ한성원 그림
아랍에서 지금 일어나는 변화를 이해하려면 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hood)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각국에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종종 민주화를 향한 직진을 하는 게 아니라 갈지자걸음을 걷지만 폭풍의 중심에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아랍에미리트·바레인이 최근 중동의 가스 부자인 작은 군주국 카타르와 외교·경제 관계를 끊은 것과 무슬림형제단은 직접 관련이 있다. 카타르가 무슬림형제단의 돈줄 노릇을 해왔으며 친(親)무슬림형제단 매체인 〈알자지라〉를 후원해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를 등에 업은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무슬림형제단에 테러리스트라는 딱지를 붙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팔레스타인이나 예멘, 시리아의 무슬림형제단 분파와 전략적 이해를 공유하는 모순에 빠져 있기도 하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는 무슬림형제단을 테러리스트로 구분하기를 꺼렸다. 그들에게는 분명히 남다른 면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문화에 익숙한 이들이 아랍의 시민을 대표하는 무슬림형제단의 행태를 이해하기는 힘들다. 모세는 국가가 없는 지도자였다. 예수 역시 처형을 당한 반체제 인사였다. 당연히 기독교와 국가는 한 몸이 아니었다. 신약에 따르면 반역자라는 올가미를 씌우려고 바리새인들과 당원 몇 사람이 예수에게 갔다. 그들은 물었다. “선생님은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게 합당합니까, 아닙니까?” 그러자 예수는 너희가 나를 시험하느냐고 꾸짖으면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신의 것은 신에게 돌려드려라”고 말했다. 바리새인들을 감탄하게 만든 절묘한 타협이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과 한 몸이 된 뒤에도 권력이 정한 계율과 신자로서 양심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결국 그리스도인은 지상의 도시와 천상의 도시, 두 개의 도시에 속한 시민이라는 논리를 개발하게 되었다. 이 논리는 나중에 종말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처럼 기독교와 국가는 처음부터 합체하기가 쉽지 않았다.

미국 빠진 중동에서 주인 노릇할 이들은

중세에는 신이 절대적으로 우세해졌다. 교육과 의료, 과학까지 종교가 좌지우지하기에 이르렀다. 과학과 사회가 발전하면서 종교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결국 1625년 네덜란드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그로티우스가 ‘만약 신이 없다면’이라는 유명한 전제를 내놓았다. 신이 주지 않았더라도 인간에게는 존엄한 그 무엇이 있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인권 사상이 나왔고 세속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점차 종교는 정치와 결별을 고하고 영적인 세계로 복귀하게 되었다. 서양에서는 처음부터 종교와 국가가 한 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별도 자연스러웠는지 모른다.

반면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는 처음부터 종교 지도자이면서 정치 지도자였다. 코란은 성경인 동시에 법전이기도 했다. 코란에는 명확하고 직접적인 문서화된 명령이 있다. 범죄에 대한 징벌에서부터 상속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시행 규칙을 정해놓았다. 이슬람 세계의 사람들이 종종 “코란이 우리의 헌법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코란이 강력범죄에 대한 처벌이나 상속 문제까지 세세하게 규정했다고는 하지만 법률로서 현대사회를 끌고 가기에는 그 한계가 분명하다. 우선 정부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부터 난감한 일이다. 코란에서 무함마드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함께 상의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무한한 권력을 가진 절대자이기도 하다. 당연히 무함마드가 죽은 뒤에 의견 충돌은 심해졌다. 칼리프를 선출해야 하는지 세습해야 하는지도 결정할 수 없었다. 그것이 결국 이슬람 세계가 겪는 고통의 절반이라 할 수 있는 수니파와 시아파로의 분열을 초래했다. 어찌됐든 종교와 세속적인 권력이 한 인물에게 집중되는 칼리프 국가라는 형태는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해체되기까지 1000년 동안이나 유지되었다.

그 뒤 식민제국에 모독당하고,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실험에 실패하고, 왕정과 독재에 시달리던 아랍의 민중이 선택한 대안 중 하나가 무슬림형제단이다. 이 운동은 1928년 무슬림 사상가를 무수하게 배출한 이집트 북동쪽 이스마일리아에서 하산 알반나가 창시했다. 다시 이슬람 원리로 통치하는 국가를 만들자는 무슬림형제단의 외침은 종교가 곧 삶인 아랍의 지식인과 보통 사람들에게 제대로 먹혔다.

이들의 등장으로 위협을 느낀 기존 국가들의 종교적 색채도 더욱 짙어지는 경향이 있다. 아랍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인권은 이슬람교 성인(成人)만 누릴 수 있다. 신앙을 포기하면 국적을 잃을 수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에 걸쳐 있는 이슬람 국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헌법에 ‘이슬람법이 법률의 원천이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집트·이란·파키스탄(이상 헌법 제1조), 모리타니·요르단(헌법 제2조), 말레이시아·시리아·예멘(헌법 제3조), 사우디아라비아(헌법 제5조), 이라크(헌법 제13조)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이슬람 세계에는 무슬림형제단의 수많은 분파와 잡종이 존재한다. 평화를 추구하는 튀니지의 에나흐다에서부터 무슬림형제단을 변절자라고 부르는 지하디스트 IS까지 스펙트럼은 실로 다양하다. 원조라 할 수 있는 이집트 무슬림형제단도 폭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하며 대립 전술을 구사하는 그룹과 좀 더 평화적인 접근을 지지하는 그룹으로 나뉜다. 앞으로 미국이 빠진 중동에서 이들이 결국 주인 노릇을 하리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은데 나 역시 동감이다. 한국 정부가 아랍에미리트와 이면 협약을 맺은 것은 이런 도도한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짓이다. 호랑이 아가리에 자진해서 머리를 집어넣은 것이나 다름없다(제543호에 계속).

기자명 문정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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