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과 젓가락 늘어놓고 온 동네 사람과 모인 자리(杯箸錯陳集四隣)/ 버섯과 고기가 정말 맛나네 (香蘑肉膊上頭珍)/ 늘그막의 식탐이 이쯤에서 다 풀리겠냐만 (老饞於此何由解)/ 푸줏간 앞에서 입맛만 다시는 사람 꼴은 되지 말아야지(不效屠門對嚼人)”
-성협(成夾)의 ‘야연(野宴)’ 속 시구
그림에 딸린 시 한 수에 웃음이 난다. 문득 서울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를 ‘굽고 싶은 거리’로 불러야 한다는 지인의 농담이 스친다. 길 따라 늘어선 고깃집은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고기를 굽겠다는 사람들로 늘 가득하다. 가장 만만한 서민 대중의 외식은 고기구이일 테다.
한국인의 고기구이 기호는 ‘금령의 굴레’를 헤치고 전해온 것이다. 지금이야 삼겹살부터 온갖 고기가 흔하지만, 19세기 조선 사람 성협이 ‘야연’을 그릴 당시 가축은 어디까지나 소였다. 돼지는 칠 여력도 없었다. 그리고 소 도축을 엄격히 제한한 우금령(牛禁令)이 있었다. 조선 시대 내내 그랬다. 소는 농사에 먼저 투입해야 했다. 다치거나 늙어서 일할 수 없는 소만 잡을 수 있었다. 가령 19세기에 편찬된 공사문서 작성 참고서 〈유서필지(儒胥必知)〉에는, 땔감 장수가 다리 부러진 자기 소의 도축을 허락해달라며 관에 올린 탄원서 견본이 실려 있을 정도다.
국가는 그믐 및 설 전후에야 우금령을 풀었다. 설과 대보름 사이 명절에 한한 조치였다. 덕분에 그 고기로 떡국도 끓였다. 유만공은 이렇게 노래했다. “소고기 저며놓고 흰떡 쌓아놓으니/ 세밑 이 한때가 제일 풍성한 한때.” 조선 후기 학자 홍석모는 〈동국세시기〉에서 섣달그믐의 우금령 완화를 ‘서울 사람들이 정초에 고기를 실컷 요리해 먹도록 한’ 조치로 설명했다. 아울러 자신의 〈도하세시기속시(都下歲時紀俗詩)〉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저민 소고기 시장에 널려 있으니/ 설날 전후해 금패(禁牌)를 거두어서지/ 한번 배불리들 먹어보라 내리신 은택 덕분에/ 푸성귀로 곯은 배 원기 넘치네.”
그러나 ‘굽고 싶은 거리’를 만든 후손의 조상들 아닌가. 몰래 먹는 소고기가 더 맛있었나 보다. 드러나지 않는 도축과 유통이 푸성귀로 곯은 배를 파고들었다. 우금령 기록은 늘 밀도살 기록과 나란하다. 조상님들, 고기 한 점으로 미각 만족을 훨씬 넘는 온몸 떨리는 행복을 느꼈을 테다.
어찌 푸줏간 앞에서 입맛만 다신단 말인가
그림 속 다섯 모두가 오로지 먹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탕건 아래 조바위를 눌러쓴 인물이 식탐에 몸 단 늙은이일까. 그러고 보니 꽤 쌀쌀한데 나왔구나. 하지만 이왕 운치 있게 먹을 작정을 했으니 어찌 ‘혼고기’를 할쏘냐. 저마다 다른 복식을 한 일행이 상하노소 가리지 않고 한자리에 어울렸다. 전골냄비인 전립투(氈笠套) 둘레로 모양 있게 썬 고기가 익어간다.
소반 위의 대접에는 장국이 담겼을 것이다. 고기를 좀 먹다가, 전립투 움푹한 데에 장국을 끓이고, 이윽고 바구니에 담긴 표고를 데칠 것이다. 저마다 굽고, 먹고, 마신다. 손으로 고깃점을 집어 입에 밀어넣는 사람도 있다. 기분을 내는 모습, 맛의 설계 등이 오늘과 별로 다르지 않다. 고기보다 술이 급한 사람 또한 예나 지금이나 한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시 원문을 돌아보니 ‘도문대작(屠門對嚼)’ 네 글자가 새삼스럽다. 도문대작? 맞다. 허균이 쓴 조선 최초 ‘문자 먹방’의 제목(屠門大嚼)이다.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 어찌 푸줏간 앞에서 입맛만 다신단 말인가. 우금령이 대수랴. 자원의 제약과 법률에 맞서 기어코 이룬 겨레의 고기 굽기 사랑, 참 면면하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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