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으로 사는 게 어떤지 알고 있나요? 사실 양으로 살아간다는 건 엄청 쉽습니다. 놀다가 먹다가 자다가, 놀다가 먹다가 자다가…! 참 쉽지요? 그런데 양의 삶에는 놀고 먹고 자는 거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바로 아이들이 잠들지 못할 때 불려가는 겁니다. 사실 아이들마다 잠이 안 올 때 부르는 양떼가 따로 있습니다.

우리는 미구엘이라는 어린이가 잠이 안 올 때마다 불려가는 양떼입니다. 미구엘은 잠이 안 오면 우리를 부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줄을 서서 차례로 허들을 뛰어넘지요. 언제나 똑같이 1번 양이 허들을 넘고 나면 2번 양이 허들을 넘고 그다음엔 3번 양이 허들을 넘으며, 미구엘이 잠들 때까지 차례대로 허들을 뛰어넘지요.

오늘밤에도 미구엘은 우리를 불렀습니다. 우리는 차례대로 허들을 넘었지요. 1번 양이 폴짝, 2번 양이 포올짝, 3번 양이 포오올짝! 그런데 그때, 갑자기 5번 양이 물었어요. “4번 양 어디 갔어?” 4번 양이 도망을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4번 양은 대열에서 조금 멀리 벗어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짜증을 내며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4번 양이 뛸 차례니까요. 그런데 그때, 4번 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싫어! 뛰는 건 지긋지긋해!”

4번 양은 영영 허들을 넘지 않아도 될까요? 그렇다면 허들을 넘지 않는 4번 양 때문에 미구엘이 영영 불면증에 걸리지는 않을까요? 그림책 〈고집불통 4번 양〉은 어느 ‘수면 도우미’ 양의 반항을 다룬 문제작입니다.

4번 양이 양들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자 다른 양들은 다 같이 불만을 쏟아냅니다. 그냥 허들을 넘으면 되지 왜 문제를 일으키느냐는 거지요. 4번 양만 아니면 오늘도 그냥 차례대로 허들을 넘고 미구엘이 잠들고 자기들도 잠들면 그만인데, 4번 양 때문에 평탄했던 일상이 깨졌으니 말입니다. 다른 양들은 아직 이 게임에서 벗어날 준비가 되지 않은 겁니다.

〈고집불통 4번 양〉 마르가리타 델 마소 글, 구리디 그림, 김지애 옮김, 라임 펴냄

“싫어! 뛰는 건 지긋지긋해!”

인간도 똑같은 시간에 자고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을 하거나 학교에 갑니다. 어른에게는 어른의 라이프사이클이 있고 어린이에게는 어린이의 라이프사이클이 있습니다. 마치 양들이 먹고 자고 차례대로 허들을 넘는 것과 같습니다. 놀랍게도 인간으로 사는 것이나 양으로 사는 것이 아주 똑같습니다.

양들은 미구엘이 시키는 대로 허들을 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누가’ 시키는 대로 출근을 하고 학교에 가는 걸까요? 양들이 허들 게임에 갇힌 것처럼 인간은 출근 게임이나 학교 게임에 갇힌 건 아닐까요?

제 눈에는 고집불통 4번 양이 9회 말 투아웃 만루 상황에 타석에 올라선 4번 타자처럼 멋있어 보입니다. 물론 고집불통 4번 타자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싫어! 치는 건 지긋지긋해!”

그림 작가 구리디는 고집불통 4번 양을 검은 양으로 표현했습니다. 실제로 양은 흰 양과 검은 양이 있습니다. 4번 양을 검은 양으로 표현한 구리디의 선택은 탁월했습니다. 초록색 풀밭 위를 걷는 양떼 가운데 검정색 4번 양은 단연 눈길을 끕니다. 심지어 이 책의 주인공이 검은색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나쁜 것도 익숙해지면 나쁜 줄을 모릅니다. 관습의 힘은 정말 무섭습니다. 황금 만능주의인 자본주의도, 성적 만능주의인 입시제도도, 폭력적인 가부장제도도, 살인적인 군사제도도 익숙해지면 나쁜 것인 줄 모릅니다.

우리는 오늘 왜 출근합니까? 우리는 왜 공부를 합니까? 우리는 왜 남들이 사는 대로 삽니까? 우리는 정말 행복합니까? 고집불통 4번 양 덕분에 진정한 삶에 눈뜨게 만드는 그림책 〈고집불통 4번 양〉 입니다.

기자명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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